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축구

by 민주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영향인지, 원래 유소년기 남자애들이 축구에 끌릴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주변에 축구 소년들이 눈에 많이 띈다. 축구 유니폼을 교복처럼 입고 축구화를 신고 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1학년만 해도 한 무리가 있고, 하교 후엔 항상 학교 앞 축구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 대설주의보가 내린 날에도 빼곡한 눈을 맞으며 축구하는 소년들이 있을 정도다.


우리 아들은 6살 때 축구교실에 몇 달 다녔었는데, 수업시간이 40분으로 짧고 내용도 편안한 데다가 원피스를 입고 와서 수업듣는 여자애들이나 운동장에 난입하는 동생들, 힘들다고 중간에 주저앉거나 엄마한테 달려오는 애들까지 각양각색이라 그야말로 어린이 수업이었다.


그런 축구만 잠시 배웠던 아이가 카타르 월드컵을 보면서 축구선수를 꿈꾸고,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하길래 8살 2월에 동네 축구클럽에 등록시켰다. 그리고 이때부터 새로운 세계였다. 그 클럽에는 취미반과 육성반이 있었는데, 취미반은 자리가 통 안 나고 육성반은 빈자리가 몇 있길래 전화로 상담하니 육성반으로 등록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일단 수업시간이 2시간이 넘었다. 공식적으로는 2시간인데 2시간 반 이상으로 길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축구실력이 늘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은 확실히 늘겠다 싶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아주 옛날 정통 체육인 스타일이랄까, 엄하고 험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하기 싫으면 하지 마!''이런 패배자!' 등등, 요즘 세상에 충격적이기까지 한 언사에 얼이 빠졌는데 우리 아들을 포함해서 학생들이 다들 이 스타일에 아무렇지도 않게 적응하고, 이 축구클럽을 좋아했다.

2시간 넘게 외진 야외에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애들도 물론 힘들지만 혹서기와 혹한기에 그걸 보고 있는 부모들도 너무 힘이 들었다. 초겨울부터 이미 강변의 칼바람이 몰아치는데 우리 아들은 내가 차에 좀 가있겠다고 하면 '엄마, 가지 말고 이곳에서 나를 지켜봐 줘'라고 해서 자리도 못 피했다. 정말 뼈에 찬바람이 스며들어 온몸이 덜덜 떨리고, 집에 돌아와도 한동안 한기가 가시지를 않았다. 여러모로 이 클럽 애들이 다 같이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린 건가 싶었다.

축구클럽 관련해서 우리 아들의 충격적인 발언이 있었다. 이 클럽에 등록한 뒤 실내구장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클럽 한 군데에 더 등록했는데 한 달이 지나자 새로운 곳은 그만두고 싶다면서 '여기 감독님은 너무 너그러우셔서 애들이 자꾸 규칙을 안 따라서 싫어'라고 했다. 이건 학부모가 할 대사가 아닌가.

이러저러하여 그 축구클럽을 8살 연말까지 다녔고, 축구하는 동네 소년들을 많이 알게 됐다. 우리 아들은 축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선수는 안 하겠다고 마음을 바꿨는데, 나와 남편이 보기에 선수가 될 재목은 아니고 그 정도 열정도 아니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동네 축구 소년들을 보면, 축구에 진심인 아이들은 놀이 시간이 곧 축구 시간이다. 우리 아들이 어느 날은 축구를 하고, 어느 날은 곤충과 지렁이를 잡고, 또 어느 날은 술래잡기나 자전거 타기를 하는 반면 그 애들은 오로지 축구만 했다. 축구수업 횟수를 점차 늘려 주 3회씩 듣는 아이들도 여럿이었고, 부모들은 다음 스텝을 알아봤다. 이 동네에서 제일 실력 있는 축구클럽이 어디라든지, 거기 출신 중에 지방 축구 명문중학교로 진학한 애들이 여럿이라든지, 구립 유소년 fc가 초등 3학년 겨울방학에 입단 시험을 친다든지 하는 '동네 축구소년들이 밟는 초등 진로'가 있었다. 구단과 연계된 축구 명문 중학교들이 지방에 많이 있어서 지금 저기 뛰고 있는 누구네 형은 이번에 충남으로 중학교를 간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놀라웠다. 14살에 축구를 바라보고 집을 떠나 지방에 간다니, 우리 집에서는 '너 커서 방문 쾅 닫고 집에서 무례하게 굴면 기숙학교 가야 한다'라고 망태할아범처럼 언급하는 기숙학교에 제 발로 꿈을 찾아서 가는 애들이 가까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꿈에 투신한다고 해서 꼭 그 길에서 뜻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은, 그렇게 자기가 정한 목표에 열정을 바치고 노력하는 경험은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축구인 것과, 업으로서 축구를 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많은 초등학생들이 축구선수를 구체적으로 꿈꾼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기존 클럽을 그만두면서 새로 보낸 축구클럽은 아무리 봐도 취미반 수준인데 많은 부모님들이 수업시간 내내 망부석처럼 지켜보고 영상을 찍느라 바빠서 놀라웠다.


내가 보기에 초등 저학년 애들이 축구를 하고 놀면 명확하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하나씩 있다. 우선 좋은 점은 애가 정해진 곳에서 한눈에 보이게 논다는 점이다. 우리 아들은 땅을 파거나 술래잡기를 하거나 친구들과 비밀아지트를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놀다보니 내가 같이 나가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단지 내에서만 놀도록 주의를 줬고 이리저리 놀다가도 한 번씩 내가 있는 놀이터로 돌아오긴 하지만, 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었으면 싶을 때가 있다. 반면 축구소년들은 붙박이다. 학교 앞 잔디구장, 간혹 벗어나도 그 바로 옆 놀이터에 있다. 책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육아 관련 어느 책에서 읽기로 싸커맘(soccer mom)의 심리가 이런 것이라 한다. 애를 시각적으로 통제하려는 것. 실은 애들이 놀다 보면 모험이랍시고 돌아다니는 건 아주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험이 과장된 사회에서 살고 있어서 자꾸 애를 눈앞에 두고 싶어 한다.

한편 축구의 문제점은 애들이 사소하게 다치고 싸우고 우는 등 분쟁이 늘 일어난다는 점이다. 국제경기에서도 시시비비가 명확하지 않아 VAR 검증이 종종 등장하는 마당에 애들끼리 축구하는 데 얼마나 의견이 분분하겠는가. 룰에 대해 어설프게 알다 보니 오프사이드라든지 핸들링이라든지 스로인이네 아니네, 프리킥이네 골킥이네 등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아들은 이런 시비와 분쟁에 몇 번 휘말리더니 동네 애들 축구에 끼지 않으려 한다. 어른이 함께 플레이하거나, 같은 축구클럽에 다녀서 본인이 편하다고 느끼는 애들만 있을 때를 까다롭게 골라서 축구를 하려고 드니 평소에 축구할 일이 잘 없다. 감독님이 너그러우셔서 축구수업 그만 듣고 싶은 애니까 어쩔 수 없다. 통제되지 않는 상황이 싫은데 본인이 통제할 정도로 기가 세진 못하고, 그럼 혼자 리프팅 연습이라도 하라고 하면 그건 또 싫다고 한다.

그래도 축구를 하면서 알게 된 1학년 아이들의 엄마들과 내가 친해졌고, 우리 애가 주말을 기다려 아빠와 하고 싶은 활동이 있고, 축구 잘하려고 근육을 키우겠다고 하니 축구는 우리 가족에게 중요하고 좋은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도 대충 본 나에겐 우리 아들이 뛰는 축구 경기가 제일 집중이 잘 되고 스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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