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 모음1

최후의 한 잔

시수필

by 인해 한광일

화웅의 목을 따 들고

아직 식지 않은 한 잔을 들이켰다는

천하의 관우도 못해 본 잔


하기사

평생 반주를 즐기셨던 아버님도

마지막까지 드신 것은

팔뚝으로 스며든 수액뿐이셨다


목이 말라서

출출해서

우울해서

기뻐서

반가워서

화가 나서

허무해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알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이유였던 한 잔을

평생 차려 내기만 하셨던 어머님


실은

푸른 보리밭 위에 바람 뒹구는 풍경을

예뻐라 예뻐라 하셨으면서도

생신 때 내미는 잔마저도

보리밭 근처에도 못 가는 걸 모르냐며

손사래치시던 어머님이


반 년나마

췌장암을 품고 지내던 마지막 날에

막걸리 한 잔 청해 모두를 놀래켜 놓으시곤

몇 번 입맛을 다셔가며

평생 처음 드시고 가신 최후의 한 잔은


끝내 안 풀리던 인생의 검불에

마지막으로 불을 지르신 건지

그게 아니면

희노애락애오욕의 소용돌이가

그때까지도 어지러우셨던 건지

끝내 대답이 없으셨다


종종 잔을 기울이면서도 나는

어머님의 마지막 잔을

도통 해석해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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