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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독기 Oct 24. 2021

도대체 MZ 노조가 뭔데?

태초에 블라인드가 있었다.

"아니, 요새 왜 여기저기서 MZ노조 얘기가 나오는 거야? 뭐 새로운 거라도 있나?”

이건 말투를 보면 알겠지만, MZ세대가 아닌 우리 회사 선배 부장님의 질문이다.

2021년초 신문과 뉴스에서 연일 ‘MZ세대 노동조합이 뜨고 있다’며 호들갑스럽게 보도하던 때다.

자연스레 우리 회사 MZ세대들도 노동조합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직원들의 요즘 분위기를 알고 싶으면 블라인드 앱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대부분 잘 알고 있듯이 Blind라는 앱은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다.

회사 직원 인증 절차를 거쳐야 가입이 되고,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철저히 익명이 보장된 상태로 자유로운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다.

기존에도 같은 회사 사람들끼리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은 존재했다.

하지만, ‘익명성’과 관련해 운영 주체에 대한 신뢰도가 극히 낮아 함부로 회사 뒷담화를 하기가 어려웠다.

블라인드는 그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한 덕에 출시 한 지 몇 년 만에 수 많은 직장인들이 

스마트폰에' 은밀히' 깔아놓는 필수 어플리케이션이 되었던 것이다.


블라인드 앱에서는 회사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오간다.

특히 회사에 대한 불만과 불평의 글은 차고도 넘치는 수준이다.

어느 회사에서는 블라인드 앱에서 오가는 회사 불만을 정리하다가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블라인드 앱에 오르내리는지 짐작할만하다. 


우리 회사  블라인드에서도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복리후생을 폐지한대, 우리도 노조가 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회사가 올해 성과급을 하나도 안준대. 임원들은 몇십프로씩 인센티브를 준다는데,

우리도 노조가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작년에 안좋은 일로 회사에 찍혔는데, 올해 지방 발령을 보낸다고 하네.. 노조가 있었어도 이랬을까?’ 등등


회사에 대한 불만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으로 언급되는 글들은 거의 매일 올라온다.

상당수의 글이 ‘기승전노동조합’인 셈이다.


아직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가 늘 핫하다.

그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노동조합이 가야할 방향, 어떤 노동조합이 되면 좋겠다 등등

눈치보지 않고 노동조합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펼친다.

다른 회사의 친구들, 후배들에게 분위기를 물어보더라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중요한 점은 이 블라인드를 이용하는 대부분이 20~30대 직장인들이라는 것이다.

블라인드에서 오고가는 많은 대화들은 MZ세대가 주도하고 있고,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도 MZ세대가 먼저 이야기한다.

설령 40대, 50대 직장인이라 하더라도 블라인드에서는 MZ세대의 언어와 소통방식으로 글을 쓰고, MZ세대의 관심사에 편승하는 모습이다.(만약 라떼 좋아하는 꼰대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집중포화를 받고 회원 탈퇴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로도 블라인드에서 시작해 노조를 만든 여러 사례를 보면 노조 설립을 주도한 사람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MZ세대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처럼 최근 일련의 MZ세대 노조 설립 사례를 보면 거의 블라인드(블라이드에서 시작해 카카오오픈채팅, 네이버밴드/카페로 옮기기도 한다)를 통해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별도의 온라인 모임을 만들어 실제 노동조합으로 발전하는 공통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블라인드가 노조 조직률 상승의 1등 공신이다 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동조합은 기존 노동조합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문가들돠 언론들은 이들을 어떻게 특징지우고 있을까? 과연 그 분석은 맞는 걸까?

노동조합에 관심이 있는 MZ세대라면 지금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야하는지 먼저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부터 MZ세대 노조에 대해 파해쳐보자.        


언론이 규정하는 'MZ세대 노동조합의 4가지 특징'


MZ세대 노동조합이 잇따라 설립되자, 언론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노동조합의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이들을 분석하고 보도했다.

그 동안 MZ세대 노조에 대한 보도 내용을 정리해보니, MZ세대 노조의 특징은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80년대~90년대생이 주축이 된 젊은 노동조합이라고 한다.

MZ세대 노동조합이니 그럴 수 밖에 없지만, 과거와 달리 젊은 직원들이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 이색적이라는 의미같다. 전문가들은 젊은세대의 노동운동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과거 투쟁적인 이미지, 과격한 노동조합의 모습에 더 이상 호응하는 세대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중장년층이 정년퇴임을 하게 되면 앞으로 노동운동은 위축되거나 하향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민주노총, 한국노총에서도 기성 조합원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어떻게하면 젊은 세대 조합원으로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들에게는 느닷없는 MZ세대 노조의 등장이 신선한 충격이자 의미있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둘째는 생산직 노조와 다른 사무직 노동조합이라는 점이 특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은 전통적으로 제조업 중심의 생산직 근로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제조업이 아니더라도 서비스, 건설, 운수, 배송업 등에서 실제로 이를 수행하는 현장직 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하는 MZ세대 노동조합은 사무직 그것도 정규직 근로자들인 경우가 많다. 그 배경으로는 현장직 근로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회사와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및 근로조건을 협의하지만, 노조가 없는 사무직 근로자들은 일방적인 회사의 통보에 의해 근로조건이 결정되었다는 점 때문에 심각한 불공정성을 느껴 노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런 불만을 꾹꾹 눌러 참아왔지만, 블라인드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이것을 공론화하면서 노동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셋째는 민주노총, 한국노총과는 선을 긋는 자생적 노동조합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자동차 업체인 H기업의 사무직 노동조합이 상급단체와 연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기자들은 MZ세대 노조의 새로운 특징으로 부각시켰다. 물론 MZ세대 노조라 불리우는 다른 노동조합 중에는 민주노총 또는 한국노총에 소속된 노동조합도 많이 있다. 분명한 것은 상급단체에 소속된 MZ세대 노조 조차도 기성 노조의 투쟁양태, 운영방식, 노동운동에 대한 시각 등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당장은 노동조합 설립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언제든 상급노동조합과 결별을 고할수도 있는 것이 MZ노동조합으로 보는 것이다.  


넷째는 MZ노조가 기존 노조와 다르게 공정의 가치를 보다 중시한다고 강조한다.

반도체 기업인 H사에서 성과급 배분과 관련한 직원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회사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직원들에 대한 성과급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며, 성과급 산정방식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언론에서는 H기업이 크게 부각되었지만, 그런 파열음은 다른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했다. 언론들은 이것을 보고 MZ세대 노동조합은 그동안 문제삼지 않았던 것에 문제를 제기하며, 공정의 가치를 중시한다고 분석했다. 그 전에 일어났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도 엮어서 MZ세대는 무조건 적인 사회적 약자 보호가 아닌 자신들의 권리가 정당하게 보호받는 것을 더 중시하는 세대라면서 공정의 잣대가 MZ세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나는 MZ세대에 대한 이런 분석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80~90년대생이 주축이 된 젋은 세대의 근로자들이 주축이 되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은 사실과 다르다.


과거에도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던 주축들은 대부분 20대, 30대 근로자들이었다.

당시의 임금, 근로조건, 처우 등에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직원들을 모으고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다. MZ세대 노조의 특징을 단순히 젊은 사람들이 만든 노조로 보는 것은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기성 노조 조합원들이 고령화가 되면,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하는 주체의 연령이 낮아지게 되는 것일 뿐, 새로운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사무직 노동조합의 등장으로 규정짓는 것도 사실 달가운 분석은 아니다.

기성 노조에 대한 반발, 회사로부터의 소외 이런 점들 때문에 사무직만의 별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지만, 2011년 복수노조가 전면 허용됨에 따라 다수의 새로운 노조가 설립된 사실에 비추어보면, 이 역시 MZ세대 노조의 특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최근 급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 특수형태고용종사자들의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MZ세대 노조를 능가할 정도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 동안 참고 지내왔던 정규직 사무직군의 노동조합 설립이 이제 보다 본격화된 것 같다는 정도이며, 온라인 매체를 활용해 MZ세대들이 총대를 매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는 정도일 것 같다.


세번째,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선을 긋는 노동조합을 MZ세대 노조의 특징으로 꼽는다고 하는데, 실은 이런 기사는 경영계에서 참 좋아하는 류의 분석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강성노조, 견고한 노조인 한국노총, 민주노총에 우리 회사 노동조합이 소속된 것 자체를 매우 큰 부담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MZ세대도 그들과 선을 긋는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MZ세대 노동조합의 다수는 상급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다. 아무래도 처음 노조를 만들다 보니, 상급노동조합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상급노동조합과 연대하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낸 노동조합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MZ세대 노동조합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그 노동조합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어떤 노조든 처음부터 강성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투쟁일변도의 조합활동을 지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두렵고, 조합원들도 쉽게 투쟁을 결정하기 어려운 속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는 필요에 의해  투쟁의 수단으로 목표를 관철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장외에 나가서 머리에 띠를 두른채 투쟁 구호를 외치는 집회가 될 수도 있고, 대자보나 유인물을 통한 항의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MZ세대 노조는 투쟁을 싫어하고 기존 노조의 투쟁양태를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으리라는 분석은 너무 섣부르다. 아직 MZ노조는 시작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끝으로, MZ세대 노동조합은 공정의 가치를 중시한다라는 분석은 너무 지엽적이다.

역으로 물어보고 싶다. 과연 다른 노동조합은 공정의 가치를 무시하는가? 민주노총, 한국노총 그 어느 노조가 불공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불공정한 가치를 공정한 가치보다 우선하는가. 그렇지 않다.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공정의 잣대는 어디든 들이댈 수 있다. MZ세대만이 공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분석은 전제 자체가 틀린셈이다. 그러나 한가지 주목할 점은 과거 노동조합의 주요 설립 목적이었던 고용불안 열악한 근로조건을 격지 않는다 하더라도, 회사라는 조직 내에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부당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더이상 MZ세대는 참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당성을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그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하나로 내고 있다는 점 바로 그것이 MZ노조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보아야 한다. 공정의 문제 뿐만 아니다. 회사의 부당한 업무의 지시, 회사의 부당한 성과배분, 회사의 부당한 조직문화 등 '부당'에 대한 용기있는 움직임 그것은 '불공정'보다 더 넓은 의미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MZ노조를 어떠한 특성으로 규정지으려는 것에 대해 내가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보이는 이유는 이제 막 시작하는 MZ노조가 외부의 의견, 프레임에 갖히질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직 MZ세대 노동조합은 진행형이다. 그들의 노조가 어떤식으로 흘러갈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노동조합를 구성하는 MZ세대가 회사에서 마주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과 공감대를 갖게 될 지 스스로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MZ노조를 이해하려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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