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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독기 Oct 24. 2021

MZ세대들에게 노동조합을
이야기하는 이유

#후배만아니었어도...#그놈의MZ

후배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다


대학 후배로 부터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왔다.
짧은 안부 인사를 마치고 후배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형 우리 회사에 노조를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평소 나누던 대화의 주제와는 전혀 다른 질문에 잠시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갑자기 노조는 왜 만들려고 하냐?"

후배는 그동안 회사의 갑질이 너무 심했다고 한다.
자기가 직접 당하진 않았지만, 동료 중에 그런 일을 겪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상명하복식의 군대문화가 너무 심하고, 

창업공신이라고 불리는 몇 안되는 임원들은 매년 연봉을 엄청나게 가져가는데 

정작 직원들 처우는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이라고 했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조금 기가막혀서
"야, 회사가 다 그렇지 안그런 곳이 있겠냐.
적당히 주는 만큼 일하고 참으면서 다니는게 직장이지

그런거 가지고 노조만들었으면 

우리나라에 노조 없는 기업 하나도 없겠다"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명색이 노무사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당시에는 많은 기업에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지만,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나 조차도 그거이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회사에 자기 손으로 근로계약서를 쓰고 들어 간 이상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후배의 불만섞인 푸념은 

내겐 어린아이의 치기에 불과하게 느껴진 듯하다.


후배는 다시 상기된 말투로

"형, 그게 다가 아니야. 

우리 회사가 최근에 매출이며 영업이익까지
매년 2~3배나 늘었는데 우리 급여는 고작 2%올랐어.

성과급? 그거 주긴 주지.

근데, '부서별로 성과가 다르다', '개인별로 성과가 다르다', 

'분기별로 회사 실적이 너무 변동성이 커서
한꺼번에 성과급을 많이 줄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온갖 이유를 대면서
성과급을 너무 후려쳐서 주고 있단 말이야.


근데 조직문화까지 개떡같은 이 회사가 좋아질 조짐은 전혀 보이질 않아.

다들 이런 문제를 알고 있고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방법을 몰라.

참고 참다가 이제 터진거야. 


당장은 누가 나서는 사람이 없는데,

이제라도 내가 나서서 노조를 만들어 보고 싶어.

회사가 제일 무서워 하는게 노조 아니야?"

 

녀석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성토하듯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말하기 좋아하고 유쾌한 녀석이라 

그런식으로 이야기하는게 이상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정리된 생각을 숨도 쉬지 않고 털어낼 정도면
적지 않은 고민끝에 내게 연락한 것이 틀림없다.

내가 꼰대라 그런지 후배의 이야기가 크게 공감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 걱정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 니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줄게.
근데말야 노조 만들면 좀 피곤해질 수도 있고, 

나쁘게 될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
다른 사람이 만들면 좋을텐데 

네가 굳이 앞장설 필요가 있겠냔말이지"

후배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누군가 해야 하는데 모두가 망설인다면, 

내가 나서는 게 마음 편해.
나라도 질러야 뭔가 이룰 수 있지. 

안그러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아"

뭔가 오글거리는 멘트에 농담으로 받아치고 싶었지만,
업무 시간 중이라 긴 통화가 어려워 퇴근 후에 마포에 있는 식당에서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걔는 노동운동에 1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 후배는 86년생이고 나와는 4년 터울이 있는 후배다.

내가 늦게 군대를 갔다온 후 복학했을 때 처음 만났다.

그 후배는 나이차는 있어도 많이 귀여워해주던 녀석이었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붙임성이 좋고 

얼굴에 구김살 없어 뭔가 밝은 에너지가 넘쳤고,

같이 있으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던 그런 후배였다.


후배는 대학때 부모님과 잠실에서 살았고

7년 전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IT회사에 취직을 했다.

재작년에는 소개팅으로 만난 초등학교 교사와 결혼해서

지금은 잠실에 신혼집을 차리고 갓 돌이 지난 딸도 있다.

아버지는 현재 중소기업 임원이고, 어머니는 치과 의사다.

친형은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밟고 있다고 한다.


후배가 왜 그렇게 밝은 모습이었는지 자라온 배경을

알게 되니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금수저이지만, 자신은 절대 아니란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복한 가정에서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녀석이 갑자기 노조를 만들고 싶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더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음....MZ라면 이해가 될 것 같다


후배가 다니는 회사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IT대기업이다.

이공계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매년 입사하고 싶은 회사' 10위에 들 정도로 평판이 좋다.

그 만큼 급여나 복지라든가 근무환경이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 후배도 7년 넘게 그 회사를 다니며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니 처우가 좋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왜 갑자기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할까?

전에 했던 통화에서 어느정도 이야기는 들었지만, 

'고작 그정도 이유 때문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노조 설립 이유는 

대부분 '열악한 임금, 처우, 고용불안, 불법부당한 노동착취' 등 

기본적으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야기하기에 충분한 근로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뭘 잘못 짚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존의 노동조합에 대한 고정관념에 이 후배의 사례를 끼워 넣으니 

뭔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가 MZ세대라는 점을 먼저 생각한다면?

음...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될 것 같다. 

MZ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잘 알고 있듯이 MZ세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합친 말이다. 

나이로 치면, 20대초반에서 40대초반까지로 약 20년 정도의 나이대가 형성되어 있어 

이를 하나의 세대로 묶는게 과도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MZ세대 안에서의 차이보다는 

MZ세대와 그 이전 세대간에 훨씬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게 사실이다.  


MZ세대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많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특성은 바로 '인터넷,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매우 다양한 행동 특성이 나타난다.

무엇보다 정보를 접하는 속도와 그 양은 기성세대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상황에 대한 이해와 판단도 오래 걸리지 않고, 매우 직관적이다.


또한 생각의 중심에는 항상 자기 스스로를 놓는다. 

먼 미래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지금 당장 부당하고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의견을 표출한다. 

그 의견 표출의 창구는 당연히 온라인이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서 온라인의 공간에서 생각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이것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세대가 바로 MZ세대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그 후배도 MZ세대다.

과거와 같이 저임금, 고용불안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의 불공정한 성과배분과 부당한 조직문화가 

참을 수 없는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후배의 연령대는 더 이상 '젊은세대'로만 치부되지 않는  세대다.

그들은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회 초년생이거나,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 못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60~70년대 '산업역군'이라 부르던 이들의 나이와 같아졌다.

이제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야 할 허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대가 되었다.

X세대니 Y세대니하던 '문화'세대를 지칭하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MZ세대가 주목받는다.


실제로 요즘은 어디서나 MZ세대가 가장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요 소비주체로서 온갖 광고가 그들을 타겟팅하고 있다.

또한 모든 정당이 MZ세대를 겨냥한 정책을 경쟁하듯 쏟아낼 정도로

MZ를 잡지 않고서는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MZ세대가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에서의 불공정성를 당장에 바꾸고 싶은 성향과 

조직에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로서의 권리의식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귀결되는 같다.


그래, MZ에 맞는 노동조합 이야기를 해줄게


그렇다면 이 후배에게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할까 고민이되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노동조합 관련 책들은 대부분이 법학 서적이거나 

어떤 경향성을 가진 노동단체, 시민단체가 만든 것들이라, 

쉽게 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했기 때문에..


어쨌든 후배가 알고 싶은 것은 노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뭘 조심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일 것이다.


그래서 딱 그 후배의 눈높이에 맞춰, MZ세대가 느끼는 속도감을 고려해서, 

진짜 중요하고 꼭 알아야 하는 것들만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다.  


복잡한 법이야기나, 거창한 이념들은 일단 걷어내고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이 이야기하는 노동조합에 대해 알려 주어야겠다. 


어떤 노조를 만들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 어떻게 운영을 해야할 지는 

결국 노동조합을 만든 그들이 해야 할 몫이니까.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후배에게 들려 줄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피차 서로 바쁘고 코로나 시국에 차분히 앉아서 대화하기에도 어려우니 글로 써주려한다. 

이걸 다 읽으란 이야기는 못하겠다.

궁금한 부분만 추려서 봐도 좋다. 

여력이 된다면 세 줄 요약도 해주고 싶은데 역량이 부족하다.

부디 성공적으로 노조를 런칭하기 바란다. 

노조를 만들지 않더라도 노동조합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해소되길 바란다. 

이 글은 딱 그 정도로만 활용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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