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직장어린이집을 5년 꽉 채워 다니고 집 근처 학원도 다닌 적이 없어서 동네에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서(물론 날 닮았다) 초등학교 입학 후 적응하는 기간이 좀 힘들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었다. 어린이집에서 5년 차 때 비로소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다행히 입학 후에 아이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선생님이나 친구 엄마들이 해주는 말을 들어보면 무난하고 즐겁게 학교와 동네 생활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볼 땐 친구들한테 썩 살갑지 않고 친구 엄마들에게 인사도 데면데면하게 하고, 어제 같이 재밌게 놀았던 A가 놀자고 해도 다른 놀이를 하고 싶으면 딱 잘라 거절하고, 여럿이 함께 놀다가도 놀이 흐름에 뭔가 마음이 상하면 그냥 빠져나와서 움찔하게 될 때가 있다. 이런 모습들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원만한 인간관계에 애로가 생길까 걱정이 된다. 나의 불안을 전가시키고 싶진 않지만, 인간적인 예의는 갖춘 상태에서 수줍든지 제멋대로든지 해야 하니까 그냥 둘 수만은 없다. 그런데 내 개입이 지금 과도한가? 나는 이 아이가 본래 타고난 성격을 억압하는 건가? 이런 자기 검열의 마음도 든다.
친구들이랑 놀다가 그 놀이가 마음에 안 들 땐 '너랑 놀기 싫어'가 아니라 '나는 오늘은 다른 놀이하고 싶어서 다음에 보자'라고 말하고 빠져나와라,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인사를 해라, 인사는 상대방이 보거나 들을 수 있도록 분명하게 해라, 미안하거나 고맙단 말은 아끼지 말아라, 장난으로 한 행동이더라도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즉시 그만둬라, 기타 등등.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없을 땐 친구 엄마들에게 아주 다정하고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한다고 한다. 머리 잘랐냐고 아는 척도 했다고 한다. 그 집 남편도 며칠째 인지하지 못한 페디큐어에 대해 우리 아들이 코멘트해 줬다든지, 넉살 좋게 간식 나눠달라고 말을 붙였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내가 없는 곳에서 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내가 안 보는 시간도 있어야겠구나 싶었다. 내 앞이라서 더 쑥스럽거나, 내 앞이기에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말과 행동들도 있는 법이니까.
초등 입학 후 인간관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아들과 달리 나의 인간관계는 여전히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그마하다. 나는 회사 다닐 때도 일하며 얽히는 주변 사람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정도이지 인간관계를 적극적으로 넓히는 스타일이 아니고, 휴직을 해도 그런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사람 얼굴과 이름을 매칭해서 외우는 머리가 느린 편이다. 학교 앞에서 마주치는 엄마들을 그녀의 얼굴, 누구 엄마라는 정체성, 그 집 애가 어떤 애인지에 대한 정보까지 한데 모아 인지하는 데에 여러 번의 반복 학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번번이 누구 엄마시냐고 물어볼 순 없으니 그중 다행히 쉽게 안면이 익은 사람들 위주로, 나의 낯가리는 성격을 커버해 줄 만큼 살갑거나 공통의 화제가 초반부터 딱 있는 사람들 위주로 친해졌다.
결국 따로 만나 밥도 먹고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엄마들은 한 자리 수로 소박하게 자리 잡았다. 나처럼 휴직 중이거나 재취업 준비 중인 사람도 있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도 있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추가로 경매 공부를 하는 중이라는 사람도 있다. 노인 인구 폭발을 염두에 두고 사회복지사를 따놓았다는 사람도 있고, 수학이나 피아노 등을 가르쳤었는데 지금은 쉬고 있는 사람도 있다. 꼭 사회에서 말하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집안을 건사하느라 다들 자기 삶에 일종의 '업무'가 있다. 나에겐 회사가 업무와 돈벌이의 전부였는데, 다른 삶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친해진 한 줌의 사람들과 복직해도 종종 얼굴을 볼 수 있고, 내가 뭔가 도울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들도 학교에 입학한 올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 동네 주민이 된 것 같다. 평일 낮에 장을 보고, 걸어서 도서관에 가고, 하천 둘레길을 걷기도 하면서 회사 다니던 때에 비해 행동반경의 절대 거리는 좁아졌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확장되었다. 전에는 목적 위주의 포인트 간 이동을 했다면 이제는 동네 여기저기를 좀 더 깊이, 샅샅이, 시간을 두고 산책하듯 다니게 되었으니까. 애랑 집 근처 병원에 가는 걸 예로 들자면, 전에는 차에 애를 태우고 병원으로 퇴근해 진료를 받고 귀가했다면 이제는 함께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이 아파트엔 친구 누가 산다더라, 저 수풀에 친구들이랑 아지트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진료 끝나면 방금 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고 가자, 이런 이야기들을 하니까 전혀 다른 길이고 단순한 진료가 아니라 생활이 된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자기 동네에 금세 젖어들고 잘 지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길눈이 어둡고 내향적이며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나에게는 이렇게 동네에 안착할 수 있는 별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살아보니 동네가 훨씬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