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다음 방학이 걱정이야

by 민주

아들의 초1 겨울방학이 목전에 다가왔다. 지난 여름방학엔 함께 발리로 긴 여행을 떠났고, 다가오는 겨울방학은 내가 아직 휴직 중이니 본인이 원하는 태권도 특강 정도만 추가로 등록시키고 여유롭게 보낼 작정인데, 2학년 방학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 엄마는 복직해야 한다구.

학기 중에는 큰 문제없이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애가 아프다든지 하는 특별한 상황은 별개로 두고, 일상을 보낼 방안은 그림이 나온다. 문제는 방학이다. 참고 삼아 주5일 수업하면서 점심을 주는 방학특강을 알아보니 오전 10시~오후 3시라 등하원 전후로 시간이 꽤 남는데, 그나마도 겨울방학의 절반 정도만 커버된다. 학원비가 100만 원에 달하는 건 여러 문제점 중에 사소한 부분일 정도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결국 조부모의 절대적인 희생 없이 방학을 커버할 수 있는 건 공적영역의 돌봄시스템 뿐이다. 내 기준으로는 아이가 재학 중인 초등학교의 돌봄교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우리동네키움센터, 구립 복지관의 방과후교실 이렇게 3군데가 그에 해당한다. (이모님 고용도 생각해 봤지만 경제적 부담도 크거니와 시스템이 아닌 개인, 그것도 생판 남에게 의지한다는 게 상당히 불안정하게 여겨졌다.)

가까운 키움센터에 온라인상으로 대기를 걸어두고 통화를 해보니 빠지는 애들이 거의 없어서 대기자가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했다. 그러면서 곧 개소 예정인 인근 키움센터도 알아보라고 조언을 해주셨는데, 지도를 검색해 보니 학교에서 출발해서 도보 18분이 걸리고 그 와중에 6차선 길도 건너야 하는 위치였다. 어른 입장에서는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8살에게는 (9살에게도) 의미가 없다. 구립 방과후교실에도 대기를 걸었는데 복직 전에 순서가 올 지 모르겠다.

학교 돌봄교실의 경우 1학년 신입생을 우선 선발한 뒤 남는 자리에 2학년을 추첨으로 뽑고 3학년 이상은 사실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어느 학교든 '1학년 우선'이라는 원칙은 공통적인 것 같다.). 오후 3시까지는 반드시 출석 상태가 유지되어야 하며 한 번 하교하면 돌아올 수 없다. 이런 출석조건은 다른 학교와 비교해 볼 때 꽤 엄격한 편이다. 이런 돌봄교실에 들어가려면 일단 추첨 선발의 행운이 따라줘야 하며 감사하게 당첨될 경우 학원 스케줄을 전부 뒤집어엎어야 하는데, 2월에 돌봄교실의 당락이 나오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결과가 나오면 이미 새학년 직전이므로 긴급하게 모든 계획을 수립 및 실천해야 한다. 휴직시기가 같은 회사 동료 중에는 돌봄에 떨어져서 실제로 복직을 미룬 케이스도 있었다.


대체 우리 회사 동기들은 애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키움센터나 돌봄교실 입소가 동네마다 난이도 차이가 있고 조부모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긴 하더라만은 사적인 해결책이나 당첨운이 없이도, 주5일 시터를 고용하는 부담을 지지 않아도 누구나 방학 걱정 없이 맞벌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육아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과업이고 나라가 감사하게도 조금 도와주는 건데 내가 과한 꿈을 꿨던 것인가?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가 공적돌봄 영역에 들어가는 최선의 케이스라는 게 결국은 아침에 아이가 엄마 얼굴도 못 보고 등교한 뒤 해질녘까지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홀로 (또는 학원버스로) 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안 좋다. 돌봄교실의 확충이라는 국지적인 지원책도 나쁘지 않지만, 일반적인 회사들에서 유연근무를 비롯한 다양한 근무 형태가 활성화되는 것이 육아하는 부모들에게도 더 낫고 사회 전체적으로 다양한 근로자의 상황과 선택을 아우를 수 있기에 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돌봄의 공백, 특히 다음 해 방학을 염두에 두고 해결책을 고민하는 한편으로 초등 저학년이라면 조금쯤 게으르고 제 멋대로 노는 시간이 가득한 방학을 보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현실이 받쳐주지 못하지만, 사실은 평생에 걸쳐 이때 아니면 다시 누리기 어려운 긴 휴일이 아닌가. 나는 저 나이 때 그냥 놀았는데, 얘네는 그냥 노는 게 참 제한적이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어차피 돌봄교실의 모집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니까, 일단 우리 이번 겨울방학은 즐겁게 조금 나태하게 보내보자. 우리의 여름방학이 쨍한 바다와 하늘과 농구와 수영으로 가득 찬 것처럼, 겨울방학도 어떤 멋진 색채로 채워보자. 2학년 여름방학은, 2학년 때 고민하도록 해.



위의 글을 쓰고 두 달 후, 다행히 대기를 걸어둔 구립 방과후교실에 자리가 나서 한숨 돌렸다. 학교 돌봄교실에서도 교장선생님의 용단으로 2학년 신청자도 모두 받아주어 걱정과 달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입장이 되었다. 내 경우는 현재의 학원 스케줄을 유지하고 싶어서 최종적으로 구립 방과후를 선택했다. 그런데 나중에, 2학년 새학기가 되고 보니 학교 돌봄교실에서 하원 시 반드시 보호자가 서명 및 동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생겨서 맞벌이 학부모들에게 충격의 물결이 닥쳤다. 교육청 차원의 규제로, 동의서를 쓰고 나오는 식의 조건부 자율하원이라는 게 없고 자율하교를 하려면 돌봄교실이 문닫는 저녁 7시에는 가능하다고 한다. 몇몇 학원에서 돌봄교실에 들어가 애들을 픽업해 나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모든 학원이 그렇게 해주는 것은 아니고 모두가 돌봄에서 학원으로 직행하는 것도 아니니까 상당히 곤란하고 혼란스럽다. 워낙 원성이 자자하니 개선되리라 싶지만, 아이와 부모 입장을 고려해서 만든 제도는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돌봄교실에 맡기는 집은 대개 맞벌이일 텐데 보호자가 돌봄교실에 들어가서 싸인하고 애를 데리고 나올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남편과 이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며 '학원을 못 보내는 형편이면서 돌봄교실 문 닫을 때까지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는 사람만 이용하라'는 취지인가 싶었다. 정말 대체 이유가 뭘까. 정시 하교하거나, 돌봄교실 등록하지 않고 방과후 수업을 듣고 하교하는 학생들은 자율하교가 가능한데 돌봄교실 학생들은 혼자 하교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안전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이전 12화복직 100일 전의 스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