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는 정기적으로 다음 반기 부재 예정을 미리 조사한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인사에 반영해야 할 장기부재를 조사하는 것인데 남편은 그 조사 기한을 사흘 남기고 육아휴직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휴직을 위한 절차를 착착 밟아왔고, 이제 어긋날 일이 없다 싶은 시점이었다.
남의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는 내가 따지고 들 사안은 아니었고, 중요한 건 결론이었다. 이틀 내로 확실히 말하라고 했다. 남편이 휴직을 못하면 내가 해야 하는 건데, 육아휴직은 법적으로 근로자가 원할 때 언제든 가능하긴 하지만 부재자 조시기한 내에 말을 해둬야 정기인사 때 확실히 후임을 받을 수 있으니까. 원활한 회사 생활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부서에 피해가 가지 않게, 일반적인 절차에 맞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의 상황이 모호한데 나의 기한은 촉박한 관계로, 급히 내가 휴직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부서에 느닷없는 휴직 예정을 알렸다.
남편의 휴직을 화두에 올리고 이따금씩 천천히 고민했던 그의 커리어, 승진, 평판, 휴직 중의 라이프 등등을 나에게 대입해서 고민해 볼 시간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휴직을 지르고 나서 보니 일단 승진 시기를 놓쳤다. 휴직을 알리고 얼마 후 있었던 인사 때 승진을 못했고, 휴직을 안 했으면 (물론 세상에 100%는 없지만) 다음 인사 때는 승진을 할 법했는데 이제는 복직 후에 언제 승진할 수 있을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당시 근무 중이던 부서는 나름 고생한다고 인정받는 곳이었고, 그러면서도 팀워크가 훌륭하고 업무에는 적응한 상태라 일하기에도 평가받기에도 좋은 여건이었다. 커리어적으로 다음을 계획하기에도 괜찮은 상황이었는데 후에 복직하면 또 어딘지 모를 새로운 팀에서 적응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휴직한다고 하자 대체적으로 부럽다, 당연한 일이다, 또는 어쩔 수 없다 정도의 반응이었는데 다만 휴직 시기가 아쉽다는 말을 많이들 했다. 나로서는 이 시기가 곧 아이의 초등 입학기이므로 가타부타할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아마 좀 더 고민할 시간이 있었어도 휴직을 안 한다는 결론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 커리어에서 그런 걸 놓쳤네, 타이밍 똥이네,라는 인식은 있었다.
나는 업무적으로나 인간관계적으로나 시야가 좁고, 조직관리에 큰 뜻이 없어서 승진과 커리어에 무신경한 편이다. 다만 업무의 내용과 부서 내 사람들의 됨됨이 등 업무환경이 중요하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휴직과 실망스러운 승진 인사 등에 비교적 태연했지만 그래도 제때 승진을 못하는 것에 전혀 신경이 안 쓰일 순 없었다. 나의 승진누락에 팀장, 부장, 단장님이 번갈아 나를 불러들여 위로와 사과와 덕담을 건네시다가 나의 징징대지 않음에 고마워했다. 집에서 남편에게는 징징댔는데, 회사에서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약간 입맛이 쓴 구석이 있지만 업무나 팀 생활을 마무리하며 지내다 보니 한참 남았던 것 같은 휴직이 어느 순간 코 앞에 다가왔다. 나의 휴직은 어린이집 졸업에 맞춰 2월 중순부터였는데, 1월 중순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은 것 같았는데 2월로 달력이 넘어가니 순식간이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내가 떠나는 걸 아쉬워하고, 톡방에서도 빠지면 안 된다고 해주는 등 애정을 보여주는 게 정말 고마웠다. 후임이 오고 내가 휴직을 개시하기까지 한 달 정도 기간이 겹쳐서 나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화분처럼 없는 듯이 있다가 떠나려고 했는데, 벌써부터 우리 곁에서 떠나면 안 된다고 굳이 자리를 지키도록 붙잡았다. 정말 고맙긴 한데 좀 아쉬웠다. 그 존재감 없는 구석자리 꼭 앉아보고 싶었는데.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다녀오고 연간 학사일정을 받아보니 이거 휴직하지 않으면 어떻게 꾸려갔을까, 복직하고 2학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들었다. 1시 전후의 빠른 하교시간은 그렇다 쳐도 여름방학 한 달, 겨울방학 두 달. 부장님이 인사고과와 승진을 생각해서 복직은 정기인사-대부분 연초-에 맞추라고 강력히 권고하시는데 당황해서 진심이 튀어나왔다. [제가 육아휴직을 하는 사정이 있고 겨울방학이 두 달인데 어떻게 정기인사 때 복직하죠?] 시간이 있으니 잘 준비해 보라고 하시는 말씀이 날 진심으로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았고 방도를 고민해 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지금 생각하기로는 딱히 도리가 없다. 이미 승진이 늦었는데 굳이 승진에 목맬 필요가 있나 라는 실리적인 생각이 앞선다. 이대로라면 동기는 당연히 다 승진하고 후배들도 잔뜩 승진하고도 나는 밀리게 될 테고 그게 물론 속 편한 일은 아니지만, 다 가질 수 없다면 선택한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흐리게 넘겨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