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는 법

친선 경기는 끝난 뒤가 더 중요해

by 인해 한광일


2011년쯤인가, 미국 대학 농구팀과 중국 대학 농구팀이 친선 농구 경기를 치르던 중, 난투극이 벌어져 결국 경기가 취소되고 말았다는 빅뉴스가 있었다. 한참 오래된 뉴스지만, 그때도 나는 친선의 진짜 의미가 궁금했다. 국어사전에 친선경기'서로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여는 운동 경기'라고 풀이하고 있다.

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에 우리 1반과 3반이 친선 축구 경기를 벌였었다. 3반이 이겼고, 3반 아이들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반면 우리 1반 아이들은 경기 종료되자, 경기중에 있었던 억울한 상황에 항의했고, 심지어 재경기를 요구했다. 경기가 확실히 종료되었음을 재차 확인해주자, 어떤 아이는 운동장에 주저앉아 통곡을 터뜨리기까지 했었다. 친선경기의 후유증이 컸다. 요즘 운동장을 내다보면, 여전히 그런 상황이 재발되는 걸 심심치 않게 목도하곤 한다.


친선경기의 본래 목적인 '서로 가까워지고 친해지기'를 교육하기란 학교에서조차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은 언제나 이긴 편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축하의 박수를 쳐주고, 진 편에게 그래도 잘했다는 격려를 줄줄 알아야 한다고, 경기 전에 거듭거듭 사전교육을 하지만 경기가 종료된 후에 그런 미담 사례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교육한 건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이들은 자기 안에서 이긴 편에 대한 분노를 돋우기 일쑤다. 진 편을 약 올리며 더욱 승리의 기쁨을 키우곤 한다. 이 때문에 경기를 치른 후, 두 학급의 선생님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학급 대 학급의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주시해야 하기 때문이며, 분노와 기쁨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잘 지는 법을 잘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지는 법을 가르치기란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다'라는 낱말을 꽃에 붙여 쓰면 '꽃이 지다'라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꽃이 지는 게 아름답게 보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꽃이 진다는 의미는 곧 결실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연결한다면, 꽃이 지는 것을 그리 추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우리는 종종 술은 어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배우지만, 진짜 어른들께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지는 법이 아닐까? 학교장 현장체험학습으로 어른들의 조기축구회든 뭐든 아버지들의 모임에 학생들을 데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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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후배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겨우 1년 후배들이 우리들 곁으로 와선 막걸리병을 흔들며, '어르신들, 어르신들' 하며 놀린다. 씁쓸한 농을 웃음으로 넘기며 잔을 돌려준다. 잠시 후 우리 어르신(?)들과 1년 후배들과 마구 섞어 팀을 나눈 후, 친선 축구경기가 벌어진다. 모든 경기가 그러하듯 우리들의 경기도 이긴 편이 생기고 진 편도 생겼다. 하지만 즐거움과 행복은 이긴 쪽만의 것이 아니다. 이기건 지 건 모두들 행복을 함께 나눈다. 진 편에서 이긴 편을 칭찬하자, 이긴 편에서도 겸양을 내어놓는다. 신체적 결점이든 뭐든 어떤 지적도 즐거움과 행복을 해치지 않는다.


'넌 나이가 들어도 발재간 한번 여전하구나.'

'어디 너만 하려고?

'살 좀 빼지, 그러니 몇 분 못 뛰고 헉헉대지.'

'그래, 이참에 좀 일찍 일어나서 운동 좀 해야겠다.'

'운동은 젬병이지만, 쟨 돈 버는 재주는 끝내준다.'

'그래? 그럼, 너희 팀이 졌으니 2차 책임져야지?'

경기에 지고 우울한 표정으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어른의 멋’에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다. '그래도 이번 경기에서 우리 자신을 칭찬할 수 있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라는 주제의 브레인스토밍이다.


'정우가 공을 끝까지 따라붙어서 3반의 슛을 2번이나 막았어요.'

'민수가 넘어져서도 발을 뻗어서 3반의 공을 뺐었어요.'

'내가 넘어졌는데 유찬이가 일으켜 주었어요.'

'여자애들이 응원해주었어요.'

'3반 애들보다 우리 반 애들이 덜 우겼어요.'


진 경기에 대해 아이들과의 열매 맺기 활동이 점점 활기를 띤다. 되돌아보니 그랬다. 아이들은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열심히 경기를 치렀고, 그랬으니 칭찬받을 만했다. 이제 아이들은 경기에서 지고도 서로 자기들이 얼마나 대견한 경기를 치렀는지 깨닫는다. 진 경기에서의 상처가 아문다. 이만하면 잘 진 경기이지 싶다. 이만하면 웬만한 교육 연수에서보다도 더 나은 걸, 오랜만의 동창회에서 제대로 한 건 배웠지 싶다.


옛날 은사님들께서 종종 하시던 말씀, '끝마무리를 잘하자'는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친선경기에서는, 경기 후 되돌아보기는 정말 중요한, 절대 생략해선 안 될 교육의 끝마무리, 교육의 가을 추수와 같은 과정이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동생하고 싸울 때마다

억울한 나를 붙들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할머니


맏이인 모가 둘째한테

놀이 이름을 양보한 윷놀이

너도 알지?


술래를 제일로 추켜 주는

놀이 이름도 있어,

술래잡기


진짜로

더 많이 물러나야 이기는

놀이도 있단다,

줄다리기


할미 말, 맞지?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이번 딱 한 번만 더

형인 네가 양보하자, 응?


할머니 말씀

이상한 것 같은데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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