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는 엄마는 생전에 아버지와 금실이 좋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상하고 살갑게 챙기는 분이 아니었고, 오히려 엄마를 속상하게 한 적이 많았다. 아버지는 큰집의 장손답게 가부장적인 권위자로서 집안을 다스렸는데, 특히 청상과부였던 할머니의 이간질로 엄마를 매섭게 닦달하곤 했다. 어린 자식들은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고 엄마는 눈물바람과 한숨으로 모진 세월을 견디며 살아오셨다. 운명처럼 모든 걸 받아들인 엄마도 그런 두 모자(母子)를 적잖이 원망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살아도 영감, 죽어도 영감이여!”
나는 엄마 집에 가면 우선적으로 해야 되는 일이 있다. 다소간이라도 집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는 일이다. 방안과 거실에 마스크며 옷가지, 보따리 등 여러 잡동사니가 어지러이 널려져 있어 정신이 사납기 때문이다. 엄마는 서랍장이나 장롱 등에 뭔가를 숨기고 그 뭔가를 찾으려 여기저기를 뒤지느라 방안이 늘 어수선하다. 방이 어수선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사방에 메모를 해놓는 버릇이 있었다. 갈수록 희미해지는 자신의 기억력을 의식해서일까... 잊지 않으려는 다짐을 하듯 눈에 띄는 곳 여기저기에 연필로 크게 글자를 써놓곤 하였다. 벽이며 달력, 심지어는 저금통장 안쪽에까지 메모가 빽빽이 적혀있었다. 나는 궁금하여 그 너덜너덜한 통장을 펴서 엄마가 써놓은 글귀를 한 번씩 읽어보곤 하는데, 아버지의 기일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자식들이 모이지 못하고 엄마의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아버지 제사를 모시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엄마는 그 일이 자꾸 마음에 걸렸는지 자신 탓인 양 한숨을 쉬며 이렇게 심경을 토로하곤 하였다.
“밥이나 한 그릇 따땃하게 해서 상에 올려놓을 걸, 그걸 못했다야. 나이를 먹어가니까 자꾸 깜박깜박하고, 제삿날도 까먹고... 영감 미안하우!”
나는 엄마가 항상 놓고 보시는 화장대 위 가족사진을 보며 언제나 이렇게 다시 만나볼까 생각하다 무심코 뒷면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도 아버지 기일 날짜가 큼지막하고 또박또박하게 적혀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 기일은 잊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랄까,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부부간의 정이라는 게 자식은 모르는 또 다른 각별한 데가 있는 거 같았다. 나는 당신의 심정을 헤아리듯, 엄마에게 ‘딸밥은 서서 먹고 아들밥은 앉아먹고, 영감밥은 누워먹는다’는 말이 있다고 하니, 엄마는 히죽 웃으시며 그건 맞다고 했다.
엄마와 얘기를 하다 눈길이 벽에 걸린 그림으로 향했는데 가만히 보니 그 그림에 뭔가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지인이 정성스레 유화로 그려 선물로 준 그림인데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도 아버지 기일 날짜가 또렷이 적혀있었다. 엄마는 그림이야 훼손되든 말든 안중에 없었다. 자식들이 설마 아버지 기일을 망각하겠는가만은 엄마 딴에는 안심이 안 되는지 사방에 아버지 기일 날짜를 적어놓으셨던 것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초겨울 바람이 매서울 때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칠십도 못 잡수시고 운명을 달리하여 내 마음에도 바람이 많이 불었었다.
생전에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는 아버지의 그 무엇이 엄마의 마음에 자리잡았기에 저리도 낙서(?)를 해놓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엄마에게 물었다.
“아버지가 가끔 생각이 나요?”
“무슨 생각이 나것냐만은, 고마운께 그러지.”
“머가 고마운데요?”
“느그 아부지가 연금을 타게 해준께 고맙지, 내가 연금을 안타면 어떻게 살겠냐.”
“아버지가 연금을 타게 해준 게 그렇게 고마워요?”
“그럼, 내가 연금이 나온께 자식들 눈치도 안보고 살아가잖니.”
“딴 거는 고마운 거 없어요?”
“딴 거는 머...”하며 말을 얼버무리시기에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럼 아버지가 미운 건 머예요?”
“같이 살 때 각시질 한 것이 미웠지.”
“음... 엄마, 남자들은 한 번씩 바람피워요. 남자 종자들은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었어요.” 라고 말하며 나는 아버지를 두둔했다.
엄마는 내 말에 별 반응은 없는 듯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셨다.
“자식들도 다 복잡하고 그러는데 아이고 느그 아버지가 연금을 안 해놓고 갔으면 내가 서러워서 어찌 살것냐, 아이고 못산다. 그래서 살아도 영감 죽어도 영감이여!”
나는 엄마의 영감 타령을 들으며 내 처도 나중에 ‘살아도 영감, 죽어도 영감’이라고 고마워할까 하는 상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도 엄마는 아버지가 차려준 따뜻한 밥을 누워 잡수시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