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축구

by 인해 한광일

30년을 교단에 섰음에도 가르치는 일로 나를 기죽이는 존재가 있다. 그의 경력에 비하면 30년 경력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다. 그의 경력의 시작은 아마도 갑오경장 즈음이 아닐는지. 크게 억지를 부려본다면 삼국시대의 김유신, 김춘추 시대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려나.


유구한 경력의 그는, 그러나 이젠 현직이 아니다. 그러나 짧게 잡아도 족히 백 년은 넘게 가르쳐 왔을 테니 그의 제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은퇴 시기는 분명치는 않으나, 우리나라의 경제적 성장이 고도화되던 때. 아마도 그즈음이었지 싶다.


나 역시 그의 제자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전공은 의외로 인성교육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잘 안 되는 화합을 그는 쉽게도 가르친다. 그의 가르치는 방법은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가르치는 것이다. 따르기 힘든 교수법이다.


그의 수업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그의 수업은 언제나 용서가 있으며, 항상 포용을 중심으로 한다. 그의 교실에선 따돌림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의 수업은 교사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 의해 저절로 열린다. 그가 아직도 곳곳에서 현직이었다면 교우관계에 좌절하여 다른 학교로 전학을 고려하는 어처구니없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눈치챘겠지만 그 스승은 바로 골목 축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축구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가 되었다. 나 역시 축구광이니 축구가 전 국민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되는 것에 전적으로 찬성했었다. 월드컵은 확실히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축구 스타를 몇 명쯤은 보유한 축구의 나라 아닌가. 우리 눈으로도 유소년까지 축구 저변이 폭넓게 확대된 것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진짜 찬성하는 축구는 그런 커다란 축구가 아니다. 아주 작은 골목 축구를 사랑한다. 내겐 골목 축구가 프로축구 경기보다 아름답다. 골목 축구는 그냥 축구가 아니다. 골목 축구는 표준 축구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축구다. 골목 축구의 규칙은 암묵적이다. 골목 축구의 암묵적 규칙 중 가장 큰 규칙은 공존과 관용이다. 숫자가 모자라 골목을 서성대는, 축구를 정말 못하는 아이가 축구 대장의 통사정(?)을 받아들이며 경기장으로 초청되기 때문이다. 발 빠른 가난한 집 아이도 작은 영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돼지’라며 멸시받던 아이도 우연히 비만의 아랫배로 공을 막아내어 친구들에게 칭찬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시비가 붙어 내 코피를 터뜨린 민호와도 같은 편이 되어 함께 합작한 골로 하이파이브를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이 또 바쁘게 이리로 굴러오기 때문에 조금 전 호식이의 실수가 잊히고 용서되기 때문이다. 잘난 체하고 숙제를 보여주지 않아 절대로 같이 놀지 않으려던 윤식이도 양 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옛날이야기다. 요즘 골목엔 골목 축구가 없다. 어른들이 자동차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원엘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엘 가지 않으면 공부가 뒤처지기 때문이며, 함께 골목 축구를 해야 할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학원을 다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너무 일찍부터 시작하는 대학입시 준비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골목 축구의 교실은 말할 것도 없이 골목이다. 그러나 골목마다 주차 면을 만들어 차를 세워야 했으므로, 아이들의 오랜 스승인 골목 축구는 자진 퇴직이라기보단 권고 퇴직되었을 것이다. 하기야 교실이 없어졌으니 선생이 있을 곳이 어디 있으랴.


스승의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 골목 축구가 보고 싶다. 정말로 차가 없는 골목길의 축구면 더욱 좋다. 선수의 숫자가 열 명이 안 되어도 좋다. 홀수여도 좋다. 선수 중 여자아이가 하나나 둘쯤 있어도 좋다. 발기술이 현란한 선수가 없어도 좋고, 그저 초등학생이면 된다. 마지막으로 골목 축구엔 축구 선생이 없어야 한다.




#추신 : 이따금 TV 화면이, 삶이 팍팍한 저개발 국가의 모습을 취재한 영상을 보여주곤 할 때, 언뜻언뜻 검은 골목 축구가 눈에 띄곤 한다. 스승님이 형편이 어려운 나라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해외의 오지로 전근 가신 모양이다.





김치


영광을 부딪히며

삼겹살 먹는 날

김치 한 줄기는

불판에 가만 우정 출현한다


두부 찌개를 거들면서도

김치 뭉텅이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다


라면 냄비 곁엔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자릴 지켜낸다


배추김치

빛나는 자린 몰라도


가난한 밥상만은

힘 다해

뚜렷이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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