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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Oct 23. 2021

어디로 갈 것인가?

엄마는 치매가 있는 독거노인이다. 정신이 가끔 오락가락하고 최근 일을 잘 기억을 못하여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곤 한다.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해주는 일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큰 불편함은 없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엄마는 밤에 혼자 지내기 무섭다며 자식들이 어떻게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대책을 요구하는데 나로서는 딱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 자식들 간에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여러 사정상 논의의 진전은 별로 없었다. 

엄마의 넋두리와 하소연은 오늘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이어진다.     

“나 혼자 있으니까 밥맛도 없고 무섭고 적적하다. 누구라도 같이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째야 쓸까...”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남의나이를 먹어가고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게 당연하리라. 하지만 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엄마에게는 매정하고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였다.  

“엄마, 혼자 사는 게 좋아요. 어느 자식이 엄마를 온전히 모시고 같이 살 수 있겠어요? 누가 모시고 산다 해도 다들 바깥일을 하기 때문에 오롯이 돌보기 어려워요. 처음 며칠간은 잘 지낼 수도 있겠지만 늘 대하고 살면 부딪치는 것도 많고 속도 상해요. 아이고 못 살아요, 엄마 스스로가 불편할 걸요. 아들네 집에 가면 며느리 때문에 불편하고 딸네 집 가면 사위 때문에 불편하고.”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별 대안 없이 엄마에게 자꾸 마음을 다잡으라고 채근하는 내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어디서 들은 말이 있는데, 치매 환자는 6시간 이상 돌보면 안 된다고 한다. 6시간 이상 돌보다보면 짜증이 나서 방치 등 노인학대가 일어난다고...

엄마는 치매기가 있지만 심한 편은 아니므로 아직은 혼자 지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누구 한 사람 매일 옆에 붙어서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실정이다. 


엄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러냐?”

“그럼요.”    

그런데 엄마는 누나에게도 자주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나에게 했던 비슷한 말을 울먹이면서 하소연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보니 천사표로 칭송인 자자한 누나도 엄마가 많이 힘들어하니까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을 테고, 그런데 자신도 직장관계와 남편의 눈치 때문에 당장은 집으로 모셔갈 형편이 안 되니까 고민 끝에 요양원에 한번 보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른 게지.

나는 엄마를 설득해야 했다.

“엄마가 하도 그러니까 자식들끼리 요양원 얘기가 나온 거예요. 혼자 놔두면 안 되겠다 싶고 달리 방법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요양원을 보내면 편해요. 거기서 세끼 밥 주고 돌봐주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우리 자식들 입장에서는 신경 안 쓰고 좋아요. 그러나 엄마 입장에서는 그게 안 좋은 거예요.”

“긍께, 요양원에 집어넣어뿔고 나 몰라라 그러겠지. 나도 요양원에는 가기 싫은디.”

“그래서 말씀드리잖아요. 사람도 못 알아보고 거동도 못하시기 전까지는 혼자 지내는 게 좋아요. 자식한테 얹혀 살 생각도 마시고요. 엄마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그래요.”

나는 냉정한 어조로 ‘자식한테 얹혀 살 생각도 마시고요.’라는 말을 내뱉고 나서 씁쓸했지만, 그게 ‘엄마를 위해서’라는 말로 강조하며 위안을 삼았다.

“니 말이 맞다. 성식이 엄마도 니 막내이모도 절대로 자식과 같이 살지 말라고 그러더라.” 

엄마는 ‘혼자 사는 게 맘 편하지’라고 체념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스스로 한심스러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요양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거 같았다.  

“나중에 어쩔 수 없으면 요양원이라도 가야 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마음을 굳게 잡수셔야 돼요. 거기는 맨날 잠만 자고 멍하니 앉아있고 말할 친구도 없으며 활동하는 것도 없으니 치매가 더 심해질 수 있어요. 자식들도 잘 찾아오지도 않고요.”

나는 사실 노인 요양시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시쳇말로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요양원에 대한 엄마의 의중을 떠보고 싶었다. 

“그런데 요양원이 어떤 덴지 알아요?” 

“글쎄다.”라고 말하며 엄마는 우울한 낯빛을 띠었다.

“거기는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워요. 결국에는 숨이 멈춰야 나올 수 있어요. 집에 가지도 못하고 외출도 어렵고 감옥과 다를 바 없다고요.”

“긍께, 맨날 복지관에 깔짝깔짝 다니면서 밥 사먹고 노래도 부르고 놀다가 해거름판에 집에 와서 잠만 자고 그래야겠다.”


엄마는 비로소 나의 말뜻을 알아차린 거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암요, 자꾸 그런 데를 다녀요. 집에 혼자 있지 말고 자꾸 밖에 나가서 할머니들도 만나고 같이 얘기도 하고 놀다 오고 그러세요.”

“그렁께, 니 말대로 앞으로는 그래야겠다.”

“엄마가 집에 계셔야 전화도 종종 하고 자식들이 한번씩 뵈려고 찾아오고 밥도 같이 먹자고 하지, 요양원에 가 있으면 어느 자식인들 자주 찾아오기나 하겠어요?”    

마음이 참 착잡하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으며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상황과 차마 그래서는 안 된다는 도리와 당위성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간다. 구로지은(劬勞之恩)을 갚을 길은 머나먼데, 엄마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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