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었을 때의 나는
난 어렸을 때부터 무척 뚱뚱했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옷을 살 때 내 사이즈의 옷이 있었던 적도 거의 없다. 재수할 때 스트레스로 인해 22kg이 빠진 바로 그 해. 세상은 내게 갑자기 너그러워졌다. 무슨 옷을 입어도 칭찬을 들었고 키가 크고 늘씬해서 부럽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었다. 이때부터 나는 외모에 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맛에 맞춰진 내 외모를 계속 간직하고 싶어서.
외모. 몸매, 얼굴, 키.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이 상대방을 처음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만큼 연인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배제할 수 없는 조건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은 극히 드물다. ‘이 정도면 이 사람과 사귈 수 있어.’라는 기준이 모두 있지 않은가? 난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당신들의 하한선을 넘어 더 매력적인 이성으로 보이고자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결국 불행을 야기했다. 엄격한 식단관리, 그리고 폭식증과 우울증. 내가 아닌 내가 되고자 한 결과는 이러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에서야 나를 사랑하고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혹여 실망스럽더라고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내가 정말 좋았다. 그러다 당신이 내 삶에 등장했다. 내가 쌓아온 삶과 그 가치도 모른 채. 썩어갔던 속을 겨우 파내고 새로이 자라나려는 나는 부러지기 쉬웠다.
Reassurance : words of advice and comfort intended to make someone feel less worried
나 자신을 소중히, 그리고 대단히 여길 줄 모르던 나는 홀로 있는 게 두려웠다. 내 이전 연인들은 나의 이런 점 때문에 떠났을 까. 문득 떠오르면 나 자신이 참 하찮고 부끄럽기만 하다. 그것 하나 못하다니. 하는 마음.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채 타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나를 위로해 달라고 요구했다. 옳지 않은 행동이었다. 상대방을 너무나 지치게 만들고 나 또한 어떠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별 후 홀로 지내는 시간을 가지며,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파도치던 내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졌는데, 문득 나타난 당신은 그 고요에 돌을 던진다.
“허리만 조금 얇으면 완벽할 거야.”
“웨이트트레이닝을 그만둘 수 없을까? 네 몸이 더 커지면 어떻게 해.”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야? 또 먹어?”
“오늘 유산소 30분 했어?”
“여자는 꽃 같아야만 해.”
평가로 시작되었다. 처음에 당연히 화가 났다. 그래도 나도 더 완벽한 몸이었던 나를 기억하기에, 이를 좋은 충고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매 순간 나는 시험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모습이고 운동은 했는지. 식단은 잘했는지. 나의 모든 것을 지적하는 그 모습에 질려버렸다.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내가 먹는 양을 확인하고, 내가 주문하는 메뉴 또한 그 과정을 거친다. 옷을 입으면 그 또한 평가의 시작이다. 나를 그토록 바꾸고 싶으면 나를 만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의 배려심 많은 성격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자신을 존중해 주는 모습이 만났던 그 어떤 여자들보다 아름다워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소중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지. 내가 수차례 말해도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넘기는지. 내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었는지. 당신이 모르는 나의 씻고 싶은 기억이 그에겐 그렇게 가벼운 것일까. 난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당신의 말들이 나를 참 멀어지게도 한다.
결국 난 5kg을 감량했다. 여느 때처럼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눈물이 났더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먹는 것을 다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음날 부으면 어떻게 하지? 내가 이뤄 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끝없는 걱정만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힘들게 얻어낸 자기 확신은 온데간데없이 다시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