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말이에요, 사실 별 거 없지 않나요?
마지막 연애는 약 3년 전이었다. '이 사람과 왜 만나고 있지?'라고 자문했을 때, 뚜렷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 만난 지 3년이 되어갈 무렵, 큰 이유 없이 헤어졌다. 여태껏 경험한 헤어짐들과 같았다. 굳이 헤어짐의 이유를 찾자면, 각자의 취향이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이 달랐다. 그런 미묘한 관점의 차이가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런 것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이 정도의 다름은 마주 잡고 나아가면서 좁혀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미묘한 각의 차이는 나아갈수록 점점 벌어졌다. 다름의 차이로 인식하고, 존중하며 계속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답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어투가 차갑다 하여 말끝을 뭉갰고, 관심 없던 이모티콘을 써보기도 했다. 매운 음식을 싫어했지만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속이 아파가며 먹어보기도 했다. 그에게 하나, 둘 맞춰가며, 나라는 존재는 옅어져 갔다. 그들도 역시, 나에게 맞춰줬으리라. 그랬기에 더 노력할 수 있었다. 다만, 부딪힌 부분들은 사소했지만, 빈도수가 잦은 영역들이었다. 작다고 여겼던 것들의 실상은 삶의 대부분이었다. 오만했다.
사랑은 희생을 동반한다. 연을 이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나 이기적이기 때문일까? 혹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별을 경험해 본 이들 중, 다음의 만남에서도 전과 같은 결말을 기대하고 만나는 이는 없다. 헤어짐을 고민하고 통보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이가 아니고서야, 그 과정이 유쾌할 리 없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결말이 있는 연애를 경험할수록 새로운 시작에 신중해진다. 현재까지의 경험을 미루어보았을 때, 사랑은 소모적이며 끝은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싶다.
가족을 사랑하냐 묻는다면, 사랑한다. 친구를 사랑하냐 묻는다면, 사랑한다. 하지만, 각 관계마다 느끼는 사랑의 모양새에 차이가 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가족 간에 사랑은 맹목적이다. 주고받는 것에 목적이 없다. 목적이 있다면, '나로 인해서 그들의 삶이 보다 윤택해졌으면'하는 바람뿐이다. 친구 간에 사랑도 비슷하다. 다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즐거움'이다. 가족에게는 '안식처', 친구에게는 '놀이터'가 되어주고 싶다. 연인 간에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복합적인 형태다. '안식처'와 '놀이터'의 공존이다. 힘들 때는 쉬어갈 수 있게, 심심할 때는 같이 즐겁게 해주는 것이 이상적인 연인의 사랑이라 생각한다. 상대에게 보답받기를 기대하며 위의 역할을 수행하진 않는다. 다만, 역의 상황이 닥쳤을 때, 나의 상태를 알렸을 때,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어떤 관계에서든 상대방에 대한 기대의 역치를 최소한으로 설정하며 살아왔다. 기대 없이 살아가자며 다짐했다. 이별 후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흔들린다. 보답을 기대하고 행동했으면 결과는 달랐을까? 희생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헤어짐의 명분이 생겨났을 뿐, 결말은 같았을 것이다.
끝까지 이기적이다.
연인 간에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다. 다른 이들에게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제시할 청사진도 없다. 연인 간에 사랑은 본능적인 끌림이 전부일수도 있다. 성적인 끌어당김이 촉매가 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렇게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사랑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사치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토록 '사랑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연인 간에 사랑이 가장 완전하며 이상적인 사랑이었으면'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는 사람이다. 참으로 모순된 사람이다. 기대 없이 살아가겠다면서 그 무엇보다 가장 이룩하기 힘든 형태로 기대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날씨가 쌀쌀해지니 가을을 제대로 타기 시작했나? 문득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다들 짝이 있었다. 부러웠다. 같이 있기만 해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저들이 부러웠다. 나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된 지 오래되니, 사랑에 대한 환상이 생겨버린 것 같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 했던가? 저 멀리로 떠나 있으니, 사랑이라는 것이 이만큼이나 거창해져 버렸다.
욕구는 배설의 형태로 해소된다. 나는 지금 사랑할 수 없었기에, 글이라도 썼다. 사랑의 이미지가 작아진 것도 같다.
건강히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아,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