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자살로 죽는 순간 이제 편해지고 싶다는 바람과 살고 싶다는 본능과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살아있다는 더 큰 고통을 끝내고 싶어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심리부검'에서는 상처와 고통의 '둔감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살자들은 왜 사는 동안의 우울과 절망에 대해서는 둔감화되지 않을까?
그건 아마 우울이나 스트레스의 초기 단계에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1차적인 부분부터 무뎌지기 때문일 거다.
마음이 무너지고 몸이 무너지고 이 과정이 연속되는 악순환이 시작되면 자신을 돌보는 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고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면 점차 단순한 일상도 버거워지고 사회적 관계도 단절된다.
둔감화로 느껴야 할 것(생리적 욕구)을 느낄 수 없고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것(아주 작은 소음이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예민하게 감각하면서 우울증의 지옥이 펼쳐진다. 새로운 고통들은 여러 방향으로 자살자를 압박한다.
실제로 정신적으로 짓눌린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기에 'depress'라는 지칭이 있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다.
자살 후에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려질 자살 후의 모습과 주변의 이야기도 자살을 두렵게 하고 자살자를 버티게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이 긍정적인 버팀이 아닌 경우도 많다. 고통은 오롯이 느끼고 심해지고 참고 참고 참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한계를 넘치게 되어 정말 허망하게 어느 순간 유서조차 없이 자살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을 예방하는 법은 하나다. 주변의 지극한 이해와 사랑, 정성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자살자는 숨 쉬듯이 '죽고 싶다'라고 느끼고 있으므로 일상생활의 영위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조력을 해줄 수 있는 주변이 없는 자살자들은 고통을 버티기 힘든 어느 순간이 되면 삶을 버린다.
이 방법은 가족이나 국가가 치료기간 내에 오래 책임지기 힘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에서 자살방지 상담전화를 해봤자 눈곱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해도 매일 죽는다 소리만 한다는 식으로 취급받기에 체념하고 혼자 있다가 죽고 만다.
자살자의 상태나 심리를 이해하고 돕는 일은 진지하기 죽고 싶다는 고민을 치열하게 겪어본 사람이 해야 맞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공감과 이해를 거친 위로를 줄 수 있는 누군가이다. 그래서 나는 우울의 연대에 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