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야영장이 되었다는 거야?’
나는 분명히 안내문을 읽었으면서도 금방 잊고, 아내에게 다시 묻는다. 아무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게 쉽지 않다.
추억은 가슴에 남아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더니, …, 나는 이 피폐한 폐교에 무엇을 찾아왔던가? 바랭이 풀이 촘촘한 저 운동장에서 나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축구공과 함께 데구루루 굴러다녔던가? 침팬지처럼 대롱거리던 윤희의 구름사다리는 어디로 갔는가? 반원이 거의 다 되게 높이 구르던 정현이의 그네 자리엔 웬 샤워 부스인가?
34년 전 근무했던 아름다운 학교를 보여준다며 아내를 데려간 추억이었다. 아내는 이로써 34년이나 묵은 나의 감상이 얼마나 헛되고 볼품없는 것이었는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 준 꼴이다. 그렇게 예쁜 학교가 있었다고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나 혼자 몰래 먼저 와 볼 걸 그랬다. 후회가 저녁 그림자처럼 자꾸만 길어졌다.
폐교 소식이야 30여 년 전에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세월이 배신할 줄은 몰랐다. 그래, 이건 분명 배신이다. 지금까지도 선명했던 열 살, 열한 살의 재웅이, 은환이의 얼굴이 무지개 사라지듯 지워지는 순간이다.
실은 폐교 후 이곳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아마 20여 년 전이었을 것이다. 학교 가까이 이르자 낯설게도 수많은 장승들이 눈을 부라라며, 그들도 내가 낯설다는 듯 학교로 들어가는 내 꽁무니까지 내내 노려보고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면서도 학교 이름판 대신 무슨 전통체험학교라는 명패가 또한 당황스러웠었다. 낡은 그네가 아이들이 없어 하염없이 녹슬어가고 있었고, 구름사다리도 철봉도 제 나이보다 훨씬 낡아 손대면 붉은 녹이 그대로 묻어날 것 같았었다. 무엇보다도 운동장에 바랭이며 강아지풀이 무성하여 황당했었다. 어울리지 않게 고요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삐걱거리는 교실엘 들어섰었다. 발소릴 듣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의 모습 역시 낯설기 이를 데 없었다. 머리는 길어 뒤로 아가씨처럼 핀을 꽂아 묶은 조각가는 내게 뭐가 미안한지 자꾸만 녹차를 따라주었었다. 겨우 교실 두 칸만을 관리하고 있댔다. 그러는 동안에도 애들 책상 하나 없는 교실이 어색해 나는 자꾸만 휘휘 둘러보곤 했었다. 교육 대신 예술을 들여놓은 교실은 벽면이며, 벽면에 잇댄 전시대, 또 교실 바닥에 전통향이 물씬 풍기는 인두 지짐 공예품들로 가득했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공예품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허기(虛飢)를 느꼈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는 운동장에 풀이 많음이 괜히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의 사과를 받을 일은 아니었으므로 나도 그때마다 그에게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 허기는 그곳에서 더 이상 아이들의 낭자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폐교 30여 년쯤 밖에 안 된 학교가 팔순 노인네보다도 더 허약해 보였다. 폐교 후 두 번째로 탈바꿈하여 무슨 자연학교 캠핑장이 된 학교는 이곳저곳에 간이 건물이 더 많이 늘고, 낡고 녹슨 것이 모두 철거되었음에도 내 눈엔 이전보다 더 허무해졌다. 오히려 젊어진 모습이건만 시설이 허약해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람들이 타프를 치고 있는 자리는 아마도 그네가 있었던 자리일 것이다. 구름사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RV 차량들이 점령하고 있다. 점심시간 채연이 입술을 까맣게 물들이던 거대한 벚나무는 비 막이 시설과 즐비한 그늘막 텐트에 쫓겨나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그때처럼 까뭇까뭇 버찌 열매를 떨어뜨려 주고 있는 모습만은 정겨웠다. 학교는 폐교 후 30여 년 동안 성공적으로 교육을 지워내고 있었다. 캠핑 또한 어느 면에선 교육이니, 아내의 말대로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도 없을 테지만, 나는 내 두 번째 근무지에서의 추억이 빠르게 퇴색되고 있음을 느낀다. 34년 전의 아이들의 눈빛이, 텐트에 덧대어 타프를 치고 있는 젊은 아빠와 딸의 모습에, 낡은 벽화처럼 흐릿하게 지워진다. 귓가에 아련했던 깔깔거리던 윤섭이의 웃음소리도, 등갈비를 굽는 아저씨와 새로 만들어진 간이 수영장에서 굴러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아득해진다. 문득 요의(尿意)가 느껴졌다. 생각보다 오줌량이 많았다. 아랫배가 꺼져선지 마음이 더욱 허전했다.
“다 그런 거지, 뭘 그래.”
내 처진 어깨로 아내가 손을 얹으며 위로를 함께 얹는다.
“시내 나가면, 아는 맛집 있다. 배고프다, 가자. ”
나는 새로 난 길을, 올 때처럼 또 제대로 들지 못할까, 내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지도에 꼼꼼히 입력한다.
너무 일찍 학교 온 날
고등학생인 형 따라 나와
너무 일찍 학교 온 날
아무도 없다
운동장
고요하다
복도
고요하다
교실
고요하다
혼자선
나도 고요다
'드르륵'
정민이 땜에
교실이 살아났다
'재잘재잘'
명희 땜에
학교가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