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이 필요한 시기

by 민주

맞벌이 직장인으로 외동아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온 우리 부부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시 남편이 1년간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것으로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남편은 아이의 입학 반년 전부터 이미 설렜고, 나도 여러모로 좋은 계획이라고 여겼다. 우리처럼 근속 10년이 넘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를 떠나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경력이 끊긴다든지 돈이 끊긴다든지 하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그냥 쉴 수는 없는데, 육아휴직은 수입이 1년 끊기는 걸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공인된 데다가 법적으로 '근로자가 신청하면 사용자가 허용해야만 하는' 제도라서 평범한 근로자가 맘 편히 직장을 쉴 수 있는 드문 기회이다. 나는 출산과 그 뒤에 이어진 휴직으로 회사를 쉰 적이 있지만 남편은 쉬어본 적이 없으니 그 기대감이 상당했다.


남편은 늘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고 의사결정 레벨이 높은 부서에서 일했다. 묵묵히 해내다가도 힘들어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특히 그해엔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서 몇 달 새에 살이 십 킬로 가까이 빠지는 등 정신적, 육체적으로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너무 지쳐있어서 다음 해의 휴직 계획과는 별개로 모든 휴가를 끌어모아 혼자 산티아고길에도 다녀왔다. 아이 키우는 맞벌이 가정인데 남편 혼자 3주 휴가 보내주는 부인, 그게 바로 나다.

나 역시 아이를 직장어린이집에 데리고 다니며 퇴근 후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는 일상에 지쳐있었다. 남편은 너무 바빠서 주중에 우리가 잠들 때까지 안 들어오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고, 가끔 이벤트처럼 일찍 오는 것은 반가운 기분이 들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남편이 일을 쉬고 육아를 맡으면 나로서도 마음이 놓이고 삶도 보다 편해질 것 같았다.

매일 야근하는 직장인은 한국에서 익숙한 모습이고 그게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아이를 직장 어린이집에 보내며 출퇴근하는 삶은 상당히 현대적인 것이라,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단함을 아직 잘 모른다. 퇴근해서 5분 만에 아이를 만나 홀로 육아하고 살림하다 아이와 함께 잠드는 일상을 5년간 꾸려나갔다. 나는 정말 체력이 약한 편인데 우리집 어린이는 체력이 넘쳐서 아들의 활동량을 쫓아다니다 보니 생각 없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기적이 찾아오기도 했다. 당연히 나의 하루하루에는 잔잔한 기쁨들이 있었고, 나만의 인간관계가 있었으며, 스스로 돈을 벌어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를 꾸려나가는 인간적인 만족감이 있었다. 삶에 치명적인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피로했다. 아이를 재운 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육퇴'가 없었다. 내 체력은, 다음날 또 징징대는 애를 어르고 달래 등원시키고 곧장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나의 스케줄은, 그런 여유를 허락지 않았다.


체력과 시간이 달리다 보면, 나도 멀쩡하게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이 모든 과업-아이를 등하원시키고, 어린이집이 폐쇄되거나 애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갈 때면 어떻게든 보육기관의 부재를 벌충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차리고, 의류와 생필품을 구매하고, 물품을 정리하고, 도우미를 구하고, 철마다 옷을 정리하고, 방학계획을 짜고, 세탁소 업무를 보고...- 이 왜 나만의 몫인가 라는 뾰족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남편이 먹고 나서 안 치운 바나나 껍질이 세상에서 제일 냄새나고 지저분한 쓰레기가 되고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적어도 나 정도의 소소한 인간에게는, 마음의 여유라는 건 시간과 체력에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로서 누적된 우리 각자의 피로한 일상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지만, 그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다들 그렇듯이 묵묵히 끌고 가며 사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가 입학할 때가 되었고, 우리 둘 다 아들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에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집에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조부모의 돌봄은 여러 가지 상황상 우리에겐 선택지가 아니었고, 아이 성격이나 적응시간을 감안할 때 시터에게 전적으로 맡기기도 어렵다 생각했다. 가끔 시터 구인글을 보면 '아이가 밝고 예의 바르고 말을 잘 듣습니다'라는 광고 같은 문구가 종종 등장하는데 우리 아들은 그렇게 단박에 시터에게 어필할만한 성격으로 표현하기는 좀 양심에 어긋났다. 제멋대로에 예민하게 굴 때가 종종 있지만 사실은 착해요-라고 해야 하나? 그럼 사람을 못 구할 것 같은데.

물론 돌봄교실과 방과후수업이 잘 돼있고 다양한 학원들도 있다. 공적인 지원수단에 더해 사실상 보육기관으로 기능하는 태권도 학원이라는 훌륭한 옵션이 거의 모든 동네에 있지 않은가. 다만 나는 애가 좀 낮에 뛰어놀고, 편안하게 일과를 보내고, 동네 친구들을 사귀길 바랐다. 5년간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느라 어른의 업무시간과 동일하게 스케줄로 기관생활을 했고 동네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가을도 저물어 가고, 여러모로 우리 가족 셋 모두에게 필요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은 한 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 회사에서 남자 육아휴직에 대한 분위기가 우호적인지, 지금 고생하는 부서에 있는데 직후에 휴직하면 커리어적인 보상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닌지, 복직 시나 향후 승진 시 불이익은 없는지 등등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문제들이 실질적으로 괜찮거나 또는 감수할만하다고 했고 휴직 1년간 영어와 운동을 제대로 배우고, 악기도 하나 배우겠다며 행복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럼 그렇지, 11월 말에 남편이 휴직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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