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생각한 것들

by 민주

우리 아들 학교 정문 바로 앞에는 어린이 공원이 있고 거기에 2개의 놀이터, 인조 잔디가 깔린 작은 멀티구장, 풀밭, 벤치 등등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이 하굣길에 가방을 내던지고 뛰어놀기 너무 좋은 환경이다.

나는 아이가 밖에서 실컷 놀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 내 육아휴직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지켜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들은 주중에 학원을 딱 2개 다녔기에 일정상 아예 못 노는 요일은 없었다. 다만 미세먼지, 폭염, 혹한, 폭우, 감기, 부상 등으로 못 놀게 될 때가 꽤 많았다. 특히 미세먼지는 언제 올진 모르지만 아무튼 꽤나 자주 닥치는 자연재해라 그냥 눈감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다.

놀이터에 같이 있는다 해도 내 역할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일 뿐, 평소에는 딱히 할 게 없다. 아이가 어떤 놀이에 끼고 싶은데 용기를 못 내는 것 같으면 '지금 저 형한테 물어보면 같이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는 형이잖아. 한 번 물어봐봐' 라며 속삭여주고, 아이가 놀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은 날은 집에 와서 그에 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오해하는 상황이 있으면 '엄마 생각엔 걔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이러이러해서 일이 그렇게 된 거 같아'라고 해설해 주는 정도로 아이를 격려할 뿐이었다. 5월쯤 돼서는 아이가 자기랑 맞는 놀이나 무리를 어느 정도 찾아가서 이런 격려의 순간도 많이 줄어들었다.


아이가 몇 살 때까지 엄마가 놀이터를 지키고 있어야 하느냐는 건 참 애매한 문제다. 나는 1학년 여름까지는 아이가 노는 내내 놀이터에 있었고, 2학기 부터는 어느 정도 지켜보다가 먼저 들어오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기미가 짙게 올라오고 비염이 심해졌지만, 우리 아들이 나를 등지고 세상에 나가는 걸음을 조용히 뒷받침해 줄 수 있어 좋았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친구를 세게 잡으면 안 되고,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면 안 되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안 되고, 놀이터 바닥을 굴러다니면 안 되고, 신발 벗고 축구를 하면 안 되고... 그런데 아이에게 내 마음에 거슬리는 걸 다 못하게 할 수는 없다. 스스로와 타인에게 위험한 것만 제지시켜야 하는데, 그것도 방식이나 정도가 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제지를 시키는 거고.

통제를 하려고 들면 끝이 없고, 이제 초등학생이니까 엄마 없이 놀면서 자기가 부딪치고 고쳐나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설사 다툼이 있더라도 저들끼리 싸우고 화해하고 좌절도 하면서 커나가는 과정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한데 뒤엉켜 놀다보면 사소한 사건, 사고가 잦은데 아이의 과한 행동을 놀이터 생활 초반에 잡아주지 않으면 '우리 애가 쟤랑 노는 건 좀 불편한데 어쩌지'의 '쟤'가 되어 버린다. 내 아이가 놀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아니면 다른 아이의 문제 행동에 휘말렸을 때 부모가 한켠에 있다가 자기 아이를 혼내는 등 상황을 수습해주면 쉽게 해결이 되고 애들도 잘 지내게 된다. 나 어릴 때는 어떤 초등학생의 부모도 놀이터에 나와 있지 않았지만 시절이 다르다. 그때는 폰게임도 유튜브도 없고 세상이 순박했으며 아이들끼리 놀다 다치고 때리고 하는 것에 둔감한 시대였다-그게 꼭 좋다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지금은 어린 아이들도 접할 수 있는 미디어가 끝도 없고, 서로간의 미숙함이 폭력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래서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놀도록 하되 필요할 때는 개입해줘야 하는 것이다. 말만 쉽다.


내가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에 사고 방지 말고 또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자면, 어떤 장소에서 어떤 친구들과 어떤 식으로 노는지를 직접 봄으로써 우리 아이의 모습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워낙 변화무쌍한지라 내가 복직한 이후에도 지금처럼 놀 거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전혀 감이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최소한 아이에 대한 추억으로라도 남겠지.


복직하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 굉장히 안타깝다. 2학년부터는 아이들이 엄마 없이 노는 경우도 잦고, 그게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집에 엄마가 있는데 동네 놀이터에서 노는 것과 엄마가 멀리 회사에 있는데 애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레이더를 세울 수 있거나 내가 아는 보호의 손길이 닿는 곳에 아이가 있었으면 한다. 이 무지렁이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매너와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보호본능을 무의식에 탑재할 때까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근무시간을 조금 앞당겨서 해지기 전에 돌아오고 엄마의 퇴근 후에 아이가 놀이터에 나가도록 하는 게 최선일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6시간 근무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생각이 들고, 더 나아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이 130세가 될 거라는 이 시대에 인간이 아직도 8시간의 정규근무를 해야만 사회의 생산성이 유지되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든다. 재택근무 가능 여부를 1순위로 두고 직장을 옮겨 다니는 친구도 있는데, 재택근무든 단축근무든 유연근무제도들이 더 단단히 뿌리내리기를 소망한다. 꼭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더 좋은 제도이고 충분히 실현가능한 제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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