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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광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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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Jan 30. 2024

가야 태자 월광기

2. 바람 앞의 등불

 

  백제는 신라로서도 버거운 상대였다. 십팔 년 전, 이뇌왕이 법흥왕을 마주친 것은 백제의 침공으로 대가야가 몹시 혼란을 겪던 때였다. 백제와 대가야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오히려 대가야와 신라 간의 국경이 어수선해졌다. 대가야인들이 난을 피해 신라의 국경을 넘나드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가야의 난민들이 국경에서 신라군의 칼을 맞는 등 경비가 엄중했으나, 법흥왕은 더욱 단호히 어수선해진 국경을 정비해야겠다며 몸소 국경 지역을 시찰하고 다니던 중이었다. 법흥왕은 갑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대가야가 백제에게 멸하게 된다면 대가야와 신라의 국경은 곧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 될 것이었다. 왕은 서둘러 대가야 난민들에 대한 국경의 칼을 거두게 했다. 오히려 국경 이편에 난민 마을이 자리 잡는 것을 관망케 했다.


  ‘옳거니, 법흥제도 마음이 편치 않은 게 분명하군. 우리가 백제한테 시달린다하니 장차 우리 대가야가 멸하게 된다면 화가 신라에 미치지 아니한다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대가야의 젊은 이뇌왕은 법흥왕의 불안을 간파했다. 백제군을 뒷걸음으로 겨우 막아내고 있는 대가야는 그야말로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이뇌왕은 신라가 간절했다. 그러나 법흥왕을 직접 만나고 싶다 해도 어찌 한 나라의 국왕으로서 다른 나라에 든단 말인가. 그런 일은 항복할 때가 아니면 불가(不可)한 일이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다른 나라에 드나드는 일은 가야제국(諸國)끼리나 있는 일이었다. 백제 무령왕의 침공을 정면으로 받은 이뇌왕은 그러나 국경을 넘어 법흥왕에게 달려갈 순 없는 일이었다. 사신을 보내어 군병을 청했지만 백제의 공격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또한 거세어 서라벌의 답이 오기도 전에 당장 위급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대가야에도 무너진 금관의 병력을 규합하여 칠천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무령왕은 너무나 버거웠다. 일만이 넘는 백제의 병력이 속속 전장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가야는 이미 여러 곳의 전투에서 백제에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제 최후의 일격을 위해 대가야를 세 갈래로 공격하던 백제의 일만 병력이 모두 한 군데로 모여 대가야의 도읍 상가라도로 향할 것이라는 정보가 날아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뇌왕에게 또 하나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법흥왕이 가야산 너머 망산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망산은 서라벌과 가야성 사이의 최근접(最近接) 국경이었다. 이뇌왕은 대가야의 위기를 두고 반대 방향인 망산벌을 향해 급히 말을 달렸다.    

  

  ‘흰 꿩이면 될 것인가?’

  흰 꿩은 삼한의 온 누리가 길조(吉兆)로 여기는 새였다. 대가야의 산 중에는 꿩이 특히 많기는 하였다. 그러나 새하얀 비단으로 지은 듯 흰 꿩은 대가야의 땅에서도 수십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새였다. 더욱이 법흥왕의 태몽이 바로 흰 꿩이라잖는가. 이뇌왕은 달리는 말잔등에서 이 새가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을 거라던 부왕의 음성을 떠올렸다.   

  

  법흥왕 또한 대가야가 백제의 침공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법흥왕은 이미 젊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신라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간교해질 수 있는 인물이었다. 

  ‘오죽 갈급했으면 국경을 순찰 중인 내게 귀물을 바치러 온단 말인가? 속으로는 백제로부터의 병화(兵禍)를 내 힘으로 막아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첩보를 받은 법흥왕은 이미 이뇌왕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신라로서도 요즈음의 백제의 전횡은 긴장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무령왕의 강력한 침공으로 대가야는 통째로 흔들리는 동안 실은 신라의 심장도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령왕은 강력했다. 이제 대가야는 존망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뇌는 아직 통치 경험이 적지 않은가? 그가 이 위기를 어찌 넘길 것인가? 허나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던가. 대가야가 백제에 의해 멸하고 나면 신라의 국경은 온통 백제의 시린 바람에 맞닿으리. 지금의 신라로선 대가야가 굳건한 것이 신라를 위해선 도리어 안심이지 않은가.’

  법흥왕은 이뇌왕을 앞에 두고도 온갖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뇌왕을 깨달은 듯 고개를 들었다.

  “위급 중에 오셨소.”

  법흥왕은 흰 꿩이 든 조롱(鳥籠)에서 돌아서며 노골적으로 이뇌왕의 갈급을 찔렀다. 그러나 대가야의 젊은 임금 이뇌왕은 조급증을 감추고 태평한 표정이었다. 빙긋 얼굴에 웃음까지 지어 보이던 그가 목례를 하더니 사뭇 엉뚱한 청을 했다.


  “소왕(小王)은 아직 미혼이온데, 신국의 양화 공주님이 미인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공주님은 더없이 영민하시다고요? 양화 공주님을 진심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만…, 허하실런지요?”

  법흥왕은 일시 의아하여 갸웃거렸으나, 곧 눈을 들어 이뇌왕의 표정을 살폈다. 

  ‘멸국(滅國)의 상황에서 혼인을 청하다니…, 필시 나의 힘을 업어보자는 뜻이렸다.’ 

  법흥왕은 처음엔 속을 드러내지 않는 이뇌왕이 노여웠다. 

  ‘허나 지금 이뇌를 물리치면 곧 백제의 무령을 맞아야 하리. 우리 신국이 예전과 다르다고는 하나 백제의 강성을 신라 혼자서는 버티기 힘들 터….’

  요즘 법흥왕은 무령에 이르러 백제가 중흥하는 모습이 불편했다. 장수왕의 공격으로 개로왕이 참살된 이후 기울어만 가던 백제가 문주왕, 동성왕을 지나 무령에 이르러 점차 다시 예전처럼 강성해진 것이다. 일만 정병을 몰아와 대가야를 존망의 위기에 휘몰아 넣을 정도로 강성해진 것이다. 백제의 강성은 항시 신라에는 위협이었다. 위기를 극복한 지금의 백제는 이제 다시 신라가 결코 홀로 상대할 수 있을 만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지금 법흥왕의 앞에는 제발로 찾아와 신라의 방패가 되어주려는 이뇌왕이 있다. 구해달라 왔으나 결국 신라가 손을 내밀어 잡으면 대가야는 신라의 방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실로 자신이 대가야와 맺으면 당장은 대가야의 운명을 구하는 일이 되겠지만…. 법흥왕은 비로소 생각을 말끔히 정리했다.   이뇌왕의 기침 소리를 듣고서야 법흥왕은 흰꿩 구경에 빠져있었다가 깨달았다는 듯 이뇌왕을 향해 돌아섰다.  

  “좋소이다, 내 양화를 그대의 궁궐로 보내겠소.”

  법흥왕과 양화 공주는 굳이 따지자면 팔촌쯤의 거리에 있는 누이였다. 법흥은 한 번도 소지마립간의 딸인 양화 공주에게 혼인사를 의논해 본 적이 없었으면서도 서라벌의 주인으로서 이뇌왕의 청혼을 맘대로 승낙하고 말았다. 

  ‘서라벌로 돌아가서 설득하리라. 서라벌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오히려 내가 대가야를 신라에 묶어두어야 할 판이다.’

  법흥왕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자신의 속셈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이뇌왕에게 자신만 청혼을 허락하고 돌아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신라는 대가야보다 큰 나라가 아닌가. 속을 뵈지 않는 것은 상국에 대한 예가 아니다. 법흥왕은 이뇌왕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아까도 물었소만, 부왕의 장례를 모시자마자 서쪽에서 크나큰 변고가 들이닥쳤는데, 대가야는 정령 괜찮은 것이오?”

  이뇌왕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상국(上國)을 뵙는 연고이옵니다. 대가야는 모진 바람 앞의 횃불입니다.”

  이뇌왕이 대가야의 위급한 상황을 솔직히 드러내자 법흥왕은 비로소 파안대소했다. 게다가 이뇌왕 스스로 서라벌을 상국이라 받들고 있지 않은가. 법흥왕은 그런 이뇌왕이 마음에 들었다. 이뇌왕이 처음에 조급증을 드러내지 않았던 태도마저 이제 다시금 생각해보니 왕자(王者)로서 갖추어야 할 무게와 신중함이지 않겠는가 여겨져 고개를 끄덕였다. 법흥왕은 자연히 웃는 얼굴로 이뇌왕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양화 공주의 지아비로서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젊고 당당하며 신중한 얼굴이다. 또한 이목구비가 정갈한 것이 얼굴 전체에서 귀한 품격이 느껴지는 훌륭한 외모가 아닌가. 법흥왕은 흡족했다. 그러나 젊은 이뇌왕에게 속을 들키고 싶진 않아 다시 몸을 돌이켜 탁자 위의 조롱을 들여다보았다.     

  ‘천하의 이물(異物)이로고…. 흰꿩이라…. 나의 태몽(胎夢)까지 챙길만큼 세심한 자인가? 나라를 위해 나라의 보물을 내어놓고 몸을 낮춘다…, 성군의 자질이로고. …흰 꿩이란 태평성대를 불러온다는 이물이건만. 흰 꿩이 내게 오다니, 서라벌에 정령 태평성대가 오려는가?’      


  서라벌로 돌아온 법흥왕은 당장 양화 공주를 월궁으로 불러들여 직접 몇 차례나 설득하고 가야궁으론 이뇌왕에게 혼인 날짜를 채근하였다. 그러나 양화공주는 법흥왕의 뜻을 따르겠노라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조급증을 느낀 법흥왕은 이찬 비조부를 불렀다. 양화공주는 이찬 비조부의 누이였다. 양화 공주는 선혜 왕후가 소지마립간 승하 후 다시 호조와 혼인하여 낳은 맏딸이었으며, 선혜 왕후와 호조사이에서 다시 양화 공주의 아우 비조부가 태어났다. 양화 공주와 비조부는 남매간이었으면서도 특히 남다른 우의로 궁중에서도 종종 회자되곤 했다. 법흥왕은 양화 공주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자 비조부를 불러들였다. 그러나 이찬 비조부는 직접 이뇌를 보기 전엔 양화 공주에게 혼인을 권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폐하, 누이의 부군이 될 대가야의 이뇌 임금을 직접 만나게 해 주십시오.”

  비조부는 누이 양화 공주를 모르는 남자에게 혼인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법흥왕은 대가야의 위급이 시시각각 더욱 절박해지는 상황이었지만 할 수 없이 비조부의 청을 허락하여 바로 다음 날 떠나게 했다. 말에 오른 비조부는 법흥왕의 뜻과 달리 이뇌왕의 흠결을 찾아 누이 양화 공주가 정략혼에 희생되지 않게 하리라 마음을 다졌다. 혼인사절의 자격으로 비조부는 곧 이뇌왕을 만났다. 그러나 이찬 비조부는 이뇌왕을 보자마자 애초 저어하던 마음이 표변(豹變)하였다. 이뇌왕의 외모는 수려했다. 이뇌왕의 낮은 음성은 차분하여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뇌왕의 태도는 겸손하였으며, 이뇌왕의 걸음걸이는 보폭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호보(虎步)였다. 이뇌왕의 눈빛은 젊었지만 지혜가 담겨 있는 듯 보였다. 다만 눈이 커서 검은 눈동자 주위로 절집을 지키는 사천왕처럼 모두 흰 자위가 드러난 사백안(四白眼)이 었다. 사백안이 왠지 조금은 무섬증을 일으켜 마음에 조금 걸리긴 했지만, 왕의 다른 면면들이 월등한 까닭에 그런 것쯤엔 얼마든지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이의 부군으로 그분보다 좋은 이는 없으리라 여깁니다.”

  비조부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이뇌왕의 인물됨을 누이에게 낱낱이 고변했다. 

  “내게 아우가 있어 다행이오.”

  비조부의 진심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양화 공주는 비로소 이뇌왕의 청혼에 화답하였다. 비조부가 다시 누이의 뜻을 법흥왕에게 전하자 법흥왕이 크게 기뻐하며 친히 용상에서 내려와 이찬 비조부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대가 나의 체면을 살렸다. 후히 상급을 내리겠다.”

   비조부도 왕을 마주 보며 얼굴에 웃음기를 띠었다.

  “폐하의 은덕입니다. 이뇌 임금은 누이의 부군 됨에 조금의 손색도 없다 사료됩니다.”

  국혼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대가야와 신라, 두 나라 사이의 혼인 소식은 순식간에 가야 누리는 물론 삼한 전체에 전해졌다. 두 나라 사이의 국혼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고구려는 즉시 서라벌로 축하 사절을 보냈다. 그러자 갑자기 백제가 공격이 멈추었다.


  국혼일, 대가야에선 백성들이 화려한 신라 왕녀의 행렬을 맞으려 장사진을 쳤다. 대가야의 대소신료는 물론, 군병들도 궁 안팎에서 이뇌왕의 혼례 준비로 모두 분주했다. 서라벌에서는 다시 한번 이찬 비조부가 혼인 사절로서 신부인 양화 공주를 보위하여 동행했다. 서라벌에서 온 화려한 마차가 대가야 상가라도에 다다르자 저잣거리의 백성들이 만세를 외쳤다. 마차의 휘장을 걷어 올리게 하고 양화 공주가 대가야의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자, 대가야의 백성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의 새 왕비를 자세히 보려고 발뒤꿈치를 돋우곤 했다. 마차를 따르면서, 마차가 지나가는 길 양옆으로도, 따르는 백성들의 만세 행렬이 물결을 이루었다. 가야궁의 상가라도는 며칠 동안이나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 양화 공주는 곧 이뇌 왕후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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