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의 끄트머리에서

by 민주

지난 1년간의 휴직은 아이를 돌보는 외에도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알고, 뉘우치고, 궁리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를 위해 일을 쉬니 오히려 더 아이가 없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복직이 100일, 50일, 한 달... 이렇게 촉박하게 다가오자 거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삶이 소중해졌다. 좀 더 그림을 많이 그리고, 글도 자주 끄적거려 보고, 이전에 썼던 글들을 정리하고, 책을 많이 읽고, 핸드폰은 덜 들여다보려 노력했다(물론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드라마에 몇 시간씩 빠져있기도 했다.). 그리고 겨울방학 마지막 주에는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복직이 약 20일 남은 시점, 가족들과 여행지에서 조식을 먹으러 가는 길에 인사부에서 문자가 왔다. 복직 부서를 알리는 연락이었는데 그 문자를 받은 그 순간 복직이 목전에 닥쳐버렸다. 나는 그날 놀이공원까지 가놓고도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구체적인 걱정이 된다기보다는 그냥 차가운 얼음 한 조각이 식도나, 위장이나, 심장에 끼인 것처럼 불안하고 선뜩한 기분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공황이 올 것 같아...' 남편을 붙들고 중얼거렸지만 여행에서 돌아가면 바로 출근인 남편은 다소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회사 다닐 때 죽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으니까 다시 가도 또 어느새 적응하겠지?'라고 말해보지만 계속 손 끝이 차가워지고 자꾸 한숨이 나왔다.


복직 자체도 물론 부담인데, 내가 다니는 회사가 순환보직을 전방위적으로 시키는 조직이다 보니 나이 마흔에 정말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게 됐다는 게 패닉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고참인데 그 업무에 대해서는 사실상 신입이고, 신입에 비해 머리회전도 느리고 학습능력도 굳어있다.

'회사에선 그 갭을 메우느라 헐떡이고, 퇴근 뒤엔 밥 차리고 아이 숙제 봐주고 같이 놀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숨 가쁘게 저녁나절을 보내고, 때로는 업무 생각에 잠이 잘 안 오겠지.'

그런 상념에 잠기다 보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퇴직할 수 있을지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주담대가 얼마나 남았더라, 소비를 줄이고 대출을 열심히 갚으면 십 년 뒤엔 남편과 함께 퇴사한 뒤 서울집은 세놓고 지방 가서 미니멀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학비를 생각하면 역시 애가 대학 졸업할 때까진 다녀야지. 그때가 되면 반일 근무도 활성화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휴직 중 잠시 잠깐 0.5쯤 생겼던 둘째 생각은 확 사라졌다. 유연근무가 뜻대로 가능한 세상이라면 출산율이 올라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도 아름다운 남국의 풍경 속에 때때로 몸속에 박힌 얼음을 느끼며 그때마다 '이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자'라고 주문을 외우며 술렁이는 마음을 꾹꾹 눌렀다.


이미 닥친 복직, 아직 한창 일할 나이,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또 현실을 점차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수밖에. 다만, 육아휴직을 하면서 오히려 '육아와 무관한 나'를 들여다봤던 것처럼, 회사에 돌아가면 '회사와 무관한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볼 뿐이다.



누구든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육아휴직이 남아있다면 한 텀 쉬어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아이가 5~7세 사이에 변화하고 성장한 것보다 초등학교 1년간 겪는 변화가 더 다이나믹하다. 그 격동을 함께 헤쳐나가는 데에는 분명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국의 직장인으로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우리는 대개 쉴 틈 없이 달려왔다(출산휴가와 그에 바로 뒤이은 휴직은 절대로 쉬는 게 아니다). 시간에 여유가 생기고 수입은 줄어들자 나에게 중요한 것과 내가 기쁨을 느끼는 일,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비로소 명확해졌다. 하지만 그런 휴식을 취했다가도 다시 일해야 하는 숙명을 나처럼 너무 슬퍼하진 말자. 끝이 정해져 있기에 좀 더 충실할 수 있었다고 그냥 나 자신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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