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쉬운 좋은 선생님 만들기

좋은 선생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y 인해 한광일

수업 시간. 교실에 있는 것. 학생, 교재, 교사. 수업의 3요소이다. 수업이란 학생의 성장을 목표로 교재를 매개로 한 학생과 교사의 교수-학습적 행위이다. 매 수업이 펼쳐지는 초입마다 수업 목표가 제시된다. 수업 목표란 이 수업을 통해 그만큼 성장해보자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제시하는 작은 비전이다. 결국 수업의 목표는 학생의 성장에 있다.


모든 교사는 자신의 학생들 모두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교사들은 이 수업에 진지하게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장면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겪어내느냐에 따라 그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나중에 전혀 다른 교사가 될 수도 있다.

어릴 적 친구 집엘 간 적이 있었다. 처음 가는 친구 집에서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느덧 저녁때였고, 나는 친구와 둘이서 겸상의 식탁에 앉았다. 식탁엔 오로지 친구와 나만을 위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지금도 그 밥상을 잊지 못한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수의 반찬이었지만 반찬은 맑고 청결한 접시에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음식의 맛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저녁으로 내어 주신 밥상에서 친구 어머니께서 나를 귀히 대접하시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가 친구의 방에서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친구의 어머니는 나물을 무치고, 된장을 풀어 두부된장찌개를 끓이셨을 것이다. 고기를 알맞게 볶으시고, 밥을 새로 안치셨을 것이다. 친구 어머니의 밥상을 나는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교사가 되어서 준비한 일이 바로 친구 어머니가 아들 손님을 위해 준비하신 것과 다르지 않았다. 교재라는 재료를 다듬어서 아이들의 한 입 크기에 맞게 잘라 살짝 밑간을 해서 마련해 둔다. 아이들이 맛있겠다, 호기심을 보이며 밥상에 바싹 둘러앉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매일매일의 교사의 고민인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교재 연구의 본질일 것이다. 아이들이 먹고 눈이 동그래지고, 마침내 상을 다 비우고 나서 마음이나 몸이, 생각이나 지성이, 감성이 자랐다는 증거만 관찰된다면 그날 수업은 대성공일 것이다.


학교라는 제도는 그 자체로 국가가 국민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을 잘 키워내겠다는 약속이다. 그곳에 양질의 교육력을 갖춘, 믿을 만한 인적 자원을 충분히 배치하여 계획적이고도 단계적으로 그들의 자녀를 성장시키려는 국가사회적 장치이다. 학교의 교사들이 바로 그 인적 자원이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일상과 수업으로 만나 학교에서 지내는 내내 학생들의 성장을 지원한다. 특히 수업이란 만남의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을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성장하도록 계획된 계획(교과서 등의 교재)을 추스른다.


잘 다듬어진 교사의 준비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게 하고, 낯선 것이 익숙해지게 하고, 잘 몰랐던 것을 잘 알게 하고, 서툰 것에 능숙하게 하고, 측정하거나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게 하고, 못하던 것을 해낼 수 있게 하고, 스스로 탐구하고, 함께 생각하여 함께 성장하게 할 여지는 있는지, 가르칠 교재를 거듭 살펴보는 것이다. 수업을 펼쳐 나갈 작전을 짜는 것이다. 수업을 좀 더 잘 기획하기 위해 교과서가 충분한지 살펴보고, 더 나은 자료는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그저 생각 없이 교과서를 그대로 가르치고 마는 것은, 아이들을 데리고, 전자제품 회사가 주는 교재인 사용자 매뉴얼대로만 길을 겨우 더듬어 가는 것과 과히 다르지 않은, 자존심 상하는 일인 것이다. 물론 교과서 그대로 가르칠 수도 있다. 단 그것은 교사가 미리 살펴보고 다른 대안도 필요 없이 교과서가 제시하는 과정과 내용이 매우 훌륭하다고 판단한 뒤의 일이다. 당연히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 요소가 정선, 축적되어있는 교과서를 완전히 무시하진 않는다. 그래도 교과서를 재료로 하여 더 맛있게 조리할 순 없을지, 아이들이 직접 체험하여 체득하게 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지 등을 궁리하는 것은 일단 교사 집단 공통의 DNA 같은 것이다.


교사는 그저 국가가 쥐여 준 교과서로만,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는 자존심 상하는 교사이길 거부하고 싶은 것이다. 그건 교사라기보다는 영혼 없는 교노(敎奴)(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는 노예)에 가깝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사는 국가가 제공하는 교과서를 충실히 가르치는 교육 공무원이 아니라, 가르칠 것의 가치를 살펴보고 재조직하며 새로운 재료를 선택하고, 재료를 어떻게 손질하여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스스로 연구하는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되기 전부터, 선생님이 되면서부터 좋은 선생님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좋은 선생님을 만들기 위해서 교육부나 도교육청에서 선생님들을 들들 볶지 않아도 된다. 교재를 재구성하라, 관련 교과의 교육 내용을 섞어서 수업을 새롭게 조직해보라, 한 시간으로 부족하면 두세 시간 연차시로 수업해 보라는 등의 잔소리는 선생님을 성장시키기보단 선생님을 긴장시키고, 선생님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은 이제 지금까지 선생님들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대하라 잔소리해 온 대로 꼭 그렇게 선생님들을 대하면 된다. 학생중심 수업을 누누이 강조해 온 것처럼 이제 교육부, 교육청 잔소리 중심 교육이 아니라, 선생님 중심 교육을 보장하면 된다. 선생님에게 학생의 성장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설득한 것처럼, 교육당국은 선생님의 성장성에 대해 믿음을 가져도 좋다. 칭찬과 격려로 아이들을 대하라 지시했듯 선생님들의 노고를 꾸준히 발굴하여 칭찬하고 격려하는데 골몰(?) 해 주면 된다. 골백번 고심하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쉬 흔들리지 않을 백년대계를 마련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교육부가 사회 전체로부터도 존경받을 일이다. 그러고 나서 백년대계를 흔들지 않으려 입술을 꼭 깨무는 인내심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선생님들은 서로 만나면 애들 이야기, 수업 이야기가 대화의 주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만나 애들 이야기, 수업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김 선생님의 애들 달랜 이야기는 박 선생님의 노하우로 전이(轉移)된다. 박 선생님의 수업 자료는 김 선생님의 교실에서 갱신되어 다시 한번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교육과 무관한 업무에 대한 고민 이야기가 아니라 애들 이야기, 수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시간이 귀한 것이다. 후배 선생님은 선배 선생님의 아이들 생활지도 비결이 궁금하다. 선배 선생님들은 후배 선생님들의 기발한 수업 아이디어와 교육 컴퓨팅 능력이 대견하다. 다행히 교직은 관리자 아래 거의 모두가 같은 직급이라 커피잔이든 맥주잔이든 수평으로 부딪는 게 어색하지 않다. 선후배 간의 대화도 수평적이다. 교장, 교감도 어깨를 낮추고 선생님들 원탁에 앉고 싶어 한다. 다만 서로 만나 이야기할 시간이 부족할 뿐이다. 교육 당국은 그저 선생님들께 만남의 기회를 충분히 마련해 주고, 그런 기회를 귀하게 여겨주면 된다.


좋은 선생님을 아이의 선생님으로 두는 방법은 간단하다. 학부모로서 선생님의 교육 방침에 귀 기울여 주고, 그다음부터는 칭찬해주고 응원해주면 된다. 아이보다 먼저 선생님을 좋아해 주면 된다. 사람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지 않는가. 선생님의 노고를 칭찬해주면 된다. 우리 선생님은 재미있는 자료로 정말 수업을 재미있게 하신다는 칭찬은, 다시 선생님의 성장을 독려하는 말이 된다. 선생님은 그 학부모를 진심으로 고맙게 여기고 존경하게 될 것이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오지 않았는가. 칭찬은 선생님도 춤추게 한다. 선생님 반의 아이들을 춤추게 한다. 결국 칭찬의 근원지로 돌아와 학부모를 춤추게 할 것이다.






아기 키우기


- 맘마 마암 마

우리 아기

우유 잘 드시네

- 우쭈쭈 우쭈쭈쭈

우리 아기

기지개도 참 잘 켜시네


- 안녕 인사도 참 바르네,

우리 친구들 모두

예쁘게 참 잘하시네

엄마도

할머니도

선생님도


아이 하나 키우는데

기쁘게 몸 낮추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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