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이길 수 있다

꼰머와 요즘 애들

by 인해 한광일

요즘 꼰대는 꼰머로 진화(?)했다. 꼰대라 불리던 늙은이, 아버지, 교사. 한글 표기의 모양을 일부러 우습게 비틀어 읽으며, 요즘의 신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조롱을 살포시 가미한 결과다. 꼰대,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을 비하, 혐오하는 비속어란다. 서양에도 꼰대란 개념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거기서도 꼰대가 혐오되긴 마찬가지인지, 꼰대질을 bossy라 한단다. boss의 파생어라는 걸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뜻을 따로 풀어 볼 필요도 없을 만큼 직관적이다. boss의 눈으로 보니, 어느 세대인들 ‘요즘 애들’이 버릇 있어 보이겠는가.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크라테스 눈에도 젊은 사람들이 버릇없어 보였나 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게 꾸지람을 들은 젊은 사람들 눈엔 반대로 소크라테스가 꼰대로 보이지 않았을까? 소크라테스가 ‘요즘 애들’을 버릇없다 강하게 꾸짖을 때마다 당시의 요즘 애들은, 소크라테스를 지독한 ‘꼰대’라 뒷말 더욱더 무성하게 피우지 않았을는지. 짐작건대, ‘꼰대’와 버릇없는 ‘요즘 아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생겨난 말이 아니었을까?

어느 시대나 꼰대들은 모이기만 하면 ‘요즘 애들’ 버릇없다 성토하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건 요즘 애들은 ‘꼰대’들의 케케묵은 사고방식과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등 뒤에서 비웃거나 회피하거나 외면 ․ 배척하거나 했을 것이다. 세기를 이어오며 팽팽했을 ‘꼰대’와 ‘요즘 애들’의 꾸지람과 음성적인 혐오, 조롱의 물량(?)은 팽팽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요즘은 균형이 깨어지고 있는 양상이 종종 드러나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전 세기에선 겪어보지 못한 사회 변화의 속도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당연히 적응에 서툰 쪽은 꼰대 쪽이다. 그러나 요즘 애들은 정보통신의 발달과 융합문화의 폭발이 너무도 흥미진진하여 주류로 서 있다. 현대 문화에 능수능란한 요즘 애들은, 꼰대들이 꾸짖기 위하여 붙들어 세운다고 서 있을 아이들이 아니다. 실은 심한 변화에 대한 어지럼증으로 꼰대들은 요즘 애들을 나무랄 정신도 없다. 반면 요즘 애들의 눈엔 키오스크 하나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꼰대들의 모습이 못나 보이기까지 한다. 요즘 아이들의 꼰대 비아냥과 혐오가 지나쳐 뉴스에 오르내리기까지 한다. 꼰대들의 위기다.


그러나 꼰대와 요즘 애들이 늘 서로 꾸짖고 뒷담화 하며, 갈등 관계로 맞서는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눈 빠른 요즘 애들은 꼰대들에게 배움을 청하거나 손을 내밀어 꼰대와 요즘 애들 사이에 새로운 중심을 만들어 내곤 한다. 오랜 꼰대 문화인 수궁가를 뒤져서 요즘 애들의 표현대로 ‘신박’한 새 가락과 새 춤을 입혀 세상에 크게 펼쳐 놓는가 하면, 요즘 애들의 디자인 위에 살포시 꼰대의 문양을 얹어 독특한 창의성을 칭송받기도 한다. 고전 소설을 살펴보고 뒤집어, 조연을 주연으로 재해석하는 신선한 도발을 하면서도, 이를 지금껏 지켜온 꼰대들에게 겸양의 고개를 숙이곤 한다. 오래된, 보다 오래된, 꼰대의 꼰대들의 노래를 찾아 부르는 요즘 애들이 꼰대들에게 인기를 누리곤 한다. 요즘 애들까지도 ‘그런 게’ 있었느냐며 신기해한다. 이들은 비아냥대고 혐오하는 대신 꼰대와 함께 이긴다.


유구한 전통의 지역 막걸리가 문 닫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예전부터 지역에선 유명한 막걸리였으나, 인구가 적어 늘 수요는 한정적이었던 걸 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오랜 세월을 잘 견뎌온 탓에, 지역 외에서도 그 맛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막걸리야말로 꼰대(?)를 대표하는 주류문화로 요즘 애들의 문화권 밖에 있지 않은가. 더욱이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이라는 학교보건법 시행령으로 인해, 시행령 단속 범위 안에 위치해 있는 양조장은, 자연스레 사업 종료의 위기를 맞게 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꼰대 문화(?) 하나가 이렇게 문이 닫힐 뻔했었나 보다. 그러나 꼰대의‘요즘 애’는 험담 대신 꼰대 주(酒)(?)의 가치를 재탐색하여 어려운 사정을 모두 극복해 가며 끝내 되살려내기로 마음먹었단다. 결국 새로 탄생한 꼰대주는, ‘꼰머’들이 내미는 손에도, ‘요즘 애들’이 새롭게 내미는 손에도, 두루 넉넉히 잔을 채우고 있는 모양이다.


인류는 아마도 이렇게 발전해 온 듯싶다. 꼰대들에게서 의외의 지혜를 발견하고, 꼰대들의 손에 들린 꾀죄죄한 가치를 들춰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까닭을 찾아내는 요즘 애들에 의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모양이다. 몇몇 요즘 애들의 ‘요즘 애들 같지 않은’ 모습이 기특해서 꼰대들은 속도 없이 다 내어놓고, 개량과 개선과 창의를 이뤄낸 요즘 애들을 ‘예뻐라, 예뻐라’하면서, 꼰대들과 요즘 애들 간의 머리와 꼬리가 접합을 이뤄낸 것인가 보다. 꼰대의 왼손과 요즘 애들의 오른손을 맞잡고 예까지 이어 온 모양이다.

시간이 컨베이어 벨트다. 요즘 애들은 저절로 꼰대가 되고, 꼰대가 되어 ‘새로운 요즘 아이들’의 버릇없음에 혀를 끌끌 차게 될 것이다. 혈기 왕성한 새 요즘 아이들은 ‘새 꼰대’가 아니꼽고 답답할 것이다. 서로 꾸짖고, 뒷담화하면서, 서로 험담하고 조롱하고 비웃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 요즘 애들은 또 꼰대들의 답답한 논리를 들춰보고, 뒤집어보며 새로 나아갈 길을 열게 될 것이다. 몇몇 꼰대들은 묵은 논리를 접고 기꺼이 새로운 논리에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손잡으며 함께 이겨나갈 것을 기대한다.







누가 먼저야?


시골 할머니 댁

수박 밭에 함께 사는

참개구리와 수박

누가 먼저 살기 시작했을까?


서로 닮은

푸른 줄무늬 옷

누가 먼저 입기 시작했을까?


할머니 댁 수박밭의

참개구리와 수박

누가 먼저

함께 살자고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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