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호구’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동네북’이나.
피해 주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했는데 당연한 듯 여길 때,
불친절이 싫어서 친절했는데 온통 구제불능일 때.
뒤늦게 화를 내거나 날을 세우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 받아들이게 된다.
여기서는 내가 호구구나 하고.
최근에 한 친구는 해오던 일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새 출발을 했다. 모든 것이 낯설다 보니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온갖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친구는 뒤늦게 형세를 역전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는 것 같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며칠 전 조카랑 있는데 내가 호구구나 싶었다. 아빠와 엄마 옆에 찹쌀떡처럼 붙어있다가도 부탁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 싫은 게 있으면 나에게, 심심하면 슬그머니 나에게 왔다.
처음엔 맑고 투명한 두 눈을 보면서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 하며 시커먼 나를 탓했는데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내가 더없이 사랑하는 게 들통났구나 하고.
호구가 됐다 싶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다음엔 이리 호락호락하지 않겠다며 전의를 다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 앞에서라면 별 수 없다.
조카에게 나는 언제든 부르고 싶고, 부를 수 있는 호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