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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Oct 23. 2021

친구랑 하숙 치냐?

엄마는 방금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해 반복해서 물어보고 나도 늘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나는 서너 살 때의 기억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나도 그때 엄마에게 “엄마, 이게 뭐야?”라고 똑같은 질문을 하였을 것이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잉, 그거 메주를 쑤는 콩이란다. 나중에 된장, 고추장도 해먹고 하는 메주콩이란다.”라고 몇 번씩 대답해줬을 것입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하는 질문과 변함없는 대답 속에 나는 성장해왔고, 내가 성장하고 난 뒤에는 엄마는 기억이 깜박깜박하면서 똑같은 질문과 대답 속에 늙어갔죠.  

똑같은 건 자식에 대한 당신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변치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드라이브 하는 내내 엄마와의 대화는 변함없습니다. 당신의 손녀인 수빈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늘 한결같습니다.     


“우리 수빈이 대학교 1학년이냐? 2학년이냐?”

“2학년요.”

“우리 수빈이 어느 학교 다니냐?”

“○○대학교요."

“공부가 3년간이냐, 4년간이냐?”

“4년이요.”

“친구랑 하숙 치냐?”

“아니요. 기숙사에 있어요.” 

“친구랑?”

“네.”

“하먼 그래야지, 친구랑 같이 있어야지.”

“우리 수빈이 ○○대학교 친구랑 딱 붙여 같이 넣어놨냐?”

“네.”    

그런데 얼마 안가, 엄마는 또 물어보신다.

“우리 수빈이 친구랑 하숙 치냐?”

“아니요. 기숙사에 들어갔어요.”

“올해 1학년이냐, 2학년이냐?”

“올해 2학년요, 2학년!”     

엄마는 만날 때마다 늘 수빈이에 대해 물어보는데, 사실 대답하기 귀찮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해주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람. 한 템포 시간 지나면 또 물어보시니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수빈이 1학년이냐?” 라고 물어보면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다 무심코 “네.” 라고 대답할 때도 있다. 엄마의 기억에는 수빈이가 1학년도 되었다가 2학년도 되었다가 할 것이다. 건성건성 무성의하게 대답하는 내 자신을 때로 질책하기도 한다. 엄마가 똑같은 질문을 하면 “아이고 우리 엄마가 수빈이한테 관심이 많구나, 우리 수빈이 좋겠다. 우리 수빈이 2학년이예요.”라고 밝게 화답하며 브이 자로 손가락을 두 개 펴 보이면 엄마는 방실방실 웃으실 텐데 다짐이 공염불이 되고 말같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수빈이가 대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인지 헷갈려하고 대학이 3년제인지 4년제인지 늘 오락가락하지만 수빈이 기거하는 곳에 대해서는 항상 질문이 똑같다.

수빈이는 기숙사 들어갔다고 말해도 엄마는 기숙사라는 단어는 모르는 양 항상 “수빈이 친구랑 하숙 치냐?”라고 물어보신다. 

다른 건 ‘1학년이냐? 2학년이냐?’ 식으로 이거냐 저거냐 둘 중의 하나로 구분지어 물어보시는데, 객지에 있는 수빈이의 거소에 대한 질문은 늘 ‘친구랑 하숙치냐?’ 였다.

사실 엄마가 기숙사라는 곳을 모를 리 없다.

옛날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갈 때 엄마와 같이 무거운 이불이며 짐 보따리를 나눠 들며 기차를 타고 올라와 기숙사란 곳을 살펴봤기에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이다.   

나는 그 점이 이상하고 궁금하여 넌지시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이유가 있을 거 같았다.

“왜 자꾸 친구랑 하숙치냐 라고 물어보세요? 수빈이 기숙사에 있다고 몇 번 얘기했는데요.”

엄마는 “친구랑 딱 쨈매서 하숙을 쳐야지, 안 그럼 무섭다. 서울이 얼마나 무섭고 험한 곳인데 친구랑 같이 딱 있어야지. 하숙치면 거기 주인이랑 여러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냐.”라고 대답했다.

나는 무릎을 딱 쳤다.

사실 나도 그 대목을 걱정하긴 했다.

우리 수빈이가 얼마 전에 큰 수술을 해서 어디든지 혼자 놔두면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걱정이 되었지만 기숙사에도 룸메이트가 있고 여러 친구가 있으니 혹시 무슨 일 있더라도 케어가 가능하고 괜찮을 거 같았다. 

엄마는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수빈이가 안전하게 생활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늘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 내게 주지시키듯 물어보셨던 것이다. 손녀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엄마의 소망은 늘 변함없는 질문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엄마에게 “수빈이 하숙이 아니라 기숙사에 있어요. 거기도 친구와 같이 방을 쓰고 서로 살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엄마는 “아 그래야지. 친구랑 같이 하숙을 쳐야지, 그래야 마음이 놓이지 암. 혼자서는 못쓴다, 혼자서는 절대 댕기지 말라고 그래. 총각들이 끌고 가도 친구가 있어야 말을 해주고 글제.”라고 말씀하신다. 

엥 또 하숙? 어쩔 수 없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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