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해돋이 인상

행운을 잊어야 행운이 온다

by 인해 한광일

지금 돌이켜 보아도 첫 발령을 강원도 동해시로 받은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농촌에서 자랐으면 농촌이 그립고 바다에서 자랐으면 바다가 그립다지만, 나는 농촌에서 자랐으면서도 늘 바다가 그리웠었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는 열 살 즈음 읽었던 인어공주의 바다 때문이었을 터였고, 자라선 노인과 바다 이야기가 바다와 인연이 없는 내게 향수병 같은 그리움을 심었으리라. 졸업을 앞두고 건성으로 그림책을 넘기다가 화가 모네의 그림 [해돋이 인상]을 만났다. 그때부터 종종 바다의 해돋이가 그리웠던 것 같다.


동해시의 첫인상은 붉은 황톳빛이었다. 버스 정류장은 황토 벌판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북평과 묵호를 하나로 연결하여 동해시는 탄생하는 중이었고, 버스에서 내려 첫 발을 내디딘 땅은 그 가운데쯤에 신시가지를 꾸리느라 온통 붉은 도화지처럼 펼쳐놓은 땅이었다. 낯설지만 새롭기도 해서 붉은빛이 싫지 않았다.

1년간 기숙하기 위해 하숙을 정한 집은 담장 밖으로 넌지시 바다가 보이는 집이었다. 날만 궂지 않으면 아침 바다는 이미 둥싯 떠오른 아침 해를 받아 사시사철 참기름을 발라놓은 듯 번들거렸다. 아침 7시 30분 즈음은 늘 해풍도 육풍도 없는 고요 그 자체였으며, 공기는 털북숭이 강아지의 목덜미처럼 부드러웠다.


학교는 바다를 조금 멀리 내다보는 언덕쯤에 크게 터를 잡고 앉았다. 3층 교실에서 시시각각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었다. 햇빛의 조영(照映)에 따라 바다는 진짜 먹물처럼 먹빛으로 출렁거리다가 어느 순간 쪽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잠시 눈을 떼고 바라본 바다는 또 어느새 파랑새 날개 빛을 하고 푸드덕거렸다. 바다는 이처럼 색깔로도 잠시도 멈추어 있는 법이 없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어느새 또다시 청포도 빛으로 넘실댄다.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하고 감탄할 때쯤, 바다는 한술 더 떠서 연둣빛으로 투명하기까지 하다. 누군가 에메랄드빛이라던 그 바다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학교가 바다에 붙어 있지 않았던들 절대로 이런 색채의 호사(豪奢)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은 아무도 연둣빛 한복 치맛자락 같은 바다를 알지 못할 것이다. 바다가 잘 보이는 3층 교실에서 일 년쯤 근무하지 않는 한, 그처럼 신비한 바다의 표정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바다 일출을 본 적 없다는 친구가 내게, 일출의 장관을 맞을 수 있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라며 무척 부러워했었다. 나 역시 하숙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잡아 놓고, 이제 모네의 [해돋이 인상]은 나의 일상이 될 거라 믿었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1년이 다 가도록 제대로 된 일출을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벼르고 별렀건만, 나의 해는 어느새 둥싯 바다 위에 동그랗거나 수평선의 검푸른 구름 속에 숨었다가 갑자기 퉁겨 오르기 일쑤였다. 모처럼 붉은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잠시 상추 상자에 물을 좀 뿌렸을 뿐인데, 바다의 화재(火災)는 이미 끝이 나 있곤 했다. 결국 나는 동해바다에서 해를 낳는 바다의 일출을 못 보고 말았다. 1년 내내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일출을 만나지 못한 불운을 안고, 나는 동해시를 떠나야 했다. 일출에 관한 한 나는 장소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기막힌 불운아였다.


동해시를 떠나온 뒤로 오히려 더 열심히 일출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도 바다로도 나아가 보곤 했지만, 일출은 언제나 신통치 않았다. 더 이상 부질없이 일출을 따라다니지 않기로 했다.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내 포도도 원래 그저 시큼시큼할 것이라고 믿고 돌아선 것이다. 고향 시골집에서 산봉우리를 옆으로 슬쩍 비껴 떠오르는 황도(黃桃) 같은 일출이면 되었지, 바다의 일출이라고 뭐 특별히 다를까, 했다.


동해시를 떠난 지 이십 년이 다 되었을 때, 서해바다에 근접한 우리 학교는 모든 직원들이 한마음이 되어 동해바다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은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하늘이 흐릴 거라고도 하고, 밤새 그리고 새벽까지도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한 날씨 뉴스였다. 그런데도 새벽으로 나선 것은 취기를 좀 씻어내고자 바닷바람 신세나 지려던 것이었다.


검은 바다가 모래 둔덕으로 점잖지 못하게 자꾸만 철퍼덕거리며 넘어지는 양양 해변의 새벽이었다. 하늘이 두어 번 씻어 낸 쌀뜨물처럼 뿌연 얼굴로 새벽 별들을 지우고 있었다. 하늘이 흐린 것인지, 시간 이른 하늘이란 원래 그러한 것인지 취기가 남은 눈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바람이 불어닥쳤다. 아침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온 바람이 여세를 몰아 여기저기 특별한 목표도 없이 모래 둔덕을 덮치며 요란을 떨어댔다. 바람이 차진 않았으므로 옷자락이 마구 나부끼는 바람 속을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거슬러 내달리곤 하였다. 그때였다. 먼바다를 향해 서서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아가씨들의 어깨너머로 무엇인가 뵌 듯했다. 눈을 들어보니, 군청색의 까만 바다 저 멀리서 모닥불이라도 피웠는지 화기(火氣)가 주홍색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모래밭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수런거렸다. 이윽고 실컷 풀무질에 단 듯한 주황색 코스모스 씨앗 같은 것이 바다와 하늘 사이를 비집고 화기의 한가운데서 좁은 틈새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다가 조금씩 꿈틀대며 벌겋게 앓기 시작했다. 점점 피가 번졌다 혈흔이 낭자한 출산이다. 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불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 바다에 나온 사람들은 이제 모두 일제히 한 방향으로만 서 있다. 얼마 안 되어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불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먹구름마저도 주황빛 불이 옮겨 붙었다. 바다엔 쓰러진 거대한 불기둥이 녹아 흐느적거렸다. 일출을 마주하고 선 사람들의 얼굴마저 태양 빛으로 불타고 있었다. 태양이 물기를 떨어내고 장엄하게 온전히 솟을 때까지, 모든 사람들이 숭고한 태양의 신앙인이 되어 있었다. 모래톱에 그대로 붙박여 말을 잊은 채 태양을 숭배하고 서 있었다. 동해바다를 떠나온 지 이십 년이 다 되어서야 다시 동해바다에서 [모네의 해돋이 인상]이 느닷없이 실현되었다.


서해 오이도 앞바다의 수평선으로 태양이 벌겋게 녹아내리고 있다. 구름마저 불붙은 솜이 되어 이글거린다. 세상이 온통 태양만을 주목(注目)하고 있다. 거북이걸음으로 느릿느릿, 그러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석양이 침몰 중이다. 일몰 후의 바다는 그러나 서둘러 커다랗고 검은 이불자락을 끌어 덮는다. 일찌감치 전등을 끈 나지막한 서해바다의 산들은 벌써 숯처럼 검다. 양양 앞바다에서 떠오른 태양을 15, 6년 만에 다시 오이도 바닷속으로 전송(餞送)한다.







저수지



해 뜨는 이른 아침

커다란 저수지에

김이

무럭무럭


저렇게 큰 국그릇은

하느님의 국그릇일 테지

그래도 하느님은

한 입 안 드시고


찌르레기, 방울새

참개구리에게


오늘 아침 밥상으로

다 내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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