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면서 이젠 솔직히 고백할 것이 있다. 자화자찬. 삼십 년 넘게 열심히 가르쳐 오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기특하다며 칭찬하고, 멋진 선생이라 자부하던 자만(自慢) 가였다. 흔한 말로 수업이 잘 되어 나 스스로도 만족스럽고, 아이들도 모두 행복해 보이던 날들은 '꽤 잘 가르친단 말이야' 으스대며 자신에게 맥주 한 잔 대접하기에 인색하지 않았던, 자기애(自己愛)의 화신이었다.
대개의 좋은 수업은 미리 연구된 수업이었다. 비약하건대 이순신 장군께서 미리 이겨놓고 치르셨다는 전투 같은, 그런 수업이랄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고민하다 보면 이미 잘 알고 있는 개념의 또 다른 일면의 의미를 발견하곤 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럴 때는 수업도 하기 전에 미리부터 기쁨이 솟구쳐 나곤 했다. 예상대로 수업이 성공하는 날은 아이들의 손들이 목련꽃 봉오리 같이 교실 가득 솟아난다. 기발하고 재미난 생각들이 봄꽃처럼 만발한다. 아이들의 새롭고 신선한 발상에 사고의 가지가 마구 분화하면, 흥분하는 것은 아이들보다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작전(?)대로 성공하는 것뿐인데도 신이 났다.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운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내 삼십여 년의 교단생활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솔직히 나 자신이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집에서조차 자식 교육한답시고 박물관 쪽으로 발걸음이 잦았다. 경복궁 앞 중앙 박물관 시절부터 용산 자리로 옮겨 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리 아프다는 아이들의 사정은 보아주지도 않고 박물관으로 박물관으로 끌고 다녔다. 나중엔 박물관 이야기만 꺼내면 한숨부터 내쉬곤 하던 아이들의 어린 눈동자가 선하다. 강제로 이끌린 손일지라도 그때마다 뭔가 새롭게 건지는 바가 있었을 거라 믿으며, 아이들에게 배운 바를 묻곤 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그저 지친 아이들의 곤혹스러워하는 표정만 마주할 뿐이었다. 하긴 ‘바다로’, ‘놀이공원으로’를 외치던 아이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박물관에서 돌아올 때마다 아이들을 향한 내 질문만 정교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배움의 기대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내 아이들에게서 배웠다. 결국 내 역사 연수 성적은 만점이었지만, 아이들에게 역사는 가장 싫어하는 과목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가르친 게 하나 없는 아빠가 되고 말았다. 요리되지 않은 날것의 식재료를 그것도 과하게 애들 입에 넣은 게 큰 잘못이었나 보다.
요즘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가 요리사란다. 나 역시 부러워하는 직업이다.
요리에 있어, 원재료가 아무리 영양가가 높다고 해도 날로 식용되는 건 많지 않다. 이미 충분히 맛을 갖춘 열매나 채소들만 원재료 그대로 이용될 정도일 것이다. 회를 즐기는 식생활 문화가 번창하고 있지만, 그조차 초고추장, 초간장이 곁들여지지 않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추냉이에 초간장, 초고추장을 곁들였건만 사람들은 회를 먹었다 한다. 삼겹살을 잘 구워 상추에 얹어, 마늘 한쪽과 파절이 몇 줄기, 쌈장을 얹어 먹었건만 사람들은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다 한다.
요즘 선생님들도 요리사를 적잖이 닮았다. 영양가 높은 원재료인 지식 또는 지식체계는 잘 요리되어야 한다. 2+2+2를 공기놀이로도, 체육 활동으로도, 퀴즈로도, 노래로도 요리한다. 요리되지 않은 지식 재료는 밍밍하고 지루하고 거칠 수 있어 아이들 먹이기가 쉽지 않다. 감칠맛을 더한 요리처럼 요리된 지식이 재미있고 쉽게 섭취될 것이란 건 물을 필요도 없다.
양념이 과하면 재료의 특성을 묻어버리게 된다.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털레기탕이란 음식은 온갖 것을 털어 넣고 끓인 음식이란다. 아무리 맛있어도 이런 음식은 삼겹살 쌈이랑은 달리 어떤 재료도 정체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훌륭한 요리사가 원재료의 특성을 지키는데 소홀하지 않듯이 가르치는 사람들의 지식 요리도 이 점은 특히 유의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놀이만 남은 배움처럼 공허해지진 않도록 가르침의 원재료의 영양가가 손실되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느라 밤 깊었던 지난날들이 아련하다.
머리로 먹는 것이 입으로 먹는 것처럼 즐거우면 얼마나 좋을까. 지식을 요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맛깔나게 요리된 지식이 아이들을 지식의 식탁으로 불러들인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소리를 요리하여 맛깔난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와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교사와 그리고 요리사는 어딘지 많이 닮은 것 같다.
가르치는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운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지식, 지혜를 요리하는 선생은 더 많이 배운다는 명제 하나를 새로 세워 본다.
매운탕 끓이기
미나리 풋고추 마늘
꽃게 오징어 새우 꼬막
자기들 살던 동네가
최고라며
자기 말 먼저
들어보라며
자글자글
와글와글
정말 정말
시끄럽다
매운맛이 주인공 될 줄
빨갛게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