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먹고 살기

by 민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을 차리는 일에 투입하는 시간과 노력이 늘어났다. 다양한 장보기 수단의 가격이나 질을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되고, 요리가 조금은 손에 더 익었다. 하지만 스테레오 타입으로서 '전업주부의 요리능력'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벤트로서의 요리 말고 매일매일 아이와 함께 적절히 먹고 살기 위한 요리에 필요한 건 수월함이었다. 두어 번 레시피를 따라 하면 그 뒤로는 혼자서 할 수 있을 정도로 조리과정이 간단하고, 재료도 간단하고, 치우기도 간단하고, 결과가 어느 정도 보장되며, 무엇보다 애가 상시적으로 잘 먹어야 한다. 그래서 그전에 가끔씩 시도하던 등갈비찜이라든지, 수육이라든지 하는 전후처리가 복잡한 요리들은 여전히 아주 특별한 이벤트이다.


우리 아들은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콩나물 무침은 안 먹고, 연어회를 간장 없이 먹고, 초1이지만 여전히 김치는 안 먹으며 산낙지와 문어숙회를 좋아하고, 된장국은 입에도 안 대는 등등 굉장히 자기주장이 강한 입맛을 소유했다. 지난번에 맛있게 먹은 음식을 오늘도 맛있게 먹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 녀석의 지극히 까다로운 입맛을 보다 보면 '난 임신했을 때도 너처럼은 안 살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결론은, 요리에 많은 공력을 투입하지 말고 안전한 음식들 위주로 준비하는 게 낫다.


온갖 정성과 노동력과 시간을 들인 음식을 애가 먹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처음부터 거절하거나 '이건 좀 별로'라는 진실된 피드백을 주면 아무래도 기운이 빠지고, 어떨 땐 화가 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나의 소중한 체력과 정신력을 좀 더 즐겁게 쓰기 위해서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요리 몇 가지만 직접 하고 나머지는 반찬가게와 냉동곰탕 등에 의지하고 있다. 사실은 이렇게만 해도 들어가는 공력과 시간이 상당하다. 장을 보는 것이 메타인지의 영역이라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향후 며칠간 가족들의 스케줄(남편이 집에서 저녁을 며칠이나 먹으려나?),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챙겨주고 싶은 영양소,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입맛, 현재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식재료, 최근 우리가 먹은 음식, 각 끼니와 간식별로 적절한 메뉴 등등 다양한 전후 정보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워서 메뉴와 쇼핑 품목을 정하고 품목별로 적정 가격과 양을 결정하고 때로는 결제수단까지 조절하는 아주 종합적인 두뇌활동이다.


이런저런 과정과 시도를 거쳐서 현재 정착한 나의 레퍼토리는 미역국, 김치찌개, 카레, 된장찌개, 콩나물, 시금치나물, 어묵볶음, 멸치볶음 정도이다. 그리고 생선이나 고기를 굽고 나머지는 자본주의 시장의 힘에 의지하고 있다. 스스로 요리하는 효용이나 기쁨은 확실히 있다. 내 취향껏 재료를 듬뿍 넣은 카레, 1++ 등급 소고기 국거리를 잔뜩 넣은 미역국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아들의 취향대로 마늘, 파 없이 참기름과 액젓과 깨만 들어간 콩나물무침도 어디서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렵지 않지만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기본 음식들을 익힌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옛날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처럼 이것저것 차려먹고 살려면 사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는 문제'가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장을 보거나, 부엌에서 재료를 다듬거나, 요리하거나, 치우거나 등등 끊임이 없는 활동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등학생 손주들을 봐주는 옆집 할머니는 애들한테 절대 바깥음식 안 먹이고 항상 직접 만들어 주신다는데, 매일 장을 보러 가시고 장을 맨날 봐도 먹을 게 마땅찮다고 하신다. 애들을 잘 먹인다는 게 그렇게 품이 드는 일이다.


복직하면 아무래도 요리에서 손을 떼고 거의 밥만 짓게 될 것 같다. 장보고 요리하고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그릇 정리하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밥을 먹기 위한' 가사활동은 퇴근하고 돌아와 모조리 처리하기엔 너무 고된 노동이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하루를 이야기하고 같이 산책이라도 하고 숙제도 봐주고, 나 자신의 쉼을 위해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간단한 요가라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너무 잡아먹게 될 것이다. 먹고 사는 일에 돈, 시간, 노동력 중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투입해서 어떤 식생활을 할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균형점을 찾아가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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