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고 지독한 곤충 같으니……. 상추쌈을 고르다가 그 초록색 때문인지 아침에 본 사마귀가 떠올랐다. 출근길에 하마터면 밟을 뻔한, 낫 같은 앞다리를 치켜들고 저항하던 모습으로 죽은 사마귀가 섬뜩했다. 언뜻 보기에 제가 죽을 줄 모르고 자전거 바퀴에 몸을 곧추세우다가 치인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내게 가장 무서운 곤충은 사마귀였다. 외양만 해도 커다랗고 기다란 녹색 몸통에 성냥개비처럼 더욱 가늘고 기다란 모가지 끝에 명백한 녹색의 세모 얼굴이 기괴하여 나는 두려웠다. 그리고 얼굴보다 더 커 보이는 치켜 올라간 녹색의 두 눈매, 흉포한 두 앞다리도 무서웠다. 그렇지만 그가 다른 곤충을 잡아먹을 때의 무자비하고 거친 행동을 목격했을 때, 그의 외양보다도 더욱 그의 행동에 공포감을 느꼈었다. 초록색은 눈을 가장 편하게 하는 색이라는 데도 나는 사마귀에 대한 공포로 인해 그저 초록이 편치만은 않았다. 평화의 색이라는 초록이 불쑥 몸을 치켜들고 달려들 듯하면, 한 뼘도 넘는 반란을 조우한다면, 나는 지금도 섬뜩하니 놀랄 것이 틀림없다.
사마귀가 내게 공포가 된 것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도 몇 해 전이었다. 그 어린 날의 어느 날 밤, 나는 온몸이 땀에 젖어 깨어났다. 내 경기(驚氣)에 어둠 속에서 덩달아 놀래어 깨어나신 어머니의 다독여 주시던 품속에서도 난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훌쩍거렸다. 나를 더욱 꼭 껴안으시며 어머니께서는 꿈속의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 기괴한 녹색 괴물의 정체를 무엇이라 부르는지 알지 못했었다.
시골 태생인 까닭에 사마귀 말고는 내게 두려운 벌레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 손끝으로 겪어보지 않은 곤충이나 벌레도 별로 없었다. 메뚜기, 잠자리, 매미는 물론 지독한 냄새를 손끝에 남기는 노린재에, 독침을 곧추세운 말벌과 습한 돌멩이를 들치면 나오는 수많은 다리의 노래기 떼, 송충이를 만질 수 있었으며, 심지어 손가락처럼 굵고 푸른 깻망아지까지, 생긴 게 아무리 징그러워도 장난감 아닌 벌레는 거의 없었다. 나비, 나방을 만져서인지 눈 밑이 자꾸만 가려워도 나는 또 또래 아이들과 다음날 뒤란에 그물을 친 왕거미를 거두어가지고 놀곤 했다.
비 갠 오후, 물 젖은 동네가 다시 시끌벅적해졌고, 나는 또래들과 함께 마른땅을 찾아 그 당시 유행이던 딱지치기에 열을 올렸다. 딱지를 치던 내 팔꿈치가 우연히 비 맞아 무거워진, 밭 가에서 길가로 내 뻗은 콩 줄기를 건드린 줄만 알았다. 그러나 나는 겨냥했던 딱지를 힘껏 내려치지 못하고 느닷없이 내 팔뚝에 붙은 그 녹색 생물에 기겁을 하였다. 내 호들갑에 땅에 떨어진 녹색 막대는, 즉시 자세를 잡고 몸을 곧추세워 커다란 두 앞다리를 펼쳐 들며 나와 싸울 자세를 취했다.
“사마귀다.”
누군가 소리쳤다. 친구들은 딱지치기를 곧 멈추고 사마귀를 빙 둘러쌌다. 또래 중의 누군가가 사마귀를 손으로 잡으려 하자 그 녹색 생물은 즉각 방향을 틀고 커다란 두 앞다리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친구도 흠칫 놀래어 손을 뺐다. 사마귀의 기세를 누르지 못하고 우리들은, 아직도 몸을 흔들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사마귀와 대치하였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나뭇가지로 사마귀를 다시 건드렸다. 사마귀는 또 격렬하게 저항해 왔다. 두 앞다리는 녹색의 낫으로써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저마다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사마귀를 가운데 둔 채, 집단 따돌림을 가했다. 나도 그들 중의 하나였지만 나는 두려움에 사마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였다. 우리들이 아무리 괴롭혀도 사마귀의 기세는 눌리는 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의 발이 날아들어 사마귀를 힘주어 밟았다. 죽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발이 걷히고 난 발자국 아래 날개가 짓이겨지고 몸뚱이가 터진 채로도, 사마귀는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채, 두 앞다리를 휘둘러 댔다. 누군가 한 번 막대기로 사마귀를 건드려보았다. 그러나 이제 사마귀는 앞다리로만 저항의 몸짓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아이들과 나는 더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것이 나는 불쌍했는지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 지금 이 나이에 돌이켜 보니 한낱 곤충일지언정 어쩌면 그 순간 나는 사마귀를 경외(敬畏)하였던 것 같다 - 이튿날 학교 가는 길에 우리는 죽은 사마귀가 하늘을 향해 앞다리를 휘두르는 자세로 꼼짝도 않고 녹색 풀줄기처럼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로 자라면서도 웬일인지 우리는 사마귀는 잘 가지고 놀지 않았다. 어쩌다가 호박잎에서, 깻잎에서, 고춧대궁에서, 나뭇잎에서 만나는 사마귀에 마다 나는 흠칫 놀라며, 메뚜기처럼은 마구 만지지 못하였다.
역사 드라마 대조영, ‘다시 보기’ 재미가 짭짤하다. 당군(唐軍)의 포로인 채 아사(餓死) 직전까지의 굶주림과 갖가지 고문으로 생명이 다 파열되었을 것 같은 고통을, 주인공 배우 최수종은 절절하게도 연기한다. 그가 당군의 거인을 맞아 싸워야 하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 내가 혹시 당군이었다면, 나는 저렇듯 극렬한 고통 속에서도 지독하게 저항하는 대조영이 사마귀처럼 두려웠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청자인 나는 태생이 고구려 유민이나 되는 듯 대조영이 얼마나 대견하던지. 드라마를 더할수록, 양파 뒤에 생강, 생강 뒤에 마늘, 마늘 뒤에 고추처럼 고통은 끝도 없이 더욱 깊어만 갔지만, 끝내 사마귀처럼 굴하지 않은 대조영에 의해 고구려는 새로 발해라는 이름으로 환생하여 200여 년간이나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퇴근길에 사마귀가 죽어 있던 자리에 이르자, 저절로 아침의 죽은 사마귀가 떠올랐지만, 부지런한 경비 아저씨들의 청소비에 쓸려 들어간 모양인지 말끔하다. 두 아이의 자전거가 사마귀가 누워있던 위로 다시 지나간다.
마늘이 젓가락에서 미끄러져 잘 집어 지지 않아, 그냥 풋고추만으로 상추쌈을 싸서 한입 물고도 나는 문득 이 만용(蠻勇)의 곤충이 떠올랐다.
매달리기 시합
수세미 호박
여주 오이
푸른 터널에서
매달리기 시합이 벌어졌다
‘절대로 안 진다’
대롱대롱대롱대롱
‘얼굴쯤이야 길어져도’
조롱조롱조롱조롱
‘싯누렇게 늙어가도’
주렁주렁 주렁주렁
‘어휴, 너희들,
아직도 안 끝났니?’
가을 사마귀
매달리기 시합
뜯어말리다 말고
오던 길, 휘이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