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에 사는 초1 아들 엄마

by 민주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아이의 성별, 나이, 성향과 우리가 사는 동네(의 분위기)가 나라는 사람의 인간관계, 하는 이야기, 고민거리 등등 내 정체성의 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초1 아들의 놀이터 생활을 지켜보다 보면 아무래도 우리 아이와 함께 뛰어노는 남자애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아이의 축구수업을 기다리다 보면 역시 같은 축구수업을 듣는 아들 엄마들과 안면을 트게 되고,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딱딱 알아듣는 티키타카가 있어서 좀 더 수월하게 친분을 만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이와는 별개로 나의 인간관계가 되기도 한다.

나는 당연히 십여 년 몸담은 회사에서 친해진 동료들, 특히 아이들 나이가 같아서 함께 어린이집을 다닌 엄마들과 편안하고 친하지만 동네에서 친해진 초1 아들 엄마들과는 또 다른 친근감이 있다. 같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놀이터에서, 축구장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아들을 뒀다는 핵심적인 공통점이 있어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걱정하는 부분,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 등이 비슷하다.


애가 뛰어노는 건 너무 좋은 일이긴 한데 저렇게 몸으로 놀다가 누구 다치게 하면 어쩌지, 본인이 다치면 어쩌지, 이렇게 놀다가 얘가 고학년 되면 앉아서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건가 등등. 초1 남자아이들은 아직 절제력이라는 게 거의 없고 흥분하면 액체가 기화될 때의 분자처럼 몸이 어딘가로 팡팡 튀려고 해서 아슬아슬하다. 미끄럼틀에서 뛰어내린다든지 높은 곳을 기어올라간다든지 하는 위험한 행동은 어찌나 금세 경쟁적으로 따라 하는지. 여기에 더해 형들의 거친 선진 문화를 갑자기 온몸으로 접하면서 게임, 유행어, 춤, 자기들만의 구호 등등을 파도처럼 쏟아내자 부모로서 나는 어디까지 지켜보고 어디부터 통제해야 하는지가 혼란스러웠다.


물론 욕을 하면 못하게 하고, 폭력적인 게임에 관심을 보이면 못하게 하고 등등 명확한 기준들도 있지만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아들이 놀이터에서 애들을 '야!!' 하고 불러대길래 친구한테 그런 식으로 부르지 말라고 하였으나 일단 남편부터 그게 왜 안되냐고 했고, 애들이 워낙 서로 ''하고 불러대고 아무렇지도 않아 해서 그 부분은 접었다. 내가 들었을 때 느껴지는 거친 뉘앙스가 있는데, 그게 개입해서 통제할 만큼의 수준인가 아닌가, 욕설도 아닌데 말투를 일일이 교정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의 문제였다. 게임도 아예 못하게 할 것이냐,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선별해서 유해하지 않은 게임은 일정한 울타리 안에서 즐기도록 할 것이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대응책이 있다. 그런 자잘한 일상의 선택들에 부딪치면서 나 자신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파트너로서 남편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초등 고학년이 되면 학군지로 이사 갈 것인가 라는 고민을 다들 어느 정도하고 있다. 이건 우리 동네 주민들이든, 회사 동료들이든 마찬가지이다. 내 주변에는 아마도 나와 큰 틀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대개 '아무래도 더 크면 학군지로 이사를 가야겠지? 그런데 정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고 고민하며 분명한 결정은 못 내리고 있다. 이 부분에서 학업 쪽으로 확실히 단호한 사람들이라면 나처럼 영유 문도 안 두드려보고,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를 보내면서 놀이터에 세 시간씩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즉, 내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학부모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이야기의 결이 맞는 사람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과 합치하는 분위기의 동네에서 살아야 내 가치관을 수월히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자마자 중학교를 고민하는 엄마가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얘기를 해보면 다들 그래서 놀라웠다. 지금 우리 아들 초등생활 너무 잘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그렇긴 한데 중학교는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자연스레 생각이 미치는 것이다.

아이가 클수록 00에 사는 00학교 0학년 아들/딸의 엄마,라는 신분이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나에 대한 이야기나 생각을 할 틈이 잘 없는 것이다. 그럴 때면 한편으로, 내 아들의 엄마라는 것이 참 좋지만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고유한 정체성도 잘 지켜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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