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는 보통 3월 말에 학부모들이 참관하는 공개수업을 실시하는데, 아이가 생활하는 교실과 수업 장면을 직접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가 목을 빼고 부모님을 기다리기에 아주 중요한 행사다. 특히 1학년 학부모에게는 설레고 기대되는 이벤트이다.
공개수업이 얼마 안 남은 어느 날, 이미 올해의 공개수업을 다녀온 다른 동네 친구가 그날 명품백을 안 들고 온 학부모가 단 한 명이었다는 도시괴담 같은 후기를 들려줬다. 또 다른 친구는 에코백 맨 사람도 여럿이었다고 하니 동네마다 학교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이 함축하는 그 모든 뉘앙스가 귀찮아서 가방은 아예 들지 않았다. 옷차림은 너무 갖춰 입거나 너무 편하게 입은 티가 나지 않도록 스트라이프 셔츠와 검정색 테일러드 자켓으로 나름의 구색을 맞췄다.
그런데 실제로 공개수업에 가보니 시야가 좁은 나에게는 다른 학부모의 옷차림이든 가방이든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다. 내 기억에 남은 건 쾌적한 교실,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아이들의 그림, 굉장히 기초적인 수업의 내용 정도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벽에 딱 붙은 칠판이나 보드에 글씨를 쓰는 게 팔이 아프기도 하고 예쁘게 안 써져서 선생님들은 어떻게 칠판에 글씨를 잘 쓰시는지 신기하게 여겼는데, 지금의 교실에선 전자칠판을 사용하므로 그런 수직 필기의 빈도가 굉장히 낮았다. 선생님이 본인 책상에 있는 입력용 보드에 뭔가를 적거나 자료를 올려놓으면 전자칠판에 그대로 나타났다. 전자칠판이 학교에 도입된 지는 한참 됐겠지만 나는 처음 보는 거라 굉장히 낯설고 좋아 보였다. 그리고 교실 바닥이 난방이 들어오는 매끈한 마루로 되어있어서 큰 충격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든 교실이 그런 것은 아니라 했다. 상업시설이 아니니만큼 번쩍이게 세련된 공간은 절대 아니지만 청결하고 단정했으며 색연필, 각종 지류 등 학용품뿐 아니라 블록, 콩주머니, 공깃돌 등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가지고 놀만한 거리들도 여러 세트 구비되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의 모습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고등학교 교실은 기억이 제법 생생하다. 사립 고등학교를 다녀서 학비를 한 학기에 백만 원 이상 냈는데도 학교 시설이 모조리 굉장히 낙후되고 더러웠었다. 가끔 버섯이 피는 음습한 화장실을 학생들이 직접 청소하던 그때를 떠올리니 학생의 편의와 권리, 세상의 위생 기준이 그야말로 진일보했다는 게 새삼 와닿았다.
쾌적한 시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교실 뒷벽에 붙여놓은 아이들의 그림이었다. 자유주제로 각자 한 장씩 그린 것이었는데 내 아들 그림이 뭔가 하고 찾아보니 아주 크고 단순하고 와일드한 사과 한 개였다. 선생님이 시켜서 그리긴 그렸다...라는 느낌이 물씬 들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들처럼 대충 끄적인 그림들이 있는 반면에 섬세하게 그라데이션까지 주어 채색한 수준 높은 그림들도 있었고, 가장 감탄스러웠던 그림은 넷플릭스 드라마 '웬즈데이'의 주인공 웬즈데이의 초상을 그린 것이었다. 수업시간 중이라 참고할 자료도 없었을 텐데 누가 봐도 웬즈데이인걸 알 수 있도록 땋아 내린 머리칼이나 크고 무심한 눈 같은 특징이 잘 살아있었고 정성 들여 꼼꼼히 터치한 게 느껴졌다. 만 6~7세의 그리기 실력이라는 게 꼭 재능이라기보다는 각자의 발달 속도에 따라 차이가 나는 면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재능의 영역이겠지 싶었다. 만약 이 정도 차이도 발달 수준의 차이일 뿐이라면 우리 아들의 발달은 대체 얼마나 뒤처진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학교에서 대체 무엇을 배우는 지였는데, 대단히 차근차근 느리게 거의 한 교시 내내 '선긋기'를 배워서 놀랐다. 세로로 점을 다섯 개 찍고 그 점을 옆으로 쭉 그어서 직선을 다섯 개 만들고, 그다음에는 다시 점을 다섯 개 찍고 구부렁 구부렁 선을 다섯 개 만드는 걸 천천히 배우고 실습했다. 국어의 경우 입학 시 한글을 모르는 것을 전제로 교과과정이 짜여 있고, 수학의 경우엔 1부터 10까지의 수 개념부터 배우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취학 전에 아이의 학습 수준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필요가 없겠다 싶긴 했는데 그런 생각 이상으로 기초부터 배우고 있었다.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걸 보면 한글이든 영어든 축구든 처음엔 아주 쉬운 것부터 부드럽게 천천히 가르치다가 어느 수준부터는(여전히 초급인데도) 갑자기 배움의 오르막 경사가 급해지는 게 초기교육의 공통점인 것 같다.
나는 공개수업 내용이나 우리 아이의 모습에 잡념 없이 집중하기보다는 눈으로 교실을 이리저리 구경하고 꼬리를 무는 상념들에 빠져들긴 했지만, 지루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감각과 감수성이 생생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평소엔 내 아이 하나만 바라보는데 공개수업 때는 또래 아이들을 집단으로 볼 수 있고, 집단 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인상 깊었다. 우리 아이 교실에는 엄마들밖에 없었는데, 한창 말랑말랑하게 성장하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 엄마, 아빠가 번갈아 공개수업에 참여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