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초반에 배운 것들 중 하나가 학교폭력을 포함한 각종 위험상황과 그 대응이었다. 장난과 폭력을 구분해야 한다는 점과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어른에게 말하기, 학폭위, 학교폭력 신고번호 등)을 배워와서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한동안 시시때때로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를 외쳐댔다. 누군가가 억지력을 행사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거부의사를 표시하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뜻이 담긴 간단하고 훌륭한 세 마디다. 우리 아들은 엄마가 밥을 남기지 말라고 해도, 숙제를 지금 해야 된다고 해도, 잠바를 벗지 말라고 해도 '싫어요! 안 돼요! 도와주세요~~!!!'를 외쳤다.
따돌림을 비롯한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현실과, 아직은 몸이 먼저 나갈 수 있는 아이들의 발달 수준을 고려할 때 폭력과 그에 대한 대응은 입학 초반에 배워야 할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부모들이 이맘때 아이들에게 열심히 교육시키는 것이 '남을 때리거나 아프게 하면 안 된다'일 것이다. 악의를 가지고 때리는 류의 폭력을 사용하는 아이는 잘 없다. 하지만 아직 미숙하다 보니 본인 입장에선 장난 내지 놀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폭력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아들처럼 몸으로 노는 걸 좋아하는 남자애들은 위험하다. 서로 쫓아다니고 밀치고 하면서 놀다보면 놀이로서 몸을 터치하는 것과 때리는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므로 염불 외듯이 '터치는 안된다' '술래잡기할 때도 세게 치는 건 안 된다' '실수로도 때리면 안 된다'라고 교육시키는 한편으로, 본인이 폭력의 대상자가 될 경우에 반드시 부모나 선생님에게 말하도록 교육시킨다.
그런 사회와 가정의 교육의 결과인지, 내가 동네에서 본 바로는 상당히 거친 남자애들도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을 때리지는 않는다. 놀리고 욕하고 서로 밀치고 하면서도 주먹을 휘두른다든지 하는 식의 명백한 폭력은 좀처럼 없다(물론 개개인이 '이건 장난이 아니라 폭력이야'라고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폭력은 많다.). 그리고 폭력에 대응하는 제도적 방식을 워낙 잘 배워서인지, 별거 아닌 일에 진지한 대응을 하고 싶어 해서 이러다 모든 일이 소송으로 통하는 미국처럼 되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한 번은 우리 아들과 자주 어울려 노는 무리 중 한 명이 친구가 자기를 때렸다고 경찰을 불렀다. 친구들끼리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놀다가 서로에게 나뭇가지를 던졌는데 여기에 맞았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신고가 들어왔으니 경찰은 출동했다. 거의 매일 함께 노는 친한 사이인 데다가 일방적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겉옷에 짤막한 나뭇가지가 맞은 거라 아프지 않을 텐데도 그랬다. 다행히 그 애 할머니가 소식을 듣고 오셔서 '이 정신 나간 놈이...' 하면서 끌고 가셔서 일단락됐는데, 그 애에게는 담임 선생님한테 이르는 거나 경찰에게 신고하는 거나 비슷한 일이었을 거다. 우리는 그날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같이 놀지 않았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 아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아이가 같이 방과후 체육 수업을 듣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축구, 농구 등을 할 때 태클을 심하게 걸고 억지로 공을 뺏어서 트러블이 자주 일어나고 그 애 때문에 매번 우는 애가 생긴다고 했다. 선생님한테 일러봐야 '00아, 그러면 안 된다'라고 말만 하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때리려는 듯이 손을 치켜올리거나 얼굴을 깨무는 척하는 동작도 자주 하는데 실제로 때리거나 문 적은 없다고 해서 교육 잘 받았네 싶었다. 들을수록 우리 아이가 왜 힘들어하는지는 알겠는데, 때리지는 않으면서 거칠게 구는 아이에 대한 대응책이라는 게 참 애매했다. 아이는 종알종알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에게 '엄마, 실제로 때리지는 않아도 계속해서 욕하거나 때리는 척 위협하는 것도 폭력이지?'라고 물었다.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럼 어서 학폭위를 열어달라는 게 아닌가. 그것도 폭력이긴 하지만 그런 일로 학폭위에 갈 생각은 없다는 걸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린이들은 아직 주의력이 부족해서 누구든 실수할 수 있고, 실수가 아니라해도 아직 배우는 과정에 있으니까 서로에게 개선의 기회를 줘야 한다,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가 선생님과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겠다고 넘어갔다.
폭력은 나쁜 것이다. 폭력을 용납지 않는 것도 당연히 좋다. 그러나 어린 나이부터 주입식으로 열심히 교육받은 아이들이 폭력을 억누르고 그 자리에 사랑과 관용을 채우는 게 아니라 '괴롭히더라도 때리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날 건드리면 경찰에 신고한다/학폭위를 열겠다'라는 미숙하고 형식적인 비폭력주의를 학습하는 건 아닌가 싶어 다소 우려스러웠다.
다행히 아직 우리 아들의 세계에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명백한 폭력'이 등장한 적은 없다. 그러나 '명백한 폭력'이 아니라 '이것도 사실은 폭력' 수준의 일이라도 당하는 입장에선 괴로운 법이다. '그만하라고 해도 계속 놀리고, 걔가 나보다 힘도 세고, 때리면 안 되고, 선생님한테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고, 학폭위도 안 되는 거면 나는 어떡해야 해?' 라며 억울해하는 아들에게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쫓아와도 무시하고, 선생님한테 계속 말씀드려'라고 말했지만 사실 크게 와닿는 조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가급적 그런 성향을 가진 아이를 피하고, 개개인이 가진 일종의 아우라와 면역을 키우는 수밖에 없는데 아직 아이는 이렇게 모호하며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당연하게도.
서로 즐겁게 장난치다 손이 세게 나가서 맞으면 실수라도 폭력이고 선생님들도 큰 일로 받아들이지만, 마주칠 때마다 놀리고 쫓아오고 은근히 괴롭히는 애한테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적어도 나의 평범한 두뇌와 감성으로는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폭력에 해당한다는 걸 다들 알지만, 아직은 물리적 폭력에만 최대한의 예민함으로 대응하는 사회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게 학교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런지라, 네가 가진 힘을 키우고 너는 바르게 행동하라는 것 이상의 조언을 해주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