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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Mar 14. 2024

복직 100일 전의 스산함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맞이하여 올해 2월 말 시작된 나의 즐거운 휴직생활은 모든 행복한 일이 그러하듯 처음엔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2학기가 시작되자 절반이 꺾였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올해도 곧 끝난다는 필연과 함께 그 뒤로 닥쳐올 복직이 자꾸만 생각나서 때때로 우울감이 들 정도가 되었다. 사람이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이 끝날까 봐 공포를 느끼는 걸까? 아이들은 생각 없이 행복하던데, 보고 배워야 할 자질이다.  


 내년 3월 말쯤 복직을 생각하고 있으니 아직 100여 일 남은 셈이고, 만일 회사에 다니던 중에 100일의 휴가가 주어졌다면 내 텐션이 하늘을 찔렀을 텐데 지금은 울적해하는 걸 보면 상대적인 비교란 절대적인 무게를 가지는구나 싶다. 그리고 때때로 찾아드는 어둑한 기분에 '왜?'라고 자꾸 물어보고, 비슷한 여건에 있는 휴직자들에게도 물어보게 된다. 나는 복직 생각에 우울한데, 넌 어때?


 그렇게 나의 내면과, 또는 타인과 대화를 해본 내용은 대체로 이러하다. 일단 지금이 편안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게을러지는 것 같아서, 돈이 부족해서, 나의 삶이 너무 보조적으로 굴러가서, 등등의 이유로 영영 이렇게 지낼 수 없단 생각이 든다. 물론 한편에는 '이제 복직하고 싶다, 지금 생활이 나의 에너지 레벨에는 안 맞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는, '휴직이 내 적성이고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나...'라는 느낌으로 복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사실 다들 복직의 당위성이 먼저고 그 뒤에 근거를 찾아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복직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게 덜 아쉬우니까. 

 

 나는 살면서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편안했던 적이 처음인데 그와 동시에 시간에 쫓기는 기분, 커리어적으로 이룬 게 없고 앞으로도 못 이룰 거라는 열등감을 느낀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면 원래부터 직업적인 야심이나 목표는 없었던 인간인데, 그 점이 지금 이 시점에 갑자기 나의 치명적인 결점처럼 느껴진다. 우울이 우울을 불러온다. 복직하기 싫다는 우울함이 커리어에 대한 우울함으로 번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으로 현모양처를 썼다가 혼났었는데, 사실 그게 내 본질적인 모양새일 것이다. 현모양처라기보다는, 직업적인 욕심이 없고 평화와 평안에 굉장히 큰 가치를 부여하며 관심사가 제한적인 점. 그래서 돌이켜보면 그에 맞게 살아온 것 같은데 가끔씩 뭔가 더 이뤄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는 점에서 뭔가를 더 이룰 필요가 없는 삶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예를 들어 판사나 의사라면 어떨까? 직업의 타이틀만으로 굉장히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 것으로 여겨지는 그런 직업을 가지면, 삶의 일면이 영영 채워져 있는 걸까? 

(판사, 변호사, 의사, 한의사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맞아, 나는 00라서 커리어에 아쉬움이 없어. 고급 전문직 인생 최고'라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어떤 직종이든 그 시스템 안에서의 고난, 도전, 좌절, 시련, 노력이 있다. 피고용자로 일하는 친구는 '나는 조직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찌그러져 살고 있어'라고 하고, 개업한 친구는 '엄청 힘들지. 근데 생각해보니 인생은 어차피 괴로운 거야'라고 한다. 그래도 명예와 독립성을 갖췄다보니 직업 자체에 대한 회의는 덜 드는 점에서 상당히 나이스한 직업군이라 생각된다.)              


 나는 내 그릇이나 적성에 맞는 삶의 길을 잘 가고 있는데 그냥 남들이 말하는 멋진 직업, 커리어, 부 같은 것에 괜한 실체 없는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면 나는 특별히 어떤 직업을 강렬히 희망하거나 원한 적이 없으니까. 나는 직업뿐 아니라 게임을 비롯한 그 어떤 유흥이나 취미에도 미친 적이 없는 사람이니까, 그만큼 강렬한 중심이 없어서 때때로 나의 선택이 아니라 세상의 선택을 기준으로 내 부족함을 돌이켜보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직업적 성취를 피어 올릴만한 장작을 불태울 생각이 없는 나에겐 지금의 생활이 잘 맞다. 편안과 평화가 좋다. 사실은 더 나아가 풀타임근무 말고 단시간만 일하고 싶다. 일에 이 이상 뭘 투입하고 싶지 않다. 지금의 가정생활도 좋다. 불만도 있고 때로 다툼도 있지만 그 모든 걸 포함해서 충분히 좋다. 충분히 좋으면, 그게 바로 좋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뭔가 불안함과 아쉬움을 느낀다면, 사실 지금 내 삶에 부족한 건 이 부분이 아니라 다른 부분, 나에게만 충분히 좋은 삶을 사는 데서 그치는 삶이 정말 의미가 있는가 라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행복과 여유를 맛보니 비로소 나누는 삶에 대한 관심이 고개를 드는 것 같다. 아직은 그냥 막연한 수준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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