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고깃점을 뜯고 있는 치타를 향해 우우우 기괴한 소리를 내며 하이에나들이 접근한다. 비열하고 교활한 웃음을 흘리며 떼로 몰려든다. 겨우 사냥한 먹이를 빼앗기고 뒷다리까지 물린 치타는 억울하다. 초원엔 경찰이 없으므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폐지 줍는 할머니. 정처가 없어 노숙하는 그 할머니. 할머니 앞에 십 대 아이들이 나타났다. 담배를 사 달랬다던 가? 할머니 머리를 꽃으로(그것도 소녀상 추모 꽃으로 ㅡ교사들이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자며 학생인권을 지켜가고 있는 도중에) 내리치며 괴롭힌다. 낄낄거리며 조롱하고, 자리를 피하는 할머니를 쫓아 가 경쟁적으로 손수레를 걷어차는 망나니 짓을 해댄다.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영상도 그들이 스스로 찍은 영상이란다. 할머니는 홀로 얼마나 허물어지셨을까? 그날 밤 할머니의 눈자위는 얼마나 짓물렀을까?
치타의 얼굴엔 삥(?)을 뜯기고 홀로 운 아이의 얼굴처럼 두 줄 눈물 자국이 선연하다. 동물의 왕국류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TV에서 사자 곁은 얼씬도 못하고, 수시로 하이에나에게 사냥물을 강탈당하는 장면을 하도 많이 봐선지 치타를 맹수로 분류한 것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다행히 이번엔 학교에게 '애들 똑바로 가르치란 말이야' 투의 꾸지람은 없었다.
강한 바람에 폐지가 날리자 할머니는 교문 앞에서 흩어진 폐지가 당황스럽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열 명의 학생들이 할머니와 함께 흩어진 폐지를 줍는다. 할머니의 손수레를 밀어드리고, 위험한 길에선 할머니를 둘러싸고 가는 수호천사가 되었다. 교통과 경찰서 직원의 제보로 세상이 알게 된 거란다.
다행히 '아이들의 선행에 학교의 지분이 얼마쯤 될까'를 논하는 어리석음이 자행되지 않았다. 교육이라는 게 학교만으론 되는 게 아니란 사실을 이제라도 깨달은 모양이다. 아이 하나 기르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잖는가(실은 가정교육의 지분이 가장 클 것이다. 거의 같은 비율로 학교 교육이 중시되어야 하고 , 가능하기만 하다면 마을 또한 아이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하겠지만)
우리에겐 무엇이 없어서 자꾸만 도심의 하이에나를 탄생시키는 것일까? 이따금 출현하는 도심의 천사만으론 물의 탁도를 낮출 수 없다. 하이에나는 도시의 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약한 것을 싸고돌며 두려움을 촉발하기도 한다.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성을 할퀴어대거나 심야에 굉음을 터뜨리며 질주하기도 한다. 도심 하이에나의 개체 수 조절에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유해조수가 된 비둘기나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길고양이, 들개라면 중성화 수술이라도 해서 개체 수를 줄인다고 한다지만, 도심의 사람 하이에나는 그럴 수 없으니 걱정이다. 누구 좋은 생각 없으신지?
잘못 알고 있어
'서울에선
별 보기 쉽지 않지?'
밤 베란다에 따라 나오신
외삼촌이 말하자마자
'날 찾니?'
'날 찾니?'
서울 하늘의 별들
흐린 밤하늘 헤치고
하나둘씩 눈을 뜬다
서울 하늘에서도
별 부르면
별들
하나씩 둘씩
깜박깜박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