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소심한 성격에다 되게 수줍음이 많다.
그러다보니 몇몇 친하거나 마음 편한 사람만 만나고, 그렇지 않는 사람은 되도록 거리를 두는 편이다.
세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친구하고는 1주일에 몇 번씩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1년이 다 되어가도 만나지 않고, 우연히 만나도 말을 그다지 많이 섞지 않는다. 말수가 적다보니 오해를 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데 이는 내성적인 기질이 강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런 내 성격이 싫고 사는 게 불편해 내가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보려고 노력하는 등 나름대로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그 시도는 얼마 가지 않았다. 세 살 버릇 한계에 봉착하고 나서야 나는 연출을 포기하고 그냥 이렇게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나는 치명적으로 쑥스러움이 많아 어디 식당에 가서 반찬이 떨어져도 반찬을 더 달라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엄마는 나와는 정 딴판이다.
엄마의 말 스킨십은 정말 대단하다.
엄마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다정스럽게 말을 건넨다. 엄마의 특유한 말 스킨십은 나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옆에 있는 난 겸연쩍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거나 민망하여 딴전을 피우기만 할 뿐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엄마와 동행하는 게 불편한 나머지 종종 엄마에게 ‘엄마 그러지 말아요,’라고 태클을 걸어보곤 하는데 엄마는 얼마 안가 당신의 본성을 또 드러내신다.
엄마의 성격을 내가 살짝만 닮았어도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를 태운 휠체어를 밀고 강변에 산책을 나갔다. 하늘은 푸르고 5월의 장미는 탐스럽게 피어 그 자태가 고왔다. 엄마와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얘기를 하며 한적한 산책로를 돌고 있는데, 저만치서 어떤 젊은 부부가 갓 돌이나 지났을 아이를 데리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엄마는 졸랑졸랑 걸어오는 그 아이를 보자 “아이고 우리 애기 이뻐라!”라고 말하며 팔을 뻗어 그 아이를 안으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이는 그런 엄마를 보자 얼떨떨해 하다가 환한 엄마의 표정을 보자 경계심을 풀고 같이 따라 웃었다. 엄마는 아이 부모에게도 “어디서 오셨슈?”라고 물어보고, 아이 엄마는 “아 네, 광양에서 왔어요. 날씨가 좋네요.”라고 화답을 하니 엄마는 “아 광양! 우리는 순천, 애기가 영 이쁘네!” 하며 다시 환하게 웃으니 아이 부모도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나는 옆에서 가만히 있다 다시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간다.
엄마는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섞고 말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또 얼마치 가니 어떤 아가씨가 자그마한 애완견과 같이 산책을 나온 게 보였다. 애완견과 부딪치지 않도록 엄마 휠체어를 멈추고 한쪽으로 비켜주고 있는데 엄마는 그 강아지에게 “아이고 이쁘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강아지가 걸음을 멈추고 갸우뚱하며 우리 엄마를 쳐다본다. ‘혹시 저 아세요?’하는 표정으로.
그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자 내가 말했다.
“엄마는 강아지한테도 말을 거네요.”
그러자 엄마는 “애기 때는 다 이뻐. 강아지 저런 것도 이쁘다고 하면 꼬랑지 치고 좋아하잖니.”라고 말하여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비단 말뿐이 아니라 마음마저 엄마의 스킨십은 빛나 보였다.
나는 산책로 길가에 올망졸망 핀 팬지꽃, 금잔화 등을 보며 ‘아이고 이뻐라!’라고 속으로 말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고작해야 말 못하고 반응이 없는 꽃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산책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왔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얼굴이 익은 종업원이 “오셨어요?”라고 아는 체를 하며 살갑게 맞는다. 엄마는 그녀에게 “잉, ○○ 다니는 아들하고 또 왔어.”라고 우쭐해하며 환하게 웃으신다. 나는 물론 고개만 까닥하고 아무말 없이 엄마 자리를 잡아드렸다.
그 종업원이 반찬을 가져다주면서 “아드님이 밥도 사주고 좋으시겠어요.”라고 부럽다는 듯이 말을 건네니 그 종업원 손을 잡으려 하면서 “이쁘네, 울딸 같네.”라고 칭찬을 한다.
우리 좌석 한 칸 너머 옆좌석에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 어린 아이도 끼어있었다.
엄마는 음식을 드시다가 그 아이를 보더니 눈동자가 빛나며 “아이고 이뻐라!”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그 아이의 눈이 휘동그래졌다. 그러자 엄마는 우리말을 못 알아듣는 그 아이에게 팔을 머리 위로 들어 둥글게 하트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이뻐, 사랑해!”라고 말하는 센스를 발휘해주었다. 아이가 그 뜻을 알아듣고 까르르 웃었다. 엄마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옴마, 잘 묵었네.”라고 큰소리로 애기한다. 그러면 나는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대고 ‘쉿 조용히 좀 말해요’ 라고 주의(?)를 준다.
엄마는 사람이건, 동물이건, 이방인이건 가리지 않고 선한 감정을 유감없이 드러내서 그들의 마음을 밝게 해준다.
엄마는 치매노인이다. 치매노인은 언어기능 등의 저하와 성격변화의 증상이 있다고 하는데 굉장히 말도 잘하시고 늘 온화한 모습의 엄마를 보면 치매와는 거리가 먼 듯싶다.
엄마의 사근사근하고 유별난 붙임성은 때로 나의 얼굴을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나의 로망이다. 나는 엄마와 동행하면서도 결코 동행이 되지 않는 내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울 엄마 아들 맞니?
넌 왜 엄마 성격을 1도 안 닮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