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하는 휴직 기간에는 워킹맘 시절이나 신생아 육아휴직 기간과는 비할 수 없이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시간의 소중함은 오히려 그때보다 절절히 느낀다. 하루 단위로 보면 내 손에 틀어쥔 시간이 많은데 기간으로 보면 끝이 있는 시한부이므로 이 하루 하루가 흘러가는 게 아쉽고, 내 시간을 활용하는 데 있어 상대적으로 거칠 것이 없다.
내가 지금 돈을 안 벌기 때문에 뭘 하든 비용 부분은 다소 신경쓰이는데, 어찌 보면 이런 제약이 나의 선택과 활동들을 좀더 본질적으로 만든다. 어차피 다시 벌 거니까 정말 하고 싶고 필요한 일에는 돈 문제로 망설이지 않지만, 애매한 쇼핑에 쓸 돈은 없다. 그런 욕구도 별로 생기지 않는다. 미술학원을 주 1회 갈것이냐 2회 갈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경제적 압박을 무시할 수 없어 1회만 다니는 식으로, 내가 원하지만 다소 절제하는 선택지도 있다.
또한 돌아갈 자리가 있으므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자기효능감에 대한 목마름이 없으며, (내 경우에는) 재테크나 세속적인 자기 계발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그저 이 1년간 쉬고 싶고, 아이를 위하고 싶고, 온전히 날 위해 시간을 사용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바가 이렇다 보니 아마 남들이 보기엔 심심한 1년이었을 것이다. '휴직했으니까 이걸 이뤄내야지!'가 아니라 '휴직했으니까 내가 원하는 삶에 충실해야지!'였다.
비록 내가 휴직 초기에 세웠던 장엄한 운동 계획은 흔적만 남은 고대유물처럼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옛 성 터에 오두막이라도 짓는 기분으로 약간이라도 운동을 하고자 신경쓰며 이런저런 생활을 쌓아나갔다. 알차게, 그러나 쫓기지 않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 토대 위에 만들어진 나의 일상은 아래와 같았다.
[학기중]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주2회는 병원에 가서 도수치료를 받고 2회는 줌으로 영어학원 수업을 듣고 1회는 미술학원에 갔다. 2학기에는 내가 듣던 영어 수업이 폐강되어 기쁘게 고정 스케줄을 하나 비웠다. 짬짬이 집을 치우고 장도 보고 글을 쓰기도 한다. 물론 넷플릭스에 빠져들거나 멍하니 폰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도 있다. 동네에서 사귀게 된 엄마들이나 친한 회사 동료들을 만나거나, 연락 끊긴지 한참 됐지만 여전히 가깝게 느껴지는 오랜 친구들에게 하나씩 연락해 넉넉한 시간을 들여 만나기도 했다.
이 소중한 오전 자유시간은 4~5시간 남짓으로, 금세 지나간다. 하교 시간이 되면 아이를 마중나가서 놀이터에서 노는 걸 지켜보다가 학원에 데려다준다.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동안 밥먹고, 빨래를 돌리거나 정리하고, 저녁 준비를 하고, 좀더 여유가 있으면 도서관에 가기도 하는데 아이의 학원 수업이 길어봤자 1시간 반이라서 여유롭진 않다. 가을에는 이 시간에 골프연습장에 가거나 가까운 하천의 산책로를 걷고는 했다.
아이 학원은 4시반에 모두 끝나므로 그 이후로는 쭉 아이와 함께다. 놀이터에서 6시반까지 노는 날이 흔하고, 그렇지 않을 땐 집에서 놀거나 외출을 한다. 물론 이비인후과, 치과, 안과, 정형외과 등 각종 병원에도 다닌다(애 키우다 보면 크게 아픈 데 없이 병원갈 일이 참 많다.).
해질녘에 집에 들어와 같이 저녁밥을 먹고 늦어도 8시부터 숙제를 하는데, 집중하면 40분 내로 끝날게 분명하지만 초1 남아는 언제나 발사 직전의 새총 같아서 자꾸만 책상에서 뛰쳐나가거나 책상에 고개를 박아버리기 때문에 한시간 반씩 걸릴 때도 종종 있다. 그 후에 씻고, 같이 이야기 좀 하다보면 금세 잘 시간이다.
휴직중에도 일할 때와 똑같이 열한 시면 피곤에 겨워 잠드는 나에게 남편은 부업이라도 하냐며 의아해했다. 이 정도 생활도 꽤 숨가쁘답니다. 어린이라는 생물은 체력이 좋고 상당히 디맨딩해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다. 정말 무척 사랑하지만.
[방학]
겨울방학이 되자 아이의 오전 스케줄은 태권도 특강과 학교 방과후 수업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버렸다(여름방학 때는 방학기간을 꽉 채워 여행을 다녀오느라 방학 일상이랄 게 없었다.). 게다가 학교 방과후수업은 2월엔 수업이 없어서 나의 오전 자유시간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여유로운 방학을 보낼 생각이었기에 아이가 원하는 태권도 특강과 여행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다.
학교 앞 놀이터에는 거의 늘 또래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아이는 추운 겨울에도 많이 뛰어 놀았다. 그외에는 함께 도서관에 자주 갔다. 가서 책을 제대로 안 읽더라도 도서관 가는 걸 즐겁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가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를 차지한다든지, 도서관 내 식당에서 라면이나 핫도그 같은 간식을 사먹는다든지, 도서관 뒷편 놀이터에서 철봉 매달리기를 하며 실컷 논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 말고 나의 경우에는 복직하면 당분간 그림 그릴 시간이 없겠단 생각이 들어 아이가 태권도 특강에 가있는 동안 주 2회 미술학원에 다녔다. 학기 중에는 시간이 더 많은데도 주 1회만 다녔는데, 복직이 가까워지자 돈을 더 들여서 더 많은 시간을 취미에 투입하고 싶었다.
별 거 아니지만, 복직하면 못하는 일들.
휴직 중의 대략적인 일상을 정리해보니 참 심플하다. 처음엔 이런저런 욕심도 부렸었지만 결국은 나의 체력과 적성에 맞는 루틴을 찾아 일상을 구성했더랬다.
뭔가를 이뤄내야 하거나 멈출 틈 없이 살아내야 하는 하루하루가 아니었다. 넓게 흐르는 물처럼, 갈 길을 가서 언제고 분명히 바다에 이르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신경쓰지 않는 그런 여유로운 리듬이 참 좋았다. '시간을 짜내서'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함께하고 언제든 마중나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살아보니 딱 이 정도 바쁘고 이 정도 여유있는 일상이 내가 원하던 삶의 모습이었고, 그런 삶을 겪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걸 다시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