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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스 Feb 29. 2024

17. 아파트 사전점검

김선임은 어떻게 대표님이 되었을까?


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입주일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경우 대부분 후분양을 하기 때문에 청약당시에는 우리 집을 보지도 못하고 계약을 하게 된다.

건설사에서는 땅만 사놓고 대충 펜스를 치고는 분양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큰돈을 주고 사지만 물건도 보지 못하고 사는 격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돕기 위해 청약 전에 모델하우스를 운영한다.

모델하우스에는 대표타입의 집을 지어놓는다.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침대와 조명 및 소품들로 꾸며 놓고 청약자들을 유혹한다.

‘네가 살 집이 이런 집이야. 너도 청약을 해봐. 이런 집에서 살 수 있어’

모델하우스야 전문 코디네이터가 붙어서 가구와 조명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썼기 때문에 예뻐 보이지만 실제로 집이 지어지고 가보면 뭔가 휑하다.

그것도 깔끔하게 휑하면 정말 다행이지. 보통은 아직 공사가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엉망진창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민간분양의 경우에는 일단 분양사의 이미지도 있고, 실상 분양가에 마진을 더 붙였기 때문에 일명 준공청소라는 것을 좀 더 신경 써서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공공분양의 경우 큰 마진 없이 주택을 공급하는 거라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고 보면 된다.


SH공사로부터 우편물을 받게 된다.

[귀하를 초대합니다!]

“뭐야뭐야뭐야, 우리 집 벌써 다 지은 거야?”

“그런가봐 와서 보라고 초대장도 보내주네.”

“꺅~~~ 설렌다.”

“난 마곡사랑이라는 카페도 가입했어.”

“오 진짜? 그런 카페도 있구나.”

우리는 첫 새 아파트를 보게 될 마음에 한껏 들떠 있었다.

“차를 가져갈까?”

“아냐 내가 카페를 보니까 그날 9호선 마곡나루역이 임시운영한대”

“진짜? 그런데 6단지는 마곡나루역에서 살짝 거리가 있잖아. 신방화역이 가깝던데”

“아 그래서 입대위에서 임시로 마을버스 같은 미니버스를 운영한대”

“진짜? 이야 아파트가 크니까 그렇게도 하는구나. 다수의 힘이 크긴 하다.”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와서 집 앞에 있는 신방화역에서 9호선을 타고 마곡나루역으로 향했다.

추후에는 마곡나루역도 급행이 운영될 거라고 했는데, 아직은 이용객이 없어 무정차로 운영 중이었으며, 당일에만 일반열차가 운영된다고 했다.


사전점검을 가는 지하철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난 서울에서 살았지만 강서 쪽에 연고가 없어서 이쪽에 와본 적도 별로 없고 지리도 잘 몰라.”

“나도 그래. 나야 지방 사람이라 서울 어딘 들 알까? 그냥 맨날 다니는 강남만 좀 알지. 전에 여의도에서 일할 때 마포 아현동에서도 잠깐 살긴 했지만, 집회사 집회사 그래서 거기도 잘 몰라. 더군다나 지금은 거기 재개발돼서 아파트가 들어서 내가 살던 때랑은 완전 달라졌지.”

와이프가 살던 아현동에 세워진 아파트가 그 유명한 마래푸(마포래미안푸르지오)였다.

“아 맞다. 전에 친구 중에 중학교 때 가양동으로 이사 간 친구가 있었어. 가양동도 강서 맞잖아?”

“맞아. 가양동은 강서에서도 초입이지.”

“그때 그 친구네 집에서 라면도 많이 끓여 먹곤 했는데. 기억났다. 130번. 그래 130번 버스였어. 신촌에서 그 버스 타고 갔었어. 기억에 한 40분 정도 걸렸던 거 같아. 성산대교 쪽에 차가 항상 막혀서 좀 걸리긴 했어. 가양 몇 단지라고 했는데 정확히는 기억 안 난다. 여하튼 겨울에 창문 열면 강바람이 엄청 매서웠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가양동에 있는 임대아파트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작은 구조에 안방과 작은방 그리고 화장실이 다인 초소형 아파트였다. 

뭐 내가 살던 집도 그리 큰 집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파트지 않은가. 

웃풍도 없고 집이 아늑하고 좋았다. 

중앙난방이라 겨울에도 오히려 더워서 메리야스만 입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버스를 타면 주변에는 허허벌판이었고, 버스는 각 단지들을 굽이굽이 돌아서 갔기 때문에 시간은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신도시다 보니 좀 으쓱하기도 하고 통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좀 껄렁껄렁한 아이들이 많았다.

이때 당시 우리들도 시비가 여러 번 붙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친구는 거기서도 더 김포 쪽으로 들어가야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다.

‘당시만 해도 가양동도 먼데 거기서 더 들어간다고?’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의 목적지인 마곡나루역에 도착했다.

“와 진짜 금방 오네”

“그래서 9호선이 황금노선이잖아.”

“그런데 뭐야 지금 지하철 플랫폼이 여보랑 나밖에 없어.”

“우리가 너무 빨리 왔나?”
 “임시 운영이라 그런가봐”

“잘못온건 아니지? 일단 올라가 보자”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왔고, 올라와서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무것도 없는 흙길인데 그런 흙길 위에 지하철역만 있었다.

“대박. 지하철역과 저기 아파트밖에 없다.”
 “바닥도 흙길이야.”

“나중에 아스팔트는 깔리는 거지?”

“설마 그렇지 않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봉고차가 왔고, 그들은 우리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오늘 사전점검 오셨죠? 몇 단지세요?”

“6단지요.”

“얼른 타세요”

무슨 인력시장에서 일자리 배정받고 일하러 가는 느낌이다.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겠지’

우리는 작은 봉고차에 몸을 싣고 살짝 긴장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축하드립니다.”

“아 네. 운이 좋았습니다.”

“사전 점검 때 꼼꼼히 보세요. 건설사들 엉망으로 해 놓는 경우가 많아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참 내리시면 입주자회의 위임장 한 장 작성해 주시고 사은품도 받아 가세요. 카페도 가입하시구요.”

“카페는 이미 가입했습니다. 위임장은 어떤 건가요?”

“저희가 입주자대표회로 아파트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해야 하는데 공동으로 추진하는 부분이다 보니 건건이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리 저희가 대표로 아파트를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위임장을 받는 거예요.”

“아 그렇군요. 아파트를 위해 이렇게 앞장서 주시는데 당연히 아니 고맙게 제출해야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길은 포장이 아직 되지 않아 봉고차는 다른 입주민을 태우러 먼지를 날리며 다시 마곡나루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와 아파트 굉장히 크다”

“여기저기 놀이터도 있고 분수도 있고, 차를 마실 수 있게 테이블도 곳곳에 있네. 좋다.”

“일단 우리 집에 올라가 보자”

아파트 단지에는 아직은 완성되지 않아 아직 공사인부들이 돌아다니면서 나무를 심고 있었고, 그 사이를 입주민들이 바쁘게 자기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우리도 입주매니저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바닥이 상할 수 있으니 이거 신으세요.”

부직포로 된 덧버선을 나눠주었다.

‘그래 이제 우리 집인데 조심해서 밟아야지’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매니저는 문을 열어주고 덧버선을 나눠주고 [고쳐주세요]라고 쓰인 스티커를 몇 장 주고는 사라졌다. 아마도 같이 있으면 우리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다른 집들도 안내하느라 많이 바쁠 것이다.

덧버선을 신고는 조심조심 들어가는데 새집을 내 집을 본다는 기쁨은 잠시 우리는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게 된다.

“여보, 나 아파트 사전점검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이게 맞는 거야? 이렇게 지저분하게 하고 아파트를 준다고?

사전점검당시의 상태는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나 지저분하잖아. 아니 이건 집을 완성했다고 볼 수도 없어. 여기저기 어설프게 마감을 해놓고 참내”

“그러게 나도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거 스티커가 모자라겠는데?”

생애 첫 집이 아닌가?

그래서 더 꼼꼼하게 봤을까? 아니면 새집은 모두 그런 건지.

우리는 점점 실망감을 넘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고쳐주세요] 스티커는 이내 금방 소진이 되고 한참이나 모자랐다.

씩씩대면서 사전점검데스크로 가서 스티커를 더 가지러 갔다.

“스티커 좀 더 주세요. 주신 스티커로는 택도 없어요.

그리고 원래 청소를 해주시는 거 아닌가요?”

“네 고객님. 청소는 당연히 했죠. 해놓으면 뭐 합니까? 싱크대업자가 와서 톱질하고 타일업자가 와서 벽 뚫어놓고. 그러면 다시 먼지구더기예요.

입주 때 입주청소는 따로 하셔야 해요.”

“아니 돈이 한두 푼도 아닌데 입주청소를 저희가 해야 한다고요?”

“저희는 준공청소를 했는데 그게 맘에 들지 않으면 따로 입주청소를 해야지요.

그리고 사전점검기간에는 아직 완공이 아니라 계속 보수하는 통에 청소를 해도 소용없어요.”

그랬다.

사실 건설사입장에서는 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계속 보수 중이기 때문에 먼지가 떨어지고 바닥도 계속 밟고 다니니까 지저분할 수밖에 없다.

모든 스케줄을 맞출 수는 없으니까.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인데, 공공분양이거나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사전점검 시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건설사 입장에서도 아무래도 자기네 얼굴이고, 또한 홍보니까.

공공의 경우에는 크게 자기네 이름을 걸고 하는 게 아니니까 신경을 아무래도 덜 쓰는 것 같다. 최소한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추후에 서울에 사전점검을 갔을 때에는 정말 오늘 바로 이불 깔고 자도 될 만큼 깨끗했고, 스티커를 붙일 곳도 별로 없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물론 이 부분은 약간의 운도 있으리라.


[고쳐주세요] 스티커를 가지고 집으로 올라와서 스티커를 더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하자가 별로 없었으면 대충 하고 갔을 텐데, 워낙 하자가 많다 보니까 더 매의 눈을 하고 하자를 찾게 되더라.

그리하여 우리의 사전점검은 오후가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다.

한쪽에서 사전점검 하자접수를 받고 있었다.

우리도 하자를 접수하기 위해 대기를 했는데, 사람이 어마어마했고,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고 갔다.

“아니 씨x아 이걸 집이라고 지어놨냐?

멀쩡한 데가 하나도 없어.”

“입주 전까지 최대한 고쳐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

사실 공사업자 하나하나를 건설사에서 모두 컨트롤하기는 어렵다. 

그들도 이 공사 하나에만 올인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일정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건설사에서 잔금지급을 보류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는 고쳐놓기는 할 거다.

다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를 뿐.

그래서 건설사에서 하자접수를 받으면서 욕받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입주민을 진정시키려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접수해 봐야 크게 신경 써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은 대강의 상담만 받고 철수했다.

“너무 속상하다.”

“그러게. 이러다가 입주 전까지 다 못 고칠 거 같지?”

“이거 어디가 어떻게 문제다라고 설명하기도 힘들어.”

“그럼 우리가 잘하는 방식으로 하자.”

“어떻게?”

“PPT로 사진과 함께 정리하는 거지.”
 “오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잖아. 고치는 사람도 정확하게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우리는 며칠 뒤 다시 하자점검센터를 방문했다.

무려 A4 용지 130장을 들고서.

하자점검센터 직원이 우리가 내민 A4용지 묶음을 보면서 놀래서 말했다.

“헉! 이게 뭡니까?”

“네, 사실 저희가 하자 점검도 처음이고, 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고 사실 설명을 해도 하자 부분을 직접 보고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서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서 사진과 함께 설명을 적어서 왔습니다.

이 정도까지 했으니 꼭 입주 전까지 하자 수리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이 정도면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저희도 하자 부분을 알아보기 쉬울 거 같네요. 다만 노력은 하겠지만, 입주 전까지 반드시 고쳐 놓겠다고는 약속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수리하는 사항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작업자들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시간은 정해져 있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고쳐야 할 집이 너무나 많아서요.”

“네,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꼭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맞벌이세대라 주말이 아니면 하자 수리가 쉽지 않아서 그럽니다.”

“네, 사실 큰 하자들도 있지만 자잘한 하자도 많이 있네요. 이런 거는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돈이 한두 푼짜리도 아니고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잘 부탁드려요.”

“네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자기 집이었으면 그렇게 말했을까?

지들꺼 아니라고 막말하네’

그런데 실제로 살면서 수리를 하는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고 살다 보니 그런 자잘한 하자는 나중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또한 집에 누가 오는 게 싫어져서 따로 하자 수리를 받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잘한 하자로 인해서 매도할 때 큰 흠이 잡혀 가격을 후려쳐지게 되는 일도 없더라.

정말 그냥 처음 새집이었기에 내 마음이 그랬으리라.

그냥 너무나 소중했기에 그렇게 예민하게 굴었던 것 같다.

정말 사는 데는 그런 자잘한 하자들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첫사랑.

첫아이.

첫 집.

마곡집은 우리의 첫사랑, 첫아이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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