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좋을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

안전제일 불행은 없다

by 청개구리엄마

20대 후반이 막 시작돼서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하기 전 나는 별로 크게 잘나지도 못나지도 그럭저럭 지냈다

아마도 아이가 이쁘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게 은연중에 부담스러웠나 아이를 낳고 보니 남에게 잘못된 말도 상처 주는 일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기분에 더더 착하게 살고 잘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가 3학년이 되는 해 설연휴를 앞두고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막냇동생은 3살이 되기 전 설전에...

그날은 시골 할머니 집에 아빠형제들이 모두 모여서 설날을 준비하러 다들 모여있고 나는 엄마 아빠도 없이 동생들과 놀았던 거 같다 새벽인지 밤인지 모를 어두운 시간 나를 찾는 숙모의 얼굴이 아빠가 돌아가신 것 가셨구나 느껴졌다

몇 년을 아프셨던 걸로 기억 배에 복수가 차고 물을 빼던 모습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서 말할 때 이만 누렇게 보이던 얼굴 너무 아파서 그런 건지 화가 나서 엄마에게 나쁜 행동을 하던 모습 이제는 30년이 넘어서 그것도 희미하다 아빠의 나쁜 기억을 지우려 하듯 하다

둘째 동생은 그 기억에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자다가 이불에 소변을 하기 일쑤였다 아빠의 기억은 막내에게는 없는 거 같다 그저 아빠 누구누구이고 일 년에 한 번 산소로 절하는 게 다인 듯싶은 기억이라곤 없는 사람


그래도 내가 제법 크다고 아빠는 병원에 갈 때 나를 종종 데리고 다닌 기억이 평생 아빠를 따뜻하게 기억하는 내 유일한 아빠를 추억하는 시간들이다 식당일 나가는 엄마 대신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점심때 아빠랑 먹었던 냄비가락국수 맛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아빠가 힘이 없어서 못 메던 약가방도 내가 들고 버스 타고 집에 오던 기억이 나는 너무 좋다 동생들에게 없는 나와 아빠의 추억이라 늘 미안하기도 했다

(어릴 적에 한약가방이 검은 천으로 배낭처럼 멜 수 있어서 그걸 약가방으로 사용한 거 같다)


돌아가신 뒤에 엄마는 더 힘든 환경에도 우리를 억척같이 보호해 주셨다

돈이 없어서 가게방에 네 식구가 잠자고 샤워할 곳도 없이 빨랫줄로 이불커튼을 치고 씻어도 네 식구 같이 사는 걸로 엄마는 우릴 위해 억척 같이 장사를 하고 월세도 내고 방한칸 한 칸 늘리며 우리들 밥 굶지 않게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다


내 나이 20 몇 살이 지나 식당장사로 작지만 방 2개 아파트를 구한신게 엄마의 최고로 기분이 좋은 날이라는 건 최근에 알게 되었다 번듯한 집을 구해서 연탄보일러가 아닌 가스보일러로 따뜻한 방에 자식들이 잘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는 정말로 최고로 행복하지 않았을까


내가 자식을 키워 보니 엄마가 우릴 버리지 않고 자식들을 위해 집안을 일으킨 게 대단하고 고마웠다

브랜드옷을 못 입어도 주변에 사는 언니들에게 얻은 옷과 신발가게 아줌마가 아저씨 몰래 주는 신발로 새신도 신어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시장통 식당 가게방에서 누가 열어볼세라 커튼으로 창문을 꼭꼭 가리고 우리 삼 형제가 잠들어도 밖에서 엄마가 열심히 장사는 공간이 있다는 게 묵묵히 살아와 주신 엄마에게 늘 감사하고 고맙다


살아오면서 내 불행은 그때 이후로 없다고 마음 한구석 생각해 왔다 점점 나아지는 우리 가족들의 삶에 만족하고 공짜를 바라지도 노력 없는 대가를 바라지도 누구를 속이려 들지 않고 늘 그때의 시간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잘 살고 또 행복하게만 해줄 거라 믿음으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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