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4월 중순 어느날,
나는 광양 시내를 돌아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따, 이쁘다! 엄마 그렇죠?”
“긍께 좋다. 저게 무슨 나무다냐?”
“이팝나무예요.”
“이팝?”
“네. 이름이 왜 이팝이냐면 말이죠, 배고픈 시절에 저 하얀 꽃을 보면 마치 사발에 흰 쌀밥이 소복이 담긴 거 같아 이밥나무라고 했다가 이팝나무로 불렸다고 하네요. 이밥은 쌀밥이거든요. 그래서 저 나무를 쌀밥나무라고도 해요.”
“아, 그렇구나!”
엄마는 한동안 그 이팝나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호된 시집살이라도 배만 부르면 산다고 했다.”
“네? 아!”
그러더니 엄마는 옛날 생각이 떠오르는지, “아이고 몸써리나!”라고 탄식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밥도 선나선나 주고 배도 많이 골았는데, 그 요상한 시누가 시어머니보다 더 독살스럽게 했다니까.”
엄마는 고모가 서운하게 했던 일이 떠올랐나 봅니다.
나는 대체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여 엄마의 넋두리에 귀를 기울였죠.
“지가 쌀을 내다가 밥을 해가지고 다 떠주고 나한테는 남은 누룽지 바닥을 박박 훑어 그릇에 한 숟가락씩만 담아주더라니까. 그것을 부뚜막에서 눈물 훔치면서 떠먹고. 젊어서는 밥이 모다 맛나가지고 안 씹어도 그냥 넘어가불대. 그렇게 배고팠어, 각시때는.”
“고모가 왜 그렇게 얄미운 짓을 했을까요?”
“그렁께 말이다. 한번은 우리 서방이 나 먹으라고 밥을 한 숟가락 남겨 놓으니까 시누가 그 밥을 딱 가져다가 장끄방 독아지 바구니에 싹 다 부어버리고 나서는 똥이 빠지라고 밖으로 도망가불더만, 내가 묵을까봐.”
엄마는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분이 안 풀리는지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습니다.
엄마의 그 같은 상기된 표정을 보니 엄마가 좀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서방이 밥이 많아서 남겼것냐, 한 숟가락 나 먹으라고 일부러 밥을 남겼지. 문댕이 같은 년!”
“참내, 고모도 좀 그렇다.”
“긍께, 나한테 유독 그래쌌대. 밥이 남아도 시누가 그 염병을 하더라고, 시누이 노릇 톡톡히 했어!”
엄마는 머나먼 시절의 배고픔이 엊그제 일인 양 진저리를 쳤습니다.
시누이와 올케는 본질적으로(?) 좋은 사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고모가 해도해도 너무 야박하게 군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야 이맘때 있었다는 춘궁기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세대가 아니어서 그 당시 배 골던 서러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엄마의 한탄 소리만 들어도 이팝나무 꽃이 왜 쌀밥으로 보였을지 능히 이해가 갔습니다.
“또 한 번은, 정개서 거적문을 열고 돌아가면 뒤란이 있고 거기 오목한 데 짚더미를 쟁겨놨거든. 그런데 시누가 밥을 해가지고 밥이 많으니까 한 양푼 밥을 퍼다가 그 짚더미 속에 딱 숨겨놨어. 그런데 언제 한번은 병아리가 어디서 삐약삐약 하니까 시어머니가 무슨 병아리가 삐약삐약 소리를 하냐 싶어 소리가 나는 그 짚더미를 끄집어냈더만 그 안에 밥을 수북이 담은 양푼 하나가 있었거든. 그런께 시어머니가 시누를 방으로 오라고 하더니 따끔히 혼을 내더라고. 시집가서도 요런 나쁜 버릇을 할 거냐 하며 머리카락을 오독오독 쥐어뜯고 그랬는데 내가 말기고 그랬어. 나한테는 쬐금 한 숟가락만 주고 숨겨놨는데 그 병아리 땜에 들통이 났던 거지. 동네 사람들이 그걸 다 알고 샘에 물을 뜨러 가면 나한테‘질부 이리로 오소’하여 따라가면 정개 부뚜막에 밥 한 그릇을 떠줘서 먹고 그래당께. 시누가 모락시럽게 한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나를 짠하게 여겨 그랬거든.”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창밖을 내다보며 꽃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옛말에 고된 시집살이라도 배만 부르면 산다고 했어. 아무리 구박을 하더라도 배가 부르게 밥만 주면 열 번도 산다고 그랬다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엄마를 슬쩍 봤더니 까무잡잡한 얼굴에 슬프고 아린 그림자가 언뜻 드리워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사람 밥 많이 주는 게 제일 공이란다. 제일 복 받는다고 했어.”
요즘 사람들은 배만 부르면 그 혹독한 시집살이를 열 번은 한다는 말을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우리 엄마들이 배 탈탈 굶으며 허리끈을 졸라 맬 때, 일 년 중 가장 허기질 때 왜 하필 이팝 꽃은 저리 흐드러지게 피었을꼬. 얼마나 굶주렸으면 저 꽃송이가 쌀밥으로 보였을꼬...
나는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마냥 이쁘기만 보이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