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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Oct 06. 2022

어느 워킹맘과 워킹맘 예비군의 대화


”너도 빨리 애기 낳아~~
혼혈이니까 또 얼마나 예쁘겠어~
너네 혹시 딩크야?”


최근 재취업에 성공한 워킹맘 친구가 점심을 먹으며 말했다. 양가 부모님한테서도 듣지 않는 잔소리를 친구한테서 들을 줄이야.


“음… 딩크는 아닌데 그렇다고 또 당장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서. 아직 결혼한 지 2년도 안되기도 했고. 사실 우린 지금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거든. 근데 아기를 낳으면… 인생이 180도 바뀌잖아. 다시 무를 수도 없는 거고. 그런 거 생각하면 무섭기도 해서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


”그치… 근데 둘이서만 살면 그건 연애하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잖아. 자식이 생겨야 그때부터가 진짜 결혼의 시작이다? 아기를 낳아야 그때부터 진정한 가족이 됐구나 이런 기분이 든다구. ”


“그래? 연애 때랑 비슷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주민등록등본에 이름 같이 찍혀 나오는 거 보면 이제 빼박 가족이구나~ 싶던데 난. 하하“


“그래도 다르지~~ 암튼 너 아기 낳을 생각 있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


“그나저나 넌 취업하니까 어때?”


“오랜만에 사람도 만나고 구두도 신으니까 다시 살 것 같아. 회사 가는 게 너무 즐거운 거 있지.”


“아 진짜? 그 정도구나… 난 여전히 일하기 싫어 죽겠는데. “


”잘됐네. 그럼 빨리 애기나 낳아.“


”야, 요즘에 애기 낳는다고 일을 덜컥 그만둘 수 있냐. 어차피 육아휴직받았다가 애기 낳고 다시 복직할 텐데. “


”왜! 남편이 일하래? 넌 애기 키워야지. 남편이 너 먹여 살린다고 안 해?”


”난 누가 나 먹여 살려주는 거 싫어. 뭐라도 해서 돈 벌지 않으면 나 스스로가 못 견딜 듯.“


”야, 누군 일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하겠냐. 애 낳으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어 진짜. 정말 아~~무것도 못해.“


”그래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찾을 것 같은데 난.“


”야, 진짜 거짓말 아니고 육아는 장난이 아니야. 아~~무것도 못해.”


“애 낳으라면서 너 얘기 들으니까 점점 애기 낳기 싫어진다.”


친구와 헤어진 후에도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우리의 결혼생활은 영영 진정한 결혼생활이 아닐까? 우리는 아직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가족이란 뭘까? 삼 개월 후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야, 넌 절대 애기 낳지 마. 진짜.”


”뭐야, 저번엔 빨리 낳으라며“


”몰라. 회사에 가도 힘들고 집에 가도 힘들고. 어디에도 쉴 곳이 없어. 너무 힘들어 죽겠어.“


“듣기만 해도 너무 힘들겠다. 아기 낳기 진짜 무서워.“


”야 진짜 낳지 마. 낳지마.“


“그래도 맞벌이하니까 형편은 좀 나아지지 않았어?“


”야, 나아지기는 무슨, 여기저기 쓰고 나면 남는 거 하나도 없어.“


”이모님비가 많이 들어가지? 넌 이모님 얼마 드려?“


“나? 130?”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데리고만 오시는 거 아냐?? 130? 집안일은 안 해주시는 거지?”


“응. 집안일은 안 해주시고 그냥 아침에 2시간, 저녁에 3시간 도합 5시간 일하시고 130 드리지. 그래도 우리 이모님은 놀이터 가서 애기랑 같이 놀아주시긴 하셔“


“와… 진짜 비싸구나. 그래도 살림살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어?”


“넉넉하긴. 똑같애. 회사 다니니까 피곤해서 외식하는 횟수가 느니까 돈 들고, 옷도 아무거나 입을 수는 없으니까 그거 사느라 또 돈 들고. 별로 남는 게 없어. ”


“그렇구나…”


“몸은 몸대로 힘들고. 돈은 안남고. 정말 힘들다. 진짜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될 텐데. “


대화는 결국 평생 지겹게 듣던 ‘돈이 웬수다’로 귀결되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웬만해서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주의자인데, 출산에 대해서는 도저히 결단이 서지 않는다. 내 결단이 내 인생뿐 아니라 한 생명에게 온전히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면 신중하고 또 신중해진다. 하지만 남편을 닮은 아이는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귀여울 것 같다. 한 편에선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 하고, 한 편에선 바보라 한다. 이 고민의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남편과의 길고 긴 대화도 필요할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데, 나는 지금 가장 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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