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억울함을 풀어줄게
그래도 노동조합은 왠지 꺼려지네요
노동조합은 ‘근로자의 임금 기타 근로조건의 개선과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고 법에 규정되어 있다.
오롯이 근로자의 편에 서있는 집단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많은 근로자들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가입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모습이 많다. 물론 노동조합의 장단점을 면밀히 고민해보고,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가입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조 가입을 망설이거나 거부하는, 심지어 혐오하는 대다수의 근로자들은 노동조합이 어떤 것인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대게는 노조의 어떤 일면을 바라보고 호불호를 결정한다든가, 노조가 갖는 사회적 편견의 영향 탓으로 노조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경우다.
사실 노동조합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가입의 자유를 만끽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헌법과 법률은 ’괜찮아 해도 돼‘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기업 내 많은 근로자들은 노조에 접근하는 것 자체에 어떤 장벽을 느꼈던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본다.
첫째는 노조 포비아 때문이다.
우리가 TV, 신문, 책 등에서 접해 온 노동조합은 항상 탄압의 존재였다. 늘상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경찰에 의해 제압받는 모습만 비춰졌다. 회사에 새로 입사하는 자식들에게 행여 불이익이라도 있을까 부모님들은 “노조 가입할 생각하지 말고 회사 말씀 잘듣고 열심히 일해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돈을 버는 것이 더 중요했던 시절, 노동조합 활동에 열을 내는 동료에 대해 냉소적인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 머릿속에 노동조합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뿌리를 깊게 내린 것 같다.
둘째는 노동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 가?
아마도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건설노동자‘나 ’공장노동자‘, 환경미화, 청소용역을 담당하는 육체근로자 등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에게 아직도 ’노동‘이라는 개념은 이런 모습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은 즉 ’근로‘와 같은 말이다. 둘 다 영어로는 Labor로 쓴다. 일본에서는 아예 근로라는 말 대신 노동을 더 많이 쓰고, 중국에서는 아예 근로라는 말 자체가 아주 고대의 언어로만 인식되고 있다. 실은 노동이 보다 더 정확한 말이다.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등과 같이 국가기관의 명칭조차 ’노동‘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노동이라는 것을 단순히 고된 육체노동, 노가다 정도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조차도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 쯤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는 노조를 하면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조합에 대한 정확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오면서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노동조합이 기업내 노사관계에서 어떤 중요성이있는지, 노동조합이 있음으로서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우리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노동조합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교과서 보다는 신문과 뉴스에서 맨날 파업하고 데모하는 집단 정도로 밖에 접하지 못했다. 일부 언론에서 노조 파업으로 기업이 망하게 생겼고 보도하는 것을 순진하게 믿고 자라왔다.
그러나 프랑스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단체교섭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하여 교육한다. 노동조합이 회사와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 직접 실습까지 시킨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이 무엇이고 왜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지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불과 십수년 전만 하더라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서는 은밀한 골방에 비밀리에 모여 학습하고 가입원서를 돌렸던 우리나라와는 정말 많이 다른 모습이다.
언론을 그대로 믿지는 말자
그 밖에도 여전히 노동조합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부각시키는 언론도 문제다. 언론에서는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그 역효과에 집중한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근로자들의 이익집단이므로 그 이익을 위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단체행동 즉 파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파업때문에 기업과 국가경제가 위기에 빠지고 국민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만 부각한다 .
기업의 경영이 어려움에 빠져있는데 성과급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이 매우 이기적이고, 불합리한 집단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노조가 불법파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세상에 때려죽일 범죄집단 취급을 하면서, 연일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하종강 교수가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란 책에서 언급했던 황당한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철도 노조 파업으로 대학입학시험날에 정시에 도착하지 못한 한 학생이 시험을 보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 철도노조의 이기적인 파업으로 대학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을 동정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철도노조는 하루아침에 한 어린 학생의 장래를 망쳐버린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집단으로 규정되었다.
그런데 훗날 이 사건을 다시 확인해 본 결과 실제로는 그 학생이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시험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그 학생의 장래를 막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참 뒤에 밝혀진 것이고, 이미 철도노조는 욕을 먹을대로 먹어 회생이 불가한 상태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으로 민주노총 화물면대가 SPC를 상대로 파업을 벌이면서, 대리점주들이 빵을 제때 공수받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는 기사다. 화물연대 파업은 불법이고, 화물연대 노조원들이 비상식적인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 피해는 그대로 대리점주들에게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안그래도 힘든 대리점주들은 노조의 파업으로 고사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화물연대의 파업이 불법인지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기사 속에는 왜 화물연대가 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가없다.
대부분 두리뭉실하게 증차와 관련한 분쟁 정도로 쓰여있다. 실제 사실을 들여다보면, 분명 화물연대측 이야기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회사측의 일방적인 통보, 입장 돌변, 화물연대에 대한 무시 등의 잘못 등은 언론에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될 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언론만을 접한 국민들이 노조에 대해 다시 한 번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되었다는 점이다.
노조를 설립하거나, 노조에 가입을 고민하는 MZ세대들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이와 같은 잘못된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막연히 품고 있는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냉철한 이성과 논리적 사고로 타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정관념, 편견이 무서운 것은 아무리 아니라고 그 근거를 들이밀어도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노동조합이 항상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노조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는 이와 같은 편견은 냉정하게 걷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해 비판하거나 노동조합이 바뀌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직접 노조를 경험해보지 않는 한 알멩이 없언 비난에 불과할 수 있다. 노조를 결성하고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활동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노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고, 노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에 대해 좀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노총은 어용? 민주노총은 강성귀족노조?
이것도 언론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조합 총연맹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저렇게 각각 어용/강성귀족노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종북 좌파세력이라고 단정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상급단체를 선택하려는 단계에서 그와 같은 인식때문에 한국노총 또는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결론적으로는 사실이 아니지만, 두 노총 모두 그런 오해를 살만한 역사와, 사례를 가지고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게 더 정확하다.여기서 구체적인 역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소 고리타분할 수 있으니, 간단히 언급만 하는 것이 좋겠다.
한국노총의 전신은 해방 후 등장한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대한노총)이고,
민주노총의 전신은 비슷한 시기 등장한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다.
대한노총과 전평은 1946년부터 전평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는데,
대한노총은 이승만 정권과 결탁하여 세를 불렸고, 전평은 이에 대항하다 소멸 직전까지 몰리게되었다.
한국노총은 이후에도 정권과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왔으나,
전평은 극단적인 투쟁을 반복하다 1995년에 와서야 합법적인 전국단위 노동조합총연맹 즉 현재의 민주노초이 되었다.
그와 같은 역사로 한국노총은 어용노조라는 오명을 아직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노총은 과거와 단절하고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에 충실히 하려는 노력을 백방으로 쏟고 있다. 각종 사회적 대화에 적극 참여하며 근로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치적, 경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매년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한국노총 소속 노조는 민주노총보다 더 강성 투쟁을 벌일만큼 과거의 어용이라는 오해를 받을만한 활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지금이라도 한국노총=어용이라는 오해가 풀렸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편 민주노총이 강성 귀족노조라는 오해는 짐작했듯이 H자동차 노조 사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평균 억대연봉을 받으면서도 매년 임금인상 성과급을 위해 투쟁학고 파업하는 귀족집단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비록 민주노총 내에서 H자동차 노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노총 산하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중소영세 기업 노조다. 하나의 노조만으로 민주노총 전체가 싸잡아 비난을 받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민주노총측에서는 H자동차 노조가 귀족노조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나름 타당한 이유이지만, 아직은 우리나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해명으로는 들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대한 오해에 대해 간단히라도 살펴본 이유는 실제 MZ세대가 노조를 만들때 초기에 상급단체의 필요성을 느끼는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언론이나 잘못된 주장에 의해 형성된 양대노총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근거로 상급단체를 선택할 때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상급단체를 선택할 때에는 해당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강령이라는 것을 살펴보면 된다.
그 노동조합이 지향하는 바,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읽어보고 우리 노조의 정체성에 맞는 노동조합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부디 뜬 소문으로 흔들리지 말고 정확하고 냉철한 정보 분석으로 상급단체를 고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