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루 Oct 23. 2021

반란군은 인자 없제?

약비가 촐촐히 내리는 5월 중순 어느날 추어탕으로 점심을 한 후 나는 엄마와 순천 청소골로 드라이브를 갔다. 말라붙은 대지에 고운 비를 흩뿌리니 나무와 화초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는 거 같았다. 바람에 이는 풀잎처럼 내 마음도 싱그럽고 푸르게 일렁거렸다. 때마침 오디오에서는 봄비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마가 ‘그만 가자’ 라고 보채시는 걸 ‘조금만 더 올라가보게요’ 라고 말하며  숲이 울창한 깊숙한 안쪽으로 더 들어갔을 때 옆에 앉은 엄마가 문득 말했다.

“여기가 선암사 간 데냐?”

“아니요, 청소골이예요.”

얼마간 들어가니 민가가 몇 호 보였다.

그걸 보더니 엄마는 “저런 골짜기에서 무섭게 어떻게 살까, 저런 데는 호랑이도 반란군도 댕긴다고 하데.”라고 걱정스런 투로 말하였다. 

“호랑이요? 하하 호랑이 한 마리도 없어요. 호랑이 사라진 지 옛날꽃날이예요.”

“반란군은 인자 없제. 반란군들이 호랑이를 다 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여, 반란군들이.” 

“반란군요?”

“전에는 반란군들이 첩첩 산골로 다니고, 옛날에 오래 되었구먼... 나 촌에 살 때 밤에 한 번씩 동네에 내려와서 다 털어가고 그랬어.”

“먹을 거나 물품을 다 가져갔다고요?”

“잉, 쌀이고 머고 먹을 거 달라고 해서 털어가더만.”

“그 사람들은 어디서 숨어 살았대요?”

“가랏골로해서 조계산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하데.”

“우리 할아버지도 반란군이 죽였다고 하더만요. 엄마의 시아버지."

“긍께, 반란군이 죽였다는 말이 있대. 선암사 산에 솔 치러 갔는데 경찰들과 같이 갔는갑더만. 그런디 해가 넘어간께 경찰들은 촌사람들 내려오라고 하고 앞에 먼저 가불고 촌사람들은 뒤에 남아 갈라고 있었다고 하더만.”

“아 그래서요?”

“저 놈들이 몬당에서 그걸 내려다보고 있다 경찰들이 먼저 가부니까 우르르 내려와서 촌사람들 집합을 시키더라만.”

“경찰이 먼저 가불고요?”

“잉, 경찰이 해가 떨어지니까 무서웠는지 주민들 뒤에 오라고 하고 앞에 핑 가불고.”

“저런!”

“솔 치러 간 사람들 집합을 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부장과 반장을 나오라고 해서 산속 깔끄막으로 끌고 가서 죽여 버렸다고 하드라고. 우리 시아버지가 부장인가 했다고 했어.”

“근데 왜 산에 솔 치러 갔대요?”

“숲이 차가지고 있으면 반란군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응께 그렇지. 나무들 사이에 숨어있을 수도 있으니 나무를 드문드문 놔두고 다 잘라라 그래당께. 산을 훤하니 개운하게 해놓으면 반란군들을 찾기 쉬우니까. 전에는 조계산 같은 데에 숲이 차가지고 숨어있고 그랬어.”

“그 반란군들은 어떻게 되었대요?”

“경찰들이 반란군들을 씨나자구 없이 다 죽여 버렸다고 하드라고.”

“씨나자구 없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어버렸다고 하더만.”

“아! 근데 그 반란군들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그랬어요?”

“그러지는 않았제, 하나씩은 죽이고 그랬지만 싹 다 죽이지는 않았제. 반란군들이 먹을 걸 털어가는 건 있어도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그러지는 않았어.”

나는 무슨 말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먼 산을 바라보며 예전에 읽은 ‘태백산맥’ 소설 속의 동족상잔의 배경을 떠올려보는데 엄마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멀 할라고 반란군을 할려고 그랬을까?”

“그 사람들이 왜 그랬냐면은요. 모든 사람이 차별당하지 않고 똑같이 잘 살아보자고 그런 것이예요, 엄마. 반란군 그 사람들도 다 힘없는 백성들이고 똑같은 사람들이여요. 그 당시에 하도 악질 지주들한테 착취를 당하고 시달린 나머지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자고 들고 일어선 것이지요. 모두가 헐벗고 굶주리지 않고 골고루 평등하게 잘 살아보자고요.”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엄마의 의중을 은근 떠보듯이 말했다. 

“잉, 그런 말도 있더만.”

“그때는 빈부격차가 심했잖아요. 가진 자의 횡포에 없는 사람들은 맨날 당하고만 살고 그래서, 그걸 고쳐보려고, 세상을 한번 바꿔보자고 그런 것이지요. 그 사람들도 시대의 피해자거든요.”

“그렁께, 그 사람들도 좋은 일 하려다 쌔가 빠지게 고생만 하다 죽어버려서 짠하기는 혀.”

순진무구한 울 엄마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반란군의 기구한 삶에 혀를 찼다.    

할아버지가 ‘반란군’에 의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집안은 반란군에 치를 떨며 비난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할아버지를 죽게 한 것은 반란군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과 그 모순을 타파하려는 시도를 정치권력투쟁으로 몰아간 일부 사악한 특권층이었다. 

엄마는 반란군에 대한 무서움과 애틋한 연민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호랑이와 반란군, 모두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한때는 이 산하를 호령한 쩌렁쩌렁한 울림이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어쨌든 그들이 사라진 이 땅에는 민초가 진정으로 주인으로 대접받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어찌 그들의 피가 헛되었다고 할 수 있으랴. 

반란군들의 한이 서린 눈물이라고 할까,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이전 07화 엄마의 아들 타령과 나의 반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