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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Jan 02. 2024

스물다섯, 그리고 연애 #10

마무리

 한 해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마음을 추스르고자 시작했던 스물다섯 살의 브런치스토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나만의 사람을 찾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교환학생이 별거 아닌 것처럼, 마치 영원이라도 기다릴 것처럼 말하던 그는 나를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놓아버렸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순진했기에 내 마음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은 듯하다. 말이란 참으로 가벼워서, 상대를 꾀어내고 속이는 데 사용됨을, 내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만 보아오며 자랐던 나는 몰랐다. 지키지 못할 약속, 거짓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 지금이다.


 핀란드에서 이별 후 나에게 호감을 표한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핀란드 국적의 베트남인이었다. 나보다 3살이나 어리고 훤칠한 키를 자랑했던 그는, 여전히 SNS로 내 안부를 묻는다. 이별 후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를 마음에 담을 수 없던 나를, 가끔은 밖에 나가기조차 힘들어했던 나를 위해 같이 운동해 주고, 차로 바래다주던 좋은 친구였다. 그가 고향인 헬싱키로 떠나기 전, 나에게 준 초콜릿밀크셰이크와 에스토니아에서 온 작고 파란 키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어떤 무례 없이 그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순수하게 보여줬던 그에게 너무 감사한다. 그를 보며 아직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한 명은 체코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다. 1월에 세탁실에서 길쭉한 키, 금발과 회색빛 눈동자로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하던 그가 기억난다. 우리는 바로 앞의 건물에 살면서도 몇 개월간 교류가 없었다. 그러다 따뜻한 봄이 시작된 5월, 학교 내에 위치한 마트에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같이 장을 보고 집에 가던 길에 나에게 함께 운동하자며 약속을 잡았던 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애 치고는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 새삼 놀랍다. 한 번의 운동 끝에 계속 약속을 잡고 싶어 하던 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러다 몇 번은 운동 후에 서로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내가 갔던 학교에는 체코에서 온 교환학생이 꽤 있었는데 체코 학생들끼리 모이는 'Beer Tasting' 모임에 고맙게도 나를 초대해 주었다. 우리 둘은 모임을 진행할 장소를 모색하려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다. 마침내 빔프로젝터가 있는 아늑한 공간을 찾았고, 빈백에 누워 말없이 몇 분을 누워있었다. 참지 못한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Hey, I wanna ask something about us."
"Which one?"
"Do you like me?"
"... Yes. What about you?"
"I do like you. But we have only a week stay together. That makes me sad."
"Yes. I thought about that also. So I didn't tell what I feel about you honestly"


 애매모호함을 돌파하고자 던진 돌은 커다란 동심원을 그리며 내 마음을 울렸다.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기쁨.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절망감이 공존했다. 어쩌면 우리 둘 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이 관계에 어떠한 약속도 내뱉을 수 없음을 알았기에 침묵을 유지했을 것이다. 난 그래도 달콤한 거짓을 말하지 않는 그가 싫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지금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운동을 하고, 사우나를 하러 가고, 밥을 같이 먹고, 때로는 함께 영화를 보았다. 그러다 이별 전 날이 되었다. 나는 순수한 우리의 관계를 상징하는 흰 장미 꽃다발을 샀다. 그는 차를 빌려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몰 장소에 나를 데려갔다. 눈물이 왈칵 났다. 이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저버려야 한다니.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마음을 표현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눈 깜짝할 새 나의 스페인 여행 날짜가 다가왔다. 이 날이 지나면 그 또한 체코로 돌아가기에, 그를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아침에 나를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인 세탁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내가 준 꽃들 중 가장 예쁜 한 송이를 골라와 나에게 건넸다. 내 마음을 소중히 여겨준 그가 참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낸다. 하지만 연락이 뜸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삶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준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는 데이팅앱을 이용하며 만나게 되었다. 이별 후 여전히 아픔 속을 헤매고 있던 내게 태국인 친구가 한 애플리케이션을 추천해 주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데이팅앱의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기에 이용하고 있지 않다가, 심심한 어느 날 내 남자친구를 발견했다. 당장 약속을 잡아 어디라도 나가고 싶었던 나는 약속을 잡고 그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다.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 그때 나에겐 그것만 있으면 되었다. 몇 번 더 만나보며 그를 관찰했다. 나에 비해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19살에 모국을 떠나 우리나라로 와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에 바로 취직하여 지금까지 일만 해온 사람이다. 내 남자친구에게 나는 처럼 자란 아이로 보였겠다. 부모님 두 분 다 좋은 직장에 돈 걱정 없이 공부하는 삶. 그에게는 꿈꾸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울하다, 폭식증이다 힘들어하니 게을러 보일지도. 그는 나를 이해할 수없고, 나 또한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 우리라는 두 점을 한 직선상에 놓이게 한 것이겠다. 앞으로 우리의 행보가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할 것.


아파도 후회 없이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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