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by 민주

휴직을 결정한 게 11월 말이었고, 그 뒤로는 업무적으로 바빠 휴직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가 이듬해 설 무렵이 되자 한숨 돌리며 휴직 중에 시간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1년이 내실 있을까. 일단 육아휴직의 본질에 맞춰 육아서적을 몇 권 읽었다. 그전부터 쌓아온 육아에 대한 고민, 소망, 이런저런 지식과 이론과 사례들에 책 몇 권을 얹고 1년 뒤 다시 맞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니 우선순위는 아이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는 단순한 일상, 즉 초등학교 6년간 굴릴 쳇바퀴를 만드는 것이다 싶었다. 그 일상은 아이답게 노는 생활에 약간의 자율적인 학습을 담고 있었으면 했다.

아이가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나자 대략의 규칙적인 일과가 갖춰졌다. 이상적이거나 짜임새 있는 아름다운 시간표가 아니라 그냥 우리 상황에 맞춘, 이 정도면 무리가 아닐 것 같고 아이에게도 풍요로운 일상. 우리 아들은 매일 4시 반이면 학원 등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그 뒤 6시 반까지 놀이터나 축구장에서 뛰어논 다음 저녁식사, 티브이 보기, 샤워 등을 거친 후 약간의 숙제나 공부를 하다가 10시 반쯤 잠자리에 든다. 실컷 뛰어놀되 집에서 매일 조금이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었다.

단순하고 마음에 드는 스케줄이지만 만 이 생활의 문제점은 미세먼지 때문에 매일 밖에서 놀 순 없고, 이 정도로 야외에서 장시간 활기차게 살다 보면 반드시 감기에 걸리는 데다 빨리 낫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놀이터 라이프를 두세 시간씩 지켜보는 나도 몸이 골골 삭아가는 걸 느꼈다. 3월은 뛰어노는 자에겐 상쾌하고 지켜보는 자에겐 너무 추웠다. 휴직하고 약 두 달 뒤에 만난 회사 동기들은 나에게 최근에 레이저라도 쐈냐고, 기미가 왜 이리 짙어졌냐고 했다. 그냥 자외선을 많이 받아서 그래, 하루에 세 시간씩 매일매일.


아이 입장 말고, 양육자인 나 말고, 그냥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면 좋을까- 이쪽으로도 열심히 청사진을 그렸다.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건 체력을 키우자는 것이었다. 수영 강습을 받아야지, 강습 없는 날에는 자유수영도 다닐까, 골프 레슨을 제대로 열심히 받아보자, 필라테스도 집중적으로 배워보면 좋겠는걸.

3월부터 시작하는 수영강습을 신청하고 주변의 수영 애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반전신 수영복을 구입했다. 등판이 너무 파진 거 아니냐고 하자 다들 자기 심장 뛰는 게 힘들어서 네 수영복 따위 보이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오랜만에 수영 수업을 들으니 심장, 폐, 근육이 모두 쿵쾅거리며 빠듯해했지만 꽤나 보람찼다. 그런데 2번 레슨을 받은 후 코가 너무 막히고 기침이 심해서 병원에 가니 축농증이라며 수영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축농증이 나을 때까지 수영을 하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체질에는 수영이 좋은 운동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야심 찬 수영은 2번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는 골프연습장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는데 2주 지나니까 목이 너무 아팠다. 머리 묶으려고 살짝 목을 뒤로 기울이기만 해도 목과 팔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내가 봐도 목의 c자 커브가 뒤집혀있고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언젠가는 골프를 해도 되지만 지금은 안된다고 했다. 내가 봐도 그래 보였다. 그래서 일단 가벼운 자유수영 외의 운동은 하지 않고 재활 느낌으로 도수치료만 받았는데 그게 3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지속됐다. 스스로의 체력과 운동신경과 근력이 형편없다는 걸 잘 아는데, 그만 휴직에 고삐가 풀려 무리한 계획을 잡았던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건 10월에 다시 골프를 시작했는데 아이언 7번 70치는 주제에 복근을 다쳐서 또 3주간 골프를 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비록 나의 야심 찬 운동계획들은 상당히 무너졌지만, 시간을 들여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세와 뼈(?)를 바로잡을 기회가 생겨서 좋다. 도수치료가 약하고 굳은 근육들을 골라잡아 혹사시켜서 치료시간에 정말 상당히 아픈데, 여유가 없었더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두 번째 발가락 뼈에 힘을 주라든가, 난생처음 들어본 목의 무슨 근육이 너무 짧아져 있어서 이런 스트레칭을 해야 한다거나, 가슴뼈를 가만 두고 날개뼈만 움직이라든가 하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다. 최근 도수치료 시간에 담당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혼자 수영을 가끔 가는데 자유형은 너무 힘들어서 거의 평영과 배영만 한다고 했더니 나의 발이 유난히 힘을 쓸 줄 모르므로 자유형이 좀 힘들긴 할 텐데, 편한 운동만 해서는 약점을 보완할 수가 없다고 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찌릿하는 통증이 있다면 그 동작을 하면 안 되지만 근육이 힘들어하는 거라면 해도 된다며 조용히 납득가능하게 운동을 독려하셔서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사소한 신변잡기라도 좋으니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정제해서 읽을만한 글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져본 지 너무 오래됐다. 여유가 생기면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부러 시간과 공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다른 잡다한 일들에 밀려 하루하루 그냥 넘어가고, 그러다 보면 지키지 않을 계획을 세웠다는 자체가 민망해져서 은근히 그 계획 자체를 없는 듯이 뭉개게 되더라. 아이뿐 아니라 내게도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필요하다.


영어공부, 미술, 독서, 글쓰기. 사실은 일을 하면서도 병행해야 내 영혼과 삶이 윤택해지는 취미 같기도 하고 자기 계발 같기도 한 시간들. 나의 체력으로는 일, 육아, 살림에 '내 시간'을 병행하는 게 어려웠지만 이렇게 한 텀 쉬어갈 때 시작을 잘 꾸린다면 후에 복직해서도 어느 정도 흐름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지금 1년뿐 아니라 그 후의 더 긴 삶 속에서 계속될 영혼을 살찌우는 시간들을 꼭 마련하고 싶다.


위의 글을 휴직 초에 썼고, 복직을 앞둔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의 야심처럼 지내지는 못했다.

아이가 주 6일 숙제 및 공부시간을 실천하고 있긴 한데 시간 되면 스스로 하는 게 아니라 '이제 숙제해야지'라고 여러 번 얘기하고 붙들어 앉히고 연필을 수십 번씩 떨어뜨리는 아이와 씨름해 가며 지키는 시간이라 이걸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편, 아이가 매일 놀이터에서 놀며 동네 친구들을 실컷 사귀고 동네에 대한 소속감 같은 게 생긴 건 참 좋았다.

나의 글쓰기 시간은 상당히 들쭉날쭉 해서 때로는 한 달씩 아무것도 안 쓰기도 했고, 수영이니 필라테스니 하던 찬란한 스포츠 계획은 하천길 걷기(같은 방향으로 산책 나가시는 이웃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나랑 똑같은 시간 동안 똑같은 거리를 걷는다 하셔서 조금 부끄러웠다)로 대체되었다. 미술은 즐겁게 다녔고, 어수룩하지만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놓고 바라보는 만족감이 상당했다. 영어는 줌 수업과 앱을 활용했고 정말 오랜만에 토익을 다시 쳤는데, 토익점수는 목표대로 나왔지만 영어실력 자체는 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쭉 꼽아보면, 뭔가를 이룬 것은 없고 대체적으로 즐거운 와중에 가끔 알차려고 노력하면서 1년을 살아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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