11편. 네 속도대로 걸어도 괜찮아

경쟁보다 관계를 배우는 시간

by Bloomlink

“현성아, 너는 친구들과 걸을 때 꼭 앞서가야 한다고 느낀 적 있어?”


아빠는 요즘 그런 게 문득 궁금해지더라. 같이 걷는 길인데도, 우리는 종종 ‘누가 더 빠른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를 너무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아빠도 그랬어. 예전엔 일하면서도 늘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했지. 빠른 결과, 빠른 성과, 빠른 반응. 그게 일 잘하는 사람의 기준처럼 여겨졌으니까.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

빠르다고 해서 꼭 옳은 것도 아니고,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더 멀리 간 것도 아니더라고.


특히, 한 단체에서 기획팀장으로 일하던 시절 겪었던 프로젝트를 통해 그걸 더 깊이 느꼈지.


그 프로젝트는 두 부서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구조였어. 각자의 목표는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결과를 향해 가야 했던 일이었지. 그 과정에서 협업은 필수였고, 서로를 믿고 맞춰가는 게 중요했단다.


하지만 두 팀의 태도는 전혀 달랐어.


다른 팀은 ‘속도’와 ‘성과’에 집중했어. 협업 과정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실적 중심으로 밀어붙였지. 회의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어.

“우리 실적은 이만큼 나왔습니다. 다른 팀도 따라와 주세요.”


반면, 아빠가 이끌던 팀은 좀 느렸어. 모든 걸 하나하나 직접 확인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기반을 차근차근 다졌지. 처음엔 답답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우린 ‘지금 당장의 수치’보다 ‘나중에 남는 신뢰’를 더 중요하게 여겼단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공감을 얻고, 때로는 한마디 말 대신 한 번의 눈 맞춤으로 소통했어. 아빠는 그 과정이 비록 느려도, 결국 더 멀리 간다는 걸 믿었거든.


처음엔 다른 팀이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어. 숫자도, 평가도, 기사화도 그쪽이 앞서갔지. 실무자들도 “그 팀 참 빠르네요”, “추진력이 좋네요”라며 칭찬했단다.


하지만 결과는…

민원 폭탄.


그 팀은 지역 현장의 맥락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달했고,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어. 아빠 팀은 결국 그 민원의 최전선에 서야 했고, 다른 팀은 뒤로 빠졌지.


그때부터였어. 우리가 천천히 쌓아온 신뢰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건.


하나씩 다시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어. 하루에 열 군데를 돌지 못하더라도, 한 곳에서라도 웃으며 헤어질 수 있게끔 만들었지.


몇 달 후, 프로젝트는 완수됐어.

물론 처음 예상했던 일정보다 느렸지만, 남은 건 더 단단했단다.


그 일을 마치고 나서 한 실무자가 아빠에게 말했어.

“그땐 정말 답답했는데요, 돌아보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다행히 이쪽 방식이 남았어요.”


그 말을 들으며 아빠는 속으로 생각했단다.

‘그러니까, 네 속도대로 걸어도 괜찮다고.’


아빠는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속도’는 그저 방법일 뿐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우리가 종종 빠르게 달리려는 건 사실 ‘불안’ 때문이야.

‘늦으면 안 된다’, ‘뒤처지면 끝이다’라는 생각.

어릴 적부터 우리를 따라다녔던 말들이 지금도 마음속에서 속도를 재촉하지.


하지만 아빠는 이제 알겠어.

정말 오래가는 건, 오래 걸린다는 걸.


너도 혹시 친구들보다 느리게 걷는다고 느낄 때가 있니?

수학을 남들보다 늦게 이해하거나, 운동장에서 제일 뒤에서 들어와 본 적이 있니?


그게 괜찮다고, 아빠는 꼭 말해주고 싶었어.

‘빠르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니까.

아, 이 이야기를 하니까

예전에 너랑 공원 걷던 일이 떠오른다.


그날은 가을이었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던 길이었지.

넌 계속 멈춰 서서 도토리를 줍고,

길가의 고양이를 따라가고,

느릿느릿 한 걸음씩 걷고 있었어.


아빠는 처음엔 빨리 가자고 재촉했지만,

잠시 후 멈춰서 너를 바라보다가 웃음이 났어.


‘그래, 이게 진짜 걷는 거지.’


길은 원래 ‘같이 가는’ 거니까.

빠르기보단 ‘함께 걷는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아빠가 맡았던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그걸 다시금 느꼈단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

단 3초의 슬라이드보다 더 강한 건

3일간 나눈 신뢰였어.


보고서 한 장보다,

현장에 머물며 함께 웃었던 시간이 더 오래 남았고.


말 한 줄보다,

말하기 전의 ‘태도’가 먼저 닿았단다.


그래서 말이야, 아들아.

너도 앞으로 친구들과 무언가를 함께할 때,

혹은 어른이 되어 누군가와 함께 일할 때,

서로의 속도를 맞춘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때 꼭 기억해 줬으면 해.


먼저 도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무사히 도착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걸.


“서두르지 않아도 돼.

마음이 닿는 길에는 언제나 너만의 속도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