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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스 Mar 09. 2024

18. 입주

김선임은 어떻게 대표님이 되었을까?



“여보 우리 슬슬 짐 싸야지?”

“그치. 그런데 뭐 특별히 가져갈 것도 없어.

냉장고, 세탁기, 침대 빼면 뭐 없어.”

“이삿짐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하나?”

“뭔 이삿짐센터, 짐도 없는데. 나랑 기사아저씨랑 나르면 되지.

것도 대부분 내가 나르고 기사아저씨가 싣고 내려 주기만 하면 돼,”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이사가 쉬운 게 아냐”

“내가 타향살이가 얼마나 길었냐? 그러면서 차를 불러 본 적도 거의 없어.

여튼 이번에는 내가 잘 알아볼게. 용달 부르면 한 5만 원이면 될 거야”

나는 전에 짐이 얼마 없을 때에는 콜밴을 불러서 이사를 했던 적도 있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을 꺼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그사이 가격이 꽤 많이 올랐다.

전에는 같은 동네는 3만 원, 거리가 좀 있으면 5만 원이었는데 이제는 그 가격으로 용달을 부를 수는 없었다

최종으로 고심 끝에 그나마 좀 저렴한 곳에서 12만 원에 1톤 트럭을 맞췄다.

서초동에서 마곡까지 7만 원인데, 기사님께서 짐 나르는 것을 좀 도와주기로 하고 일당으로 5만 원을 드리기로 했다. 그래서 최종 금액은 12만 원.

내 기준에는 짐도 없는데 너무나 비싼 금액이었지만, 물가가 많이 올라 있어 방법이 없었다.


이삿날이 다가오자 우리는 퇴근 후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야 결혼을 하고 나서 와이프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와서 살고 있었기에 짐이 거의 없었다. 속옷 5장과 칫솔, 그리고 몇 가지 겉옷이 전부였다.

죽을 때 뭐 가지고 가는 건 아니지만 40년을 가까이 살았는데 참 초라한 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군대다 학교기숙사다 회사기숙사다 줄곳 밖으로만 돌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동이 용이하도록 짐을 최적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워낙 일만 하느라 주말도 없이 살았기에 크게 짐이 늘지도 않았다.

나야 짐이 별로 없어서 딱히 쌀 것이 없었고, 와이프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는데 말로만 그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여자 나이 30 중반이 넘어가도록 그 흔한 명품가방이 하나 없었다.

돈이 없는 것도 맞을 것이며, 부모님께서 그런 거 다 필요 없다고 수없이 말을 해서 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정말 한 개도 없다는 것이 의아했다.

아마도 와이프에게는 꿈이 있지 않았을까?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계속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그런 꿈이 있었으리라.

물론 나도 명품이라는 것은 사본 적도 살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형편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게 다였다.

감히 꿈을 꿀 수 없는 그런 형편.

회사 그룹 연수 때 받았던 루이까또즈 명함 지갑이 나에게는 가장 비싼 물품이었다.


이삿날은 주말에 잡고 싶었으나 비싸기도 했고, 약속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금요일을 택했고, 난 하나의 휴가라도 아끼려 집 근처에 있는 차움검진센터에서 아침 7시 30분에 건강검진 예약을 했다.

건강검진 후에는 바로 이삿짐을 날라야 하기 때문에 내시경은 비 수면으로 진행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나니 9시 반정도.

차움검진센터는 서초동집에서 도보권에 있어서 도보로 이동했다.

용달아저씨가 오셔서 이미 이삿짐을 싣으려고 준비 중에 있으셨다.

그런데 아저씨 표정이 좀 좋지 않았다.

일단 우리 집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2.5층이었고, 생각보다 짐이 많다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살던 집은 다가구주택으로 반지하에 집이 있어 애매하게 우리 집은 2.5층에 있었다.

건강검진으로 조금은 피곤한 생태였지만 나는 열심히 짐을 나르고 있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찾아왔다.

어머님과 나의 오랜 친구.

“어? 어떻게 된 거야?”

“아 어머님은 요 앞에서 만났어.”

“아니 못 온다더니 어떻게 왔어. 엄마는 왜 왔어?”

“아니 아들 이사한다는데 뭐라도 도와 주려고 왔지.”

“엄마. 엄마는 할 일 없어. 괜히 다쳐. 저녁에 전화할 테니 그냥 여기 앉아서 짐이나 싣는 거나 구경하다가 가요.”

“알았다. 난 짐을 나르려고 온건 아니고 이사하는 동안 짐이라도 지켜주려고 왔지.”

“네 고마워요. 친구야 와줘서 정말 고맙다. 회사도 빼고 온 거야?”

“그래 너 혼자 이사할 거 뻔히 아는데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짐이 많지는 않으니까 얼른 싣고 가서 짐 부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고맙다.”

생각지도 못한 친구의 등장으로 이사는 훨씬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 

그 덕분에 이사를 도와주기로 한 용달아저씨는 짐을 싣는 역할만 하였으며, 이삿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그러고서는 마지막에 1톤 트럭에 실을 수 없는 짐이었다며 추가로 돈을 요구하여 기분이 상하였지만, 좋은 날이니 기분 좋게 드리고 보냈다.

지나고 나서 보니 우리가 이사를 하면서 이사비용을 가장 적게 지출했던 이사였다.


띠리리링~

“여보세요?”

“아 트럭기사인데요. 여기 입주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우선 밥을 먹고 올 테니 입주증 받아놔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여보, 입주증이 뭐야? 그게 있어야 이삿짐이 들어갈 수 있나 봐?”

“아마 대출이 실행이 되었을 거고 잔금은 모두 납부되었을 텐데 관리사무실로 가보자.”

우리는 혹시나 무엇일 잘못되었을까 서둘러서 차를 몰아 관리사무실로 갔다.

여기저기 입주하는 사람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소장님 저희가 106동 1004호인데요. 오늘 입주예정인데 입주증은 어떻게 받을 수 있나요?”

“아네. 은행에서 완납증명서를 가지고 오시고, 선납예치금을 납부하시면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뭔 말인지 도통 모르지만 얼른 입주를 해야 하기에 시키는 대로 했다.

은행에 잔금 완납증명서를 요청하면 관리사무실로 팩스로 완납증명서를 보내준다.

그리고 선수관리비라고 해서 대략적으로 1달치 관리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증금의 형태로 납부해야 하는 관행이 있는 것 같다.

보통은 평당 1만 원으로 33평의 경우에는 33만 원이 국룰이다.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지만 하라는 대로 안 하면 열쇠를 주지 않는다고 하니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이후에 열쇠를 받아서 입주를 하였는데 아직도 여기저기 수리가 되지 않은 부분도 많이 있었고, 무엇보다 계속 하자 수리를 하면서 집안이 온통 먼지로 가득했다.

우리는 짐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일단은 짐을 집안에 넣어두고, 트럭 기사 아저씨를 보내고 청소를 시작했다.

집이 생각했던 것 보나 엄청 넓었다.

짐이 얼마 되지 않아 3시 정도에 끝난 이사는 청소로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친구야 오늘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이제 고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도저히 오늘 끝날 거 같지가 않다.”

“그래도 잠은 자야 하니까 안방하고 싱크대만 어떻게 해보자.”

7시쯤이 되니 어둑어둑해져서 도저히 더 진행하기는 어려웠다.

“친구야 더는 미안해서 안 되겠다. 고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여보, 여기 강서에 유림이라고 유명한 보신탕집이 있나 봐. 우리 시윤이 고생했는데 몸보신하러 가자.”

“그래 그래. 가자”

다행인 건 친구네 집도 발산역 근처였기에 유림에서 멀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밥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해야 하기에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갔다.

도착해서 가장 부드럽고 맛있는 수육으로 달렸다.

지금은 보신탕을 먹지는 않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고, 친구도 만족해했다.

밥을 먹고 나와보니 이미 날은 저물어서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배도 부르고 우리는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걸었다.

친구는 우리의 새집 장만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우리도 그 축하를 듣고 기분이 많이 좋아져 즐겁게 걸었다.

그렇게 긴 하루는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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