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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Oct 23. 2021

문을 세게 닫는 엄마

일요일 오전 엄마 집에 들른 작은형으로부터 가족 단톡으로 이런 내용으로 연락이 왔다.

‘어머니 집 현관문 고장입니다. 어머니가 현관문을 세게 닫는 바람에 문틀이 틀어져 자동키 구멍이 안 맞아 문이 닫히질 않네요. 누구든지 문을 찬찬히 닫으시라고 자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나도 엄마 집에 갈 때마다 자동잠금장치라 현관문 살며시 닫아도 자동으로 문이 잠긴다고 귀 따갑게 말씀드린 사안이다.  

엄마는 출입할 때마다 현관문을 어찌나 세게 쾅쾅 닫는지 건물이 다 흔들릴 정도이다. 옆집에서 민원이 들어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잠자는 아기가 깜짝 놀라 깨서 운다거나 가만히 있던 애완견이 그 소리에 멍멍 짖는다고 하거나 심장이 약한 배우자가 그 소리에 진저리를 친다느니 하며 항의를 하는 일이 심심찮다. 그 주민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공동주택에 살면서 옆집이 들썩일 정도로 문을 세게 닫으니 민폐중의 민폐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신신당부한다. 

“엄마! 자동문이라 살짝 닫아도 완전히 잠기는데 왜 맨날 쾅쾅 닫으세요? 제발 천천히 닫으세요! 그러다 문 고장나겠어요. 그리고 여기 주민들이 시끄러워 못 살겠다고 난리하잖아요. 아파트라 서로 조심히 해야한단 말이예요.”

그러면 엄마는 그때는 ‘아, 그러냐’라고 말하지만 돌아서면 내 철석같은 당부를 잊어버리고 또 쾅쾅이다. ‘에고~~ 이 일을 어찌할꼬’ 한숨이 절로 나온다. 

기억장애가 있는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주지시킨들 소귀에 경 읽기 식이니 소용이 없다. 그래서 결국은 현관문 틀이 틀어져 고장이 나고 말았나보다. 엄마는 현관문을 꽝쾅 닫는 것도 모자라 안쪽 보조잠금장치인 걸쇠도 항상 걸어잠근다. 내가 엄마집에 방문하여 비밀번호를 누른 후 살며시 문을 당겨보면 안쪽 걸쇠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안방에 계신 귀가 먼 엄마를 소리 높혀 부르면 그때서야 엄마가 달려 나와 그 걸쇠를 풀어준다. 늘상 그런 식이다. 서로가 귀찮은 일이다.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엄마, 이러지 말라고 몇 번 이야기했잖아요! 왜 자꾸 그러세요?” 

그렇게 따지는 나도 사실 답답하다. 왜냐하면 엄마의 대답은 늘 한결같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올까 봐 겁난단 말이다. 밤에 혼자 있으니 누가 저벅저벅 문 앞에 오는 거 같기도 하고, 문을 열어보려고 손잡이를 잡아당겨보는 거 같기도 하고, 아이고 혼자 있으니 겁나서 못살겠다!” 

엄마는 치매를 앓기 전부터 겁이 많으시기는 하였다. 그런데 우려했던 치매증상이 나타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부터 그 무섬증과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엄마의 그런 상태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나 다른 자식이 어찌할 방도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항변하듯이 말했다.

“엄마! 노인 혼자 사는 집에 누가 들어오겠어요? 집에 금송아지를 놔둔 것도 아니고 머 훔쳐갈 게 있다고요, 그리고 자동문이라 비밀번호를 모르면 절대 문을 열수 없어요. 어떤 얼빠진 놈이 감빵 가려고 이런 집에 들어오겠어요. 그리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온종일 시간 보내고 집에서는 주무시기만 하는데 머가 무섭다고 그래요? 자식들이 전화도 자주 하고 그러잖아요.” 

나는 엄마의 반응을 살피며 더욱 안심시켜 드리려고 이렇게 덧붙인다. 

“엄마, 누가 엄마 집에 몰래 들어오면 경찰이 바로 출동하게 되어 있어요. 엄마는 잘 모르지만 경찰이 24시간 시시티브이로 엄마 집을 감시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어떤 또라이가 바로 붙들려가려고 이런 집에 들어오겠어요.”

그때서야 엄마는 “아 그러냐, 경찰이 바로 오냐?”라고 다소 불안감을 떨쳐내려 애쓰신다. 그런 엄마를 보면 난 엄마가 측은해보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누구라도 엄마와 같이 자면 엄마가 저 정도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움에 떨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그 이후에도 엄마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의 무섬증은 여전했고, 그래서 엄마는 안방 문에도 자물쇠를 채우고야 만다. 사람을 시켜 자물쇠를 사다 설치하는 바람에 안방에 들어갈 때는 엄마는 열쇠를 가방에서 꺼내는 수고로움을 더욱 져야 했다. 엄마 집에 들어가는 절차는 더욱 복잡해졌다. 


못 말리는 우리 엄마! 그렇게라도 해야 안심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내 간곡한 요청을 묵살해버리는 엄마를 보면 왈칵 짜증이 나곤 했다. 엄마는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이중 삼중으로 보안을 철저히 하려고 하고 나는 나대로 귀에 목이 박히도록 설명을 하지만 씨가 안 먹히는 상황이 계속될 뿐 엄마와 나의 입장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가급적 밤에 혼자 있는 시간을 줄여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누가 매일 그렇게 할 것인가...  

늘 불안감을 호소하는 엄마, 비정상인인 엄마에게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정상인처럼 행동하라고 다그치는 나. 그 모순된 간격은 아마도 좁혀지지 않는 채 이별이 다가올 지도 모른다. 치매환자의 불안은 오래 전의 일에 대한 과거의 감정으로부터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엄마는 50대인 내가 아직도 물가에 있는 세 살 아이처럼 보이는지 차 조심하라느니, 밤은 남의 시간이니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느니 하는 잔소리를 한다. 노심초사 서로 걱정하는 마음은 똑같다. 서로 세 살 아이처럼 보이는 두 사람, 세월을 돌이켜 보며 안쓰러운 엄마를 이해하고 또 이해해야지 라고 마음을 다진다.

내일은 새로운 아침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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