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을 읽으며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 소리는 가슴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와 내 심장을 울리고, 피부의 솜털을 일으켜 세우며, 관자놀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빠른 템포의 바이올린 연주는 내 영혼까지 끌어올릴 듯 격정적이다. 아쟁 소리는 꼿꼿하게 긴장된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몸을 낮추어 벽에 기대앉게 하며, 힘이 들어가 뻣뻣하게 굳어 있던 내 어깨를 편안하게 내려놓게 한다.
발레리나가 화려한 몸짓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그녀는 발끝을 세우고 한 발로 서서 원을 그리며 턴을 한다. 두 손을 양 옆으로 펼치고 위로 쭉쭉 뻗으며 점프를 한다. 음악이 빨라질수록 그녀의 시선은 하늘로 향하며, 몸을 솟구쳐 허공으로 뛰어오른다. 한복을 입은 무용수가 우아한 춤사위로 펼치고 있다. 그녀는 버선발로 발뒤꿈치부터 지긋이 바닥을 누르며 느릿하게 턴을 한다. 팔과 발을 뻗었다가 유연하게 꺾어 구부리며 몸을 한껏 낮춘다. 두 눈을 살포시 감은 듯한 무용수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문화에는 그 문화를 일구어 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깃들어 있다. 동서양의 삶의 방식이 달랐으므로 그들의 음악과 무용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의 그림에도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가치관이 녹아 있으므로 우리 그림을 감상할 때는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그림을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1. 우상좌하(右上左下) -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바라보야야 한다.
우리의 그림을 보면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은 직사각형 모양을 한 것이 많은 반면, 서양의 그림에는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 모양을 한 것이 많다. 이것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서양의 그림이 가로가 긴 직사각형인 이유는 그들이 가로쓰기를 했기 때문이고, 우리 그림이 세로로 긴 직사각형인 것은 세로쓰기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볼 수 없지만 70년대만 해도 세로쓰기로 된 책들이 더러 있었다. 세로쓰기로 된 글을 읽을 때는 오른쪽 위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글을 읽어 내려가야 하며, 마지막에는 왼쪽 아래에서 끝이 난다. 가로쓰기로 된 글을 읽을 때는 왼쪽 위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글을 읽어가며, 마지막에는 오른쪽 아래에서 끝이 난다. 이처럼 세로쓰기와 가로쓰기의 읽기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그림도 글을 읽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감상을 해야 한다. 우리 그림을 볼 때는 세로쓰기의 글을 읽을 때처럼 우상좌하, 즉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바라보야야 한다. 그리고 서양의 그림은 좌상우하, 즉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의 방향으로 그림을 감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박물관 전시실에 들어가면 대체로 ‘동선을 좌로 꺾으시오.’라고 되어 있다. 전시장 입구부터 이렇게 좌로 꺾어 가면 그림을 전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거슬러가며 보라는 얘기가 되는데, 이렇게 하면 서양식으로 그림을 보는 것으로 우리 그림을 전부 거꾸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하는 전시실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작품과 관람자와의 거리 – 작품 크기의 대각선의 1 또는 1.5배 정도 떨어져서 바라보아야 한다.
관람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교양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그림으로부터 1m 정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점잖게 천천히 걸어가면서 작품을 보고 있다면 그는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큰 그림은 멀찍이 물러나서 바라보고, 작은 그림은 좀 더 들어가서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어서 자세히 감상하고 싶다면 더욱 가까이서 보고, 이렇게 해야 제대로 감상한다고 할 수 있다. 작은 그림은 가까이에서 봐야 세부적인 것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림과 교감할 수 있다. 한편 큰 그림을 감상할 때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뭉개져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서 보면 그 형체를 찾아 뚜렷이 보인다. 이처럼 그림의 크기에 따라 그림을 감상하는 적절한 거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3. 관람시간 – 마음으로 찬찬히 오래 음미해야 한다.
그림을 감상할 때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부를 찬찬히 바라봐야 한다. 시이불견(視而不見-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다), 청이불문(聽而不聞-듣기는 듣는데 들리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영어의 see와 look at, 그리고 hear와 listen to의 차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애정을 담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가가면, 예술은 누구에게나 속내를 보이며 다가올 수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은 저절로 알아지는 법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림을 머리나 가슴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즐길 때 우리의 영혼이 깊이 감동받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4. 전시회의 최고 명품은 무엇일까?
전시회를 기획한 큐레이터는 그 전시의 최고 명품을 눈에 확 띄는 곳에 둔다. 그러니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중앙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 그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가 생각하는 최고의 명품이다. 그러나 전시회를 관람하러 온 모든 사람들에게 한 작품만이 최고의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마음에 꼭 드는 작품이 모두 다를 수 있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명품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로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그 전시회는 혼자 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홀로 찾는 전시회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 작품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오래 머물기도 하고, 가다가 돌아와서 다시 보기도 하고, 전시실을 나서기 전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가는 그런 자유로움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감상을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 찾는 전시회는 나만의 속도에 맞추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문화재는 우리 조상이 만든 것이며, 우리 조상들의 삶과 얼을 담고 있다. 우리의 그림에도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가치관이 녹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림을 볼 때는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마땅히 그림을 제대로 감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