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엄마의 은행 일을 보기 위해서 엄마를 모시고 은행에 간 적이 있었다.
내가 신청서에 엄마의 인적사항을 써서 건네주자 그곳 여직원이 감탄하듯 말했다.
“어머나! 이름이 참 이쁘시네요!”
여직원은 고령의 어르신 이름이 옛날 이름 치고 이쁘다면서 엄마에게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진정성(?) 있는 아부성 발언을 하였다.
나는 엄마 대신 어깨가 으쓱해지며 흐뭇한 미소로 화답하였다.
엄마 이름은 어디 가서 말해도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엄마 이름은 말 그대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는 느낌이다.
그 반면 나는 내 이름을 말하기가 싫다. 그건 누나와 여동생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당신의 자식들은 이름이 다 촌스러워 불만들이다. 쌔고 쌘 이름 중에 하필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 모르겠다. 개명할 수 방법까지 알아보다 귀찮아서 포기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작명에 관한 한 아무 권한도 없었던 엄마에게 따질 수도 없는 문제이다. 어떻게 보면 엄마 이름이 부러워서 하는 투정이다.
요즘 신세대 아이처럼 이쁜 우리 엄마의 이름은 ‘서정이’다.
모 연예인을 닮은 이름 같기도 하고 내가 옛날 좋아했던 여자애 이름 같기도 하다. 엄마도 자기 이름은 누구나 이쁘다고 칭찬하니까 ‘그런 말 많이 들었다’며 흡족해하신다. 아마도 엄마 이름을 지어주신 외할아버지는 고리타분한 틀을 벗어난 깨어있는 분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엄마는 이쁜 이름이 있음에도 사실 이름이 없는 분이다.
엄마의 이름은 서류나 작성할 때 필요할 뿐이지 평상시에는 그 용도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이름은 그냥 “엄마”이다. 어머니, 어머님도 아니고 옛날 어린아이 때부터 부른 그 이름 그대로 지금도 엄마이다. 나이가 지금 몇 개인데 점잖지 못하게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냐고 누군가 핀잔을 하거나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라고 부르면 오글거리고 징그럽다고 손사래를 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여전히 엄마이다. 엄마는 한번 엄마이면 영원한 엄마인 것이다.
꽃같이 이쁜 엄마 이름을 두고 그냥 ‘엄마’라고 부르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서정이 엄마!”라고 부를 순 없지 않는가.
“엄마!”라고 부르고 되뇌는 것만으로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각별한 애틋함이 있고 뭔가 울컥하며 형언할 수 없는 애잔함이 있다. 바다처럼 넓고 우물처럼 깊으며 쨍한 햇살처럼 눈물이 핑 도는 이름. 언제나 내 마음의 고향같은 이름, 오월의 장미같이 이쁜 이름, 엄마!
-이름 없는 엄마-
엄마는 도대체 누군데
이름이 없어요.
이름이 촌스러워 부르지 않는 것 아닐 테죠.
이름이 필요 없었나요.
“엄마!”라고 부르면 누가 부른지 다 아셨나요.
우리가 목말라하면 “엄마!” 부르면 되잖아요.
우리가 목이 메이면 엄마는 늘 곁에 있었잖아요.
‘엄마’요, 참 따스한 이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