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더 행복했을까?
시간의 젖은 잔등에 올라타다
2024.9.21.
새벽 6시 11분 KTX 기차를 타려면 집에서 5시 10분엔 나가야 했다. 그러려면 4시 30분에 일어나야 했고. 행선지는 울산 KTX 역에서도 1시간가량 떨어진 곳이고, 보아야 할 일은 그곳에서 2시 30분에 있었다. 4시에 눈이 떠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최근 6일 정도 연일 밤 12시를 넘겨야 하는 일들이 연속되어 과연 오늘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걱정이었다.
첫 지하철에 첫 환승 열차 시간이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졌다. 불과 5분여를 남겨두고 환승열차가 도착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행신에 도착해서 KTX 열차에 올라 자리를 잡고 나서야 비로소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것은 내 삶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므로 긴장감이 더했으리라.
비가 온다. 어제부터 중국을 들쑤신 태풍이 열대저기압으로 변하면서 우리나라를, 특히 남부지방을 강타한다는 뉴스에 아내는 내 발길이 위험할까 울산행을 재고하면 안 되겠냐며 근심이었다. 그러나 내 걱정은 비가 오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8시 50분경에 울산역에 도착하고 나면 셰퍼드 혓바닥만큼이나 길게 남은 시간 동안 완전히 홀로 누리려던 태화강 국립공원 탐방에 차질이 생길까 하는 데에 닿아 있었다. 불과 몇 해 전의, 비가 많이 내려 태화강이 범람했다던 뉴스가 뇌리에 생생했기 때문이다. 행신역에서 울산을 향해 열차가 달리는 동안 날씨는 내게 희망과 근심을 번갈아 내보이곤 했다. 그러나 경주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빗줄기가 차창에도 들이치기 시작하더니 정말로 울산역에선 투명한 빗줄기가 우동 가락처럼 굵었다.
KTX에서 하차해 울산역 대합실에 도착해서는 비에 잔뜩 젖은 점퍼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커피를 한 잔 손에 들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고민이 필요할 땐 커피도 방해가 되곤 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40분 가까이 되고 있었다. 움직이기로 했다.
'비쯤 맞아보지, 뭐. 울산엘 또 언제 일부러 오겠어.‘
버스는 KTX 울산역을 빠져 나와 시내로 들어갔다가 한적한 동네를 돌았다가 하다가 마침내 목적지에 닿았다. 버스에서 내려서는데 길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어리석게도 우산을 펴 들고 하늘을 보다가 안경에 비를 들이치고 말았다. 그래도 빗줄기는 조금 가늘어진 듯싶었다. 구두가 젖을까 우려되기도 했지만, 발길은 저절로 태화강 국가공원으로 향했다. 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것은 빼곡한 아파트들과 주택들, 강아지처럼 천방지축 달리는 자동차들과 나뿐인 것만 같았다. 빗줄기가 굵은 데다가 초행길이라 불안해 길이 맞는지 우비를 쓴 아저씨께 물었다.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걸음으로도 드디어 태화강 십 리 대나무숲 우듬지가 보였다. 2차선 길을 건너 하천의 국가공원으로 내려섰다.
이 빗줄기 속에 유령 같은 이들이 몇몇 천변 광장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우산을 쓴 사람도 우비만 걸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이 날 볼 때도 그런 느낌이었을 테다. 바닥에 물이 흥건하여 구두를 보전하긴 틀렸다 싶었을 때, 나는 또 한 가지를 결행했다. 구두를 벗고, 양말을 벗었다.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또 한 손에 구두 한 켤레를 들으니 더는 남는 손이 없었지만, 두 발은 더욱 자유로웠다. 빗물이 발등에 차올랐다. 십리대숲 길 하나라도 온전히 탐방하겠다 결심을 새로이 다지고 나서 씩씩하게 발걸음을 떼었다. 유년기를 지나 실로 오랜만에 발바닥이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모래알의 까끌거림, 밤톨만 한 돌멩이의 저항, 진흙의 간지러움과 누룽지를 밟는 느낌의 시멘트 포장까지…. 요즘 맨발 걷기가 유행이라더니 이런 기분 들이었겠다.
대나무가 굵었다. 대나무가 푸르렀다. 대나무가 빼곡했다. 대나무가 다정했다. 대나무가 빗속에서 푸슬푸슬 웃었다. 길이 난대로 걸으면서 울산 사람들 참으로 오랫동안 대나무 숲 하난 정말 잘 가꿨다 싶었다. 드물긴 했지만 네댓, 서넛 씩 종종 마주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뒤에서 오던 두 사람은 철벅철벅 나를 앞서 나갔다. 그들의 등 뒤에서 슬쩍 혼자 웃음을 물었다. 비의 낭만을 저리 후르르 마시다니... 이 빗속의 대숲 길을 홀로 걷고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란 사실이 신이 났다. 누구하고도 말할 필요도 없고 혼자서 오롯이 대나무 숲길을 만나고, 비를 맞고, 가다 서다 하며 진정 나 혼자뿐이었다. 실로 이렇게 혼자 지내본 게 얼마 만일까? 예전에 '자취'란 걸 할 때 말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 혼자가 아닌가. 시간을 넉넉히 남겨 놓고 도로변으로 올라섰다. 워낙 면을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엔 어쩐지 따뜻한 것이 좋을 듯싶었다. 보기 힘든 '수구레'를 만났다. 발을 말리고 마른 양말에 마른 구두를 신을 수 있었다.
예식장이 가까울수록 빗줄기가 거세졌다. 예식 시간이 가까울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제시간에 도착해야 하고, 제때 예식장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약도와 달리 길은 그리 쉽지 않았고, 음식점에서 막 나오는 아저씨들의 친절한 답변을 듣고서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대부분이 확실해지자 그제야 시간이 1시간 이상 남아 있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비는 몇 시간 동안이나 퍼붓는 걸까? 빗줄기는 냉면 사리가 되었다가 우동 사리가 되기를 되풀이 하며 한순간도 쉬지 않을 기세다. 오랜만의 반가움은 또 있었다. 수십몇 년 만에 만나는 대학 친구들의 늙은 얼굴들도 날 알아보고 환히 웃어준다. 양가 혼주들은 행복한 것 같기도 얼떨떨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고, 결혼식은 아름다웠으나 끝을 다 볼 순 없었다. 울산역에서 다시 KTX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1시간 정도의 여유를 두고 식장을 떠났는데도, 울산역을 향해 곧장 달리는 직행은 인내심을 충분히 시험한 뒤에야 당도하였다.
KTX 울산역의 열차 정보 전광판이 어지러웠다. 비가 많이 온 관계라며 결행과 지연이라 표시 된 행간이 아래위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던 이유였나 보다. 다행히 나의 예약 편은 정상 운행이라더니 실제론 18분쯤 연착이었다. 몸을 실은 이상 걱정이 없을 것 같았는데, 아차 싶었다. 이 열차는 서울역이 종착인 관계로 서울역에서 이어지는 경의·중앙선 시간표를 못 맞추게 될 것이 뻔한 것 아닌가. 울산-서울행 KTX 열차에서 나는 급히 집까지 가는 노선을 창조하느라 열을 올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드문 경의·중앙선 열차를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고충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짜릿할 수가 있을까? 서울역에서 충무로 행 4호선 열차는 금세 이어졌고, 충무로에서 3호선 열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연결되었다. 소소한 작전이지만, 작전 대성공이다. 역에서 내려 시계를 보니 예정보다 30분가량 일찍 도착한 것이다. 신호등을 지나가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신날 수가 없다. 여유롭고자 했으나 시간에 쫓기거나 시간이 지나 후회 막급했던 일이 다반사 아니었던가. 이렇게 시간이 계획한 대로 이루어졌던 적이 있었던가? 친구가 딸을 혼인시키는 큰 기쁨을 누리는 동안, 나는 시간의 젖은 등을 타고 무사히 돌아와 시간의 고삐를 놓은 일이 기쁘다. 하염없이 경의선 서울역에 구겨 앉아 이미 놓친 시간의 비웃음에 자책하지 않고, 우회 전략으로 시간을 다스린 작은 일이 기뻤다. 신호등을 지나 집까지 걷는 짧은 길이 적잖이 기뻤다. 하루 종일 교통 편에 시달려 놓고 뭐가 그리 좋냐는 아내에게 기쁨의 실체를 내보이긴 좀 머쓱했다. 그걸 가지고 그리 웃냐며, 하여튼 그릇은 작아서 웃음도 금방 찬다 비웃을 게 뻔하다. 소인이라 비웃거나 말거나 나는 웃음을 다 거두어 내지 못한 채 결국 막걸리 뚜껑을 비틀며 아내 앞에 앉았다.
문득 여자와 소인들을 가까이 말랬다던 공자님이 떠오른다. 이천 년도 더 뒤에 나온 소인 하나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코웃음 한번 가볍게 흘려준다. 갓 쓴 높은 것(?)들이 밭 갈고 나서 해거름에 마시는 농부들의 소소한 농주 맛을 알기나 할까? 사실 횟수로 치자면 농부들이 공자왈 외던 격식쟁이 갓쟁이들보다 소소한 행복이 훨씬 더 많지 않았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