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약 7년 반동안 내 삶의 모든 장면에서 나의 생각과 행동은 아이를 중심에 두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아이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회식을 갈 때도 아이 봐줄 사람을 정하는 게 우선인 식으로 아이와 함께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아이는 나와 분리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한숨 돌린 느낌이 들지만, 여전히 이 아이가 내 삶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영유아기는 지나갔고 이렇게 점점 커나가서 우리의 삶이 분리될 순간이 오리라는 숙명적 미래를 문득문득 엿볼 수 있는 때가 됐다. 이전에는 그런 미래가 보일 만큼 고개를 들어 올릴 새가 없었다. 모든 엄마가 이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나의 주변 상황이나 나라는 인간의 체력, 정신력의 모양새가 그러했다. 한 번에 여러 가지를 신경 쓰기 어렵다.
이 겨울방학이 지나면 복직이고, 복직하면 당분간은 그간 말아먹은 내 커리어도 복구시켜야 될 테고, 아이도 어쩔 수 없이 지금보다는 자기 뒤치다꺼리를 자립적으로 해결해야 할 테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최소 대입까지, 11년 정도는 나의 역할이 남아있긴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내가 할 몫이 많이 줄어들겠지. 물론 앞으로 점점 양육에서 교육으로 포커스가 이동하는 것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신경 쓸 일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독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의 내 삶에서 아이를 제외하고 보면, 내 인생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나는 특별히 원하거나 욕심내는 목표가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은 성실하게 하고, 학생 내지 직장인으로서 달성하는 단기적인 목표들과 기울이는 노력들과 느끼는 보람은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불타는 흥미로 인하여 유의미한 시간, 돈, 체력을 바치고픈 활동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내가 싫지 않다. 나는 대체로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자본주의가 만든 함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네 길을 찾으라든지, 자기 계발을 계속해야 한다든지, 미라클 모닝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별 가치를 부여하지 않아 왔다.
하지만 근 7년여간 나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육아가 이제 절정은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 크고 중요한 것이 사그라들고 나면 나의 삶은 무엇일까-라는 성찰을 해 보게 된다.
말하자면, 아이 이야기를 안 한다면 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할까? 아이와 별도로 내가 가진 콘텐츠는 뭐지? 일 얘기를 할 수도 있고, 가정에서 겪는 일들을 말할 수도 있고, 취미로 즐기는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등에 대해 어설프게 장단을 맞춰 이야기할 수는 있다. 허리와 목의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행 이야기를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만큼 기꺼이, 넘쳐나는 내용으로,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는 아닌 것 같다.
아이에게 기울이던 시간이 조금 남게 되면 나는 그 시간에 뭘 할까? 휴직한 중에는 아무래도 회사 다닐 때보다 시간이 많으니까 미술을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혼자 글 쓰는 시간을 가지고, 썩 좋아하진 않지만 골프연습도 다니고, 도수치료를 꾸준히 다니고, 얼굴 본 지 오래된 아끼는 친구들을 만나러 시간 내어 찾아가기도 했다. 언젠가 머지않은 미래에 아이에게 쏟던 공력을 좀 덜 쓰게 된다 쳐도,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여가 활동들은 저 정도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심심한대로 만족스러운 여가이고 삶이다.
다만 나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는 회사에서 더 커리어를 발전시켜서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든지, 학위를 추가로 받고 싶다든지, 자격증을 따고 싶다든지, 영어로 비즈니스 미팅이 자유자재가 될 만큼 제대로 영어를 파 들어가겠다든지 하는 진취적인 목표가 생기지를 않는데 사회인으로서 남은 약 20년을 이렇게 지내도 될지 걱정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매일 열심히 일하는데 거기에 가욋일까지 커리어 관련으로 꼭 애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노력을 존중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쪽으로 동력이 생기지를 않는다.
몇 년이 지나 아이가 나보다 키고 크고 힘이 세지고 지식이 많아지는 날이 와도 나는 아이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지만, 나를 덜 필요로 하겠지. 한 발짝 떨어진 나의 사랑과 관심은 힘이 되겠지만 내 시간을 쏟을 일은 점점 없어지겠지. 그때 남겨지는 온전한 나 자신이 혼자서는 심심한 절름발이가 아니도록, 뭔가를 쌓아 올려야 한다는 약간의 압박감이 느껴진다. 그것이 꼭 세속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지표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홀로 충실할 수 있는 시간, 독립적 개체가 되어가는 아이의 인격적인 성장과 성숙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는 내 나름의 발전의 시간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