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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독기 Oct 24. 2021

까짓 것, 만들어 보자 노조!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근로자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함께 모여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고도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내재된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근거없는 노조 포비아를 느낄필요도 없으며, 이유없는 노조 혐오를 하는 것도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문제는 노동조합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냐에 있는 것이지, 노동조합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하면, 뭔가 거창해 보인다. 사규만 따라왔던 직장인들이 노조법이라는 법률에 따라 무엇인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하는 것 같다. 괜히 노조를 만들었다가 일만 키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하지만 이런 고민들은 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느끼는 막연한 감정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대학시절 또는 학창시절,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어떤 모임을 만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동아리를 만드는 것은 마음이 맞는 몇몇이 모여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정기적으로 모이고 회비도 걷고 하면서 운영된다. 노동조합도 간단히 보면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말자, 만드는거 쉽다. 


노동조합 만들기 준비와 노동조합 설립 총회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함께 할 조합원들을 모아야 한다. 가입원서를 돌리고 어느정도 조합원이 확보되면 노동조합 설립 총회를 개최해서 노조 설립을 결의하고, 임원을 선출하면 된다. 어디서 많이 본 절차 아닌가? 그렇다. 동아리 모임, 계모임 만드는 것과 같다. 일단 사람이 필요하고, 같이 모여서 창립을 선언하고, 임원을 뽑아서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을 때에는 이 모든 과정이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공장에서 노조 가입원서를 돌리다가 해고가 되기도 하고, 모아둔 가입원서가 탈취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그런 탄압을 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최근 만들어지는 노동조합은 거의 예외 없이 온라인 상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결의하고, 조합원 가입원서도 온라인으로 접수 받는다. 사용자든 누구든 그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 자체가 없다.  

(노동조합 가입원서 양식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아무 양식이나 사용해도 무방하다)   

 

조합원 가입원서가 어느정도 모이면, 조합원 총회를 개최해야 한다. .여기서 할 것은 당당하게 노동조합 설립을 선언하고, 노동조합을 이끌어갈 간부들을 뽑는 것이다. 총회의 순서는 노조마다 달리 할 수 있겠지만, 꼭 들어가야 할 것은 1. 총회 참석자 수 보고 2. 규약 제정 투표, 3, 임원선출 투표 이 네가지다. 


참석자 수 보고는 적법한 조합원 총회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총회는 원칙적으로 과반수의 조합원이 참석해야 적법하게 성원이 되고, 그래야 적법하게 여러 가지 결정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규약제장, 임원선출 이 2가지는 추후 설립신고를 할 때 반드시 신고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설립총회 때 해야 한다. 


그런데 MZ세대 노조 조합원들은 잘 모이려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뭔가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막상 만나서 모임을 갖는 것에는 머뭇거리거나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고 한다. 물론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모임 자체가 곤란한 상황이라 그런 시대적 분위기도 반영이 된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노조를 만드려는 시도가 이런 오프라인 모임의 어려움으로 좌절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꼭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총회를 개최할 필요는 없다. 참석이 확인되고,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할 수 있는 장(場)이라면 그것이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큰 문제가 안된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 새 노조가 설립 총회를 매타버스를 이용해 비대면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또 다른 노조는 유튜브나 줌을 활용해 비대면으로 총회를 한다고 한다. 

매타버스를 활용한 서울교통공사 새노조 설립 총회/이프렌드


노동조합 설립절차는 아파트 청약보다 쉽다


노동조합법 제10조 제1항은 노동조합 설립 신고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좀 길게 적혀있지만, 사실 별건 없다. 간단히 말해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노동조합 규약‘ 이 2개를 관할 행정관청, 즉 지방자치단체나 고용노동부지청에 신고하면 된다. 전에는 거의 방문접수를 많이 했지만, 요새는 우편이나 인터넷으로도 설립신고를 할 수 있어 과거보다 절차가 더 편리하다. 

다만, 행정관청 직원에게 설립신고서를 전달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회사와 조합원들에게 홍보할 목적으로 방문신청을 하는 경우도 많다. 노조 설립이 나름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기업일수록,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던 사업장일수록 이런 세레모니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설립신고서를 접수하고 나면 그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접수한 기관으로부터 설립신고필증 이라는 것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노동조합 설립 절차의 전부다. 너무 간단하지 않는가? 청약통장과 거주요건, 가점까지 고려해야 하는 아파트 청약보다 쉽다. 설립신고서와 규약 이 2가지만 갖추면 직장인은 누구든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이 2가지 있다. 


첫째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서에는 나와 있는 항목은 누락없이 반드시 모두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립신고서 양식은 편의상 만들어진 양식이 아니라, 노동조합법에서 꼭 기재하라고 한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법에는 

1. 노동조합의 명칭 2.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 3. 조합원 수 4. 임원의 성명과 주소 5. 소속된 연합단체가 있는 경우에는 그 명칭 6. 연합단체인 노동조합에 있어서는 그 구성노동단체의 명칭, 조합원수,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 및 임원의 성명ㆍ주소 이 6개를 반드시 설립신고서에 기재해야만 설립신고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설립신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먼저 위 6가지 사항을 준비해야 한다. 절차는 간단하지만, 그 준비가 조금 더 까다롭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반드시 2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단체‘이기 때문이다. 나홀로 노조를 만들 수는 없다. 일단 만들고 숫자를 불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노동조합이라는 단체를 ’설립‘하려면 그 시점에서 단체성을 갖춘 조직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1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그 최소한의 요건이 2명이라는 점이다. 노조 설립의 최소 인원 허들이 낮은 것은 최대한 근로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당장 노조설립이 시급하다면 딱 2명이 먼저 시작하고 점점 그 규모를 늘려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래도 회사로부터 그리고 직원들로부터 인정받고 지지받는 노조가 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느 정도 규모를 키운 다음 멋지게 노동조합 설립신고 세레모니를 하는 것이 보기에 더 좋을 것이다. 물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니,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하면 된다.  


    

[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양식 ]    

     

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함께 작성해 보자


1. 명칭

노동조합을 만들면 대게 다니는 직장의 이름을 노동조합 명칭으로 한다. 000기업 노동조합 이런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노동조합 명칭이 다양해지고 있다. 한 가지 이유는 복수노조 때문이고 또 하나는 MZ세대들의 성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한 회사에 어려개의 노조가 있다면 같은 명칭을 쓰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에 000기업 노동조합, 000기업 민주노동조합, 000 기업 사무직 노동조합 이런식으로 각 노조의 특성을 반영해서 노조 이름을 각기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설립된 MZ세대 노조들은 나름의 개성과 지향점을 담아 색다른 이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네이버의 공동성명, 카카오의 크루유니온 처럼 노조 명칭을 '사람중심', '인재중심', '바른노조', '올바른노조' 등으로 다양하게 정하는 모습이다. 신선하고 새로운 명칭 또는 애칭을 만들어 노동조합의 개성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2.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정상적으로 운영을 하려면, 노동조합 업무만을 할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노동조합 설립시 사무소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첫 단체교섭에서 사무실을 노동조합에게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쟁점이다. 회사에서는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고 노조에서는 노조의 자립성을 위한 최소 요건으로 반드시 확보하려 하기 때문에 첨예한 쟁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설립되는 노동조합이라면 설립신고서에 주된 사무소 소재지를 특정하기 어려워 집 주소나,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의 주소를 기입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다. 나중에 사무실이 확보되면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변경하면 된다. 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을 만든 이후 변경사항이 생긴 경우 그것을 신고하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문제는 아니니 일단 자택이나 근무지 등을 주소지로 기재하자.    

 

3. 조합원수

앞서 설명했지만, 노조는 2명만 있어도 설립이 가능하다. 그래서 2명 이상이면 그 숫자를 여기에 기재하면 된다. 당연히 설립신고 당시 확인된 조합원 수를 기재하는 것이 맞지만, 이후 조합원 수가 증가하거나 감소하면 변경신고를 하면 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합원 수만 기재하면 되고, 별도 명단은 첨부할 필요가 없다.     

 

4. 임원의 성명과 주소

노동조합의 임원은 아무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원칙적으로 전 조합원이 참여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만이 임원이 될 수 있다. 임원 구성 및 숫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은 없다. 대개는 노동조합 위원장, 노동조합 부위원장, 사무국장 이렇게 선출한다. 숫자는 노동조합으의 규모와 상황에 따라 달리 정할 수도 있다.      


5. 소속된 연합단체가 있는 경우에는 그 명칭     

6. 연합단체인 노동조합에 있어서는 그 구성노동단체의 명칭, 조합원수,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 및 임원의 성명ㆍ주소     

5, 6번의 경우는 상급단체에 가입한 경우에만 쓰면 된다. 만약 가입을 했다면, 아마도 상급단체를 통해 기입 방법을 문의하면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노동조합 규약도 잊지 말자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요건 중에 하나는 노동조합 규약도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조합의 운영과 관련된 규정집을 의미한다. 어떤 모임을 만들 때 규약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노동조합 규약은 노동조합의 체계, 운영방식, 회의방식, 결의 방식 등을 정한다. 

규약은 양이 꽤 많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노조 규약 샘플은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을 조금씩 수정해서 작성하면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한 가지 신경 쓸 부분은 '조합원의 가입범위'이다. 쉽게 말해 누가 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는지를 규약에 적어야 하는 것인데, 훗날 단체협약을 체결할 때 규약상 조합원 가입범위 외에는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없는 효과가 있으므로 나름 유의미한 항목이다. 전체 직원을 할 것인지, 직군별로 정할 것인지, 정규직만 가입하게 할 것인지 결정해서 신중하게 기입해야 한다. 



이렇게 설립신고서와 규약을 다 만들면 위에 기재한 노조 사무소의 관할 행정관청(대개 고용노동부 각 지방청)에 가서 설립신고서를 제출하거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민원정보 탭에서 온라인으로 접수하면 된다. 


접수 후 대개 3일이 지나면 설립신고서를 받을 수 있다. 이 3일은 토/일요일을 포함하기 때문에 금요일에 접수하면 월요일에 접수증을 받을 수 있다. 


이게 전부다. 설립신고증이 있으니 이제 어엿한 노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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